공무원의창#15 ‘송곳’에 대한 기묘한 침묵
공무원의창#15 ‘송곳’에 대한 기묘한 침묵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6.16 08:55
  • 댓글 0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대충 그런 눈빛이었던 것 같다. 사교육으로 이름난 강남 대치동의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 온 촌놈. 꾀죄죄한 몰골로 점심시간이면 축구공에 정신 팔려 뛰어다니던 바로 그 더벅머리라 모두들 만만하게 봤던 녀석. 과외도 안 하고 학원도 안 가던 그 녀석이 전학 온 직후 치른 모의고사에서 수학 만점에 전교 1등이라는 말을 들은 전교 2, 3, 4, 5등 아이들의 눈빛이 그렇지 않을까.

중견실무자반 직무교육에서 만점을 받았을 때 기관 동료들의 눈빛이 딱 그랬다. 타 기관에서 전입해 온 지 1년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자가…. 그것도 IMF 구제금융 시절 ‘찍힌 자’들의 집합소라는 ‘실업대책추진반’에서 파견 근무하는 자가 만점이라니. 그 정도면 부사장님이나 전무님 정도는 기관을 빛냈다고 칭찬할 만도 한데 조금의 반응도 없었다. 참으로 기묘한 침묵이었다. 미루어 짐작건대 교육원으로부터 통보받은 인사부서에서 보고하지 않고 덮어 버렸을 것이다. 그런 부서일수록 시퍼런 경쟁자들이 득실대고 있었으니.

대신 소식을 접한 주요 부서 팀장들은 앞다투어 내게 책과 필기한 노트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현장에서의 뜨거운 반응과 대비되는 상층부의 묘한 침묵을 보면서 나는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이곳도 마찬가지이겠구나 하는. 실제로 상부의 미묘한 기류와 의중 때문에 근무평정에서 피해를 본 적이 많았으니 무리한 추측은 아니다.

직무교육 평가에서 만점을 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전 직급 직무교육 당시(1993년) 서너 문제를 틀려 3등 턱밑에서 머물렀다. 이번에는 기필코 만점을, 그러니까 올백을 맞겠다고 결심했다. 교육 기간 2주 내내 난 사설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5배수의 예상 문제를 풀며 복습을 거듭했다. 나중에는 문제를 외울 정도까지 진도를 뺐다. 그 결과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조직은 라인 밖 의외의 인물이 돌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요철로 튀어 오른 군상들은 어떤 라인과 권세의 힘에 의해 선별되어 외진 곳으로 가기 마련이다. 두툼한 포대자루와 같은 인의 장막을 뚫고 나온 쇠뭉치 하나. 그 쇠뭉치의 반짝거림을 누군가는 송곳의 번뜩임으로 여겼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전후로 난 서무주임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신임 국장님의 명을 받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무에 매진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라 했기에. 그럼에도 인사고과 시즌이 오자 내리 3번의 수(秀)를 받아 오던 나를 누락시켰다. 당시 나를 챙겨 주려던 과장님은 이 미묘한 권세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에 아직도 당시의 진실을 모를 것이다. 승진에 가까워지려면 ‘수’를 4번 받아야 했기에 속은 타들어 갔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본 과장님께 말했더니, L 부사장님께 말하자며 내를 대동해 올라갔다. 부사장님은 그 자리에서 인사팀장에게 조정 ‘수’를 주라고 지시했다. 그 일은 그렇게 해피엔딩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1년 후 다른 일로 인해 진실이 밝혀졌다. 당시 퇴직이 임박한 부사장의 지시를 인사팀장인 G가 깡그리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는 인상 좋고 겸손하고 친절해 보였지만, 결정적으로 우리와는 출신(성분)이 달랐다.

그때가 2003년이었다. 지자체가 출범한 지 8년이 지났음에도 음지에선 기관장보다 인사팀장의 농단이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사실 인사 파트의 횡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7급 인사주임의 펜대는 6급까지 포함해 하위직 공직자들에겐 포세이돈의 삼지창보다 위세가 있었다. 심지어 자기 노력으로 받는 ‘표창’마저도 ‘맨입’만으로는 안 되는 시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