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3]
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3]
  • 임동식
  • 승인 2023.08.04 08:45
  • 댓글 0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임동식
임동식

[시정일보] 하늘은 무심하게도 8월이 가고 구월이 되도 비는 내려 주지 않고 날마다 무정하리만큼 어김없이 내리는 불볕, 햇살 아래 도덕지 저수지와 그 수원인 파군다리 저수지는 말라만 갔다.

뜨거운 열풍에 푸석해진 대지는 먼지만 자욱할 뿐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시들시들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이 지경에 이르자 가뭄에 해볼 수 있는 것이란 것은 다 해본 사람들이 또 해볼 수 있는 것, 산에 올라 불을 피우는 것, 이른바 기우제가 그것이다.

그야말로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농민들의 애절한 마음인 것이며 이렇게 기우제를 지내는 것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려 애를 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영화 농장의 언저리인 인의산 봉우리에 올라 장작과 덤불을 모아놓고 불을 지핀다.

"이렇게 지독허게도 가문 것은 나라님이 죄가 많은 것이여."

"맞어. 그렁께 이렇게 비가 안 오제 어쩐다고 안 오겄어. 냉갈(연기)을 많이 피어 불어! 그래야 하눌님이 알고 비를 내려 주시제."

기우제, 예부터 가뭄이 극심하여 기근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참담해지면 군주는 궁여지책으로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게 했다. 이것은 실현 불가한 토테미즘에 근거한 것일 뿐, 우연이라면 모를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상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이치로 그 가능성이 전혀 불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산봉우리에서 불을 피우면 상승기류가 형성될 것이다.

불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상승기류도 크고 강해질 것이며 따라서 국소적이지만 주변에 저기압이 형성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외부의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유입될 것이고 그 수증기를 내포한 공기가 상승기류를 따라 상승하여 기온이 낮은 상층부에 이르면 냉각이 될 것이고 냉각된 수증기의 알갱이는 서로 응축이 되어 그 무게로 비가 되어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 그 가능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불을 피워서 외부의 공기를 빨아들일 만큼의 열에너지에 못 미친다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기우제를 지내 비가 오기를 바라는 것은 오직 비가 오기를 기대하는 농민들의 마음일 뿐인 것이다.

영화 농장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우제는 지냈지만 9 월이 다 가도록 하느님은 이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밭작물을 제외한 논농사는 결국 다 망하게 되었다.

농사가 잘되어도 먹거리가 넉넉지 않은데 더구나 온 들판이 다 말라버렸으니 어질고 어진 영화 농장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 동안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막연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자 도덕지, 신원목, 월곡 사람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나 외지로 이사를 하든가 아니면 젊고 힘이 있는 청년들은 마른 들판과 정든 고향을 등지고 만주행 열차를 타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에 세월은 흘러 명세기 추석 명절이 되었지만 곡광이 궁하니 명절은 흘려보내듯이 지나갔다.

1943년 9월 15일, 추석 명절이 지난 그 이튿날이다. 경주댁과 순녀와 맹심은 마당 가운데 쌓인 조 이삭을 조금씩 덜어가며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가뭄으로 들판이 황량해졌으니 밭에 경작한 조의 작황이 좋지는 않지만 한 모가지라도 허실 할 새라 조의 이삭을 베어다 마당에 쌓아두고 도리깨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리깨를 돌리면 휙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고 땅에 깔린 조에 맞으면 퍽 소리에 먼지가 날린다.

세 사람은 끊임없이 이마의 땀을 닦아가며 도리깨질이 한창일 때 이웃에 사는 금동굴댁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도리깨를 내려놓고 바닥에 앉는다. 쉴 요량이다. 금동굴댁이 마루에 걸터앉으며

"날도 더운디 쫌 쉬었다들 허이쑈!"

하고 권하자 경주댁이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묻는다.

"성님! 금동굴 아제가 만주 간닥 허던디 참말이라우?"

금동굴댁은 경주댁의 10촌 손위 동서이다. 그런 사이의 시아주버니가 만주로 간다는 말을 듣고는 사실 여부를 알고 싶은 것이었다.

"글씨 여비만 마련허면 시방 당장이라도 갈란다고 저 난리여."

"딸이사 여웠응께 그러제만 종필이, 우길이 애기들 먹여 살릴라먼 뭣이라도 해사제라우."

"그렁께 말이세. 들판이 다 말라 불고 묵고 살 것이 없응께 이사를 하든가 뭣이라도 허기는 해사 쓸 텐께 말기든(말리든) 못 허것는디…"

금동굴댁은 만주로 가겠다는 남편의 뜻에 동조도 말리지도 못하겠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과부 속 과부가 안다고 했다. 남편이 일본 외유를 간 지 4년 남짓을 생과부로 살고 있는 경주댁으로서는 어떤 확정적인 대답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 중에 부엌문이 열리고 인길댁이 내다보자 이야기는 끝이 났다. 금동굴댁이 인길댁에게 인사를 한다.

"당숙모! 안녕해겠소? 정제(부엌)에 지겠었던갑소이?(계셨던가 보네요?)"

"어이. 질부 왔는가? 정심 묵세! 맹심아! 점심 묵고 허자! 부삭(부엌)으로 와서 상 내 가그라!"

맹심이 부엌으로 가서 상을 마루로 가져왔다. 밥상이 나오자 금동굴댁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인길댁이 한사코 같이 먹자며 눌러 앉힌다.

추석 명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연중 풍요의 극치를 이루는 날이 중추 명절이요. 이날은 햅쌀로 시루를 앉히고 논 어귀에 몇 줄 심은 차나락을 베어다 인절미를 만들고 햇과일에 고기반찬으로 조상님 제사상을 차리니 이 어찌 산해진미가 아닐쏜가.

오곡백과가 풍요롭고 인심 또한 넉넉해지는 시기가 이 시기이며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이 시기만 같아라 하는 것이다. 예년 같으면 중추 명절을 지내고도 며칠간은 추석 음식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을 텐데 이 해는 달랐다.

제사 음식으로 마련하는 시루떡은 겨우 시루의 밑구멍을 때울 정도의 시늉만 내고 막걸리 한 사발 부어놓고 제사를 지냈던 터라 중추절 이튿날에 추석 음식이 남아있을 리 없다.

추석 끝의 상차림치고는 너무도 볼품이 없고 정도가 심하여 궁상스러울 만큼이다. 콩나물, 마른 가지나물에 밥은 무를 채로 썰어 보리쌀과 섞어 삶은 밥이다.

주곡인 보리쌀이 모자라니 궁여지책으로 무를 넣어 밥의 양을 부풀린 것이며 이 묘책은 짜내고 짜낸 인길댁의 궁여지책이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궁색한 반찬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늘 밥상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삭힐 대로 삭힌 시커멓고 삼삼하며 골골한 게장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차려진 상 주위로 식구들이 빙 둘러앉았다. 아이나 어른이나 차려진 반찬이 궁색하니 투정을 부릴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아도 모자라는 밥그릇을 앞에 놓고 투정을 부릴 만큼의 뱃보를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리깨질로 허기진 경주댁과 순녀 그리고 맹심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네 살 점돌과 식객인 금동굴댁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똑같이 밥 한 그릇 비우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점심이 끝나고 밥상을 낼 즈음, 아침에 일로 면사무소에 나갔던 인길양반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인길양반은 하얀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모습이다.

"맹심아! 언능 부샄에 가서 아부지 진지 가져오니라!"

인길댁의 말에 부엌으로 가려는 맹심을 인길양반이 손을 들어 말리며

"아니다. 내비 둬라! 나는 쩌그 농장 오다 소나다상네 집에서 묵고 왔다. 농장 앞을 지나오다가 만났는디 자기 집으로 가 점심을 묵고 가라고 어찌게나 손을 잡어 끄는 바람에 거그서 묵고 왔다."

이렇게 말하자 점심상은 치워졌다. 얼마 전 영화 농장의 공출미 담당자인 일본인 소나다상이 인길양반을 찾아와 어깨통증을 호소하자 인길양반이 서너 차례의 침술치료로 그를 치료해준 적이 있다.

그 치료로 어깨통증은 깨끗이 완치되었고 이후 소나다상은 인길양반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던 것이며 간혹 순녀네를 찾아와 인길 양반과 바둑을 두기도 하고 서툰 조선말로 시국담을 나누기도 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인연이 맺어진 관계로 인길양반은 소나다상에게 점심 접대를 받고 온 것이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다시 도리깨질은 이어졌으며 점심 객이 되었던 금동굴댁도 도리깨질을 거들었다.

도리깨질이 한창인 저녁나절, 배낭을 어깨에 짊어진 우편 배달부가 하얀 봉투를 들고 순녀네 마당으로 들어섰다.

"편지 왔소. 가만있자. 일본에서 왔는갑는디요(왔는가 본데요)?"

배달부의 말에 순녀가 도리깨를 내던지고 배달부에게 달려가며 소리 지른다.

"우리 오빠한테 왔는갑네. 인네 조보이쑈(이리 줘보세요)!"

과연 순녀의 오빠인 대전이 일본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아부지! 성님! 일본 간 오빠한테서 편지가 왔어라우, 편지가..."

순녀의 호들갑에 방에 있던 인길양반이 뛰어나오고 온 식구가 순녀 앞으로 다 모여들었다. 편지를 건네받은 인길양반이 겉봉투를 개봉하며

"순녀야! 방에서 돋보기 좀 가져 오니라!"

이러자 순녀가 부리나케 안경을 가져왔다. 인길양반이 나지막한 소리로 천천히 편지를 읽었다.

‘아버님, 어머님 전상서. 제가 집을 떠나온 지도 어언 4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어머님, 아버님 옥체 만강하옵시며 아프신 데는 없으신지요? 그리고 점돌 에미와 동생들 맹심이, 순녀, 말례, 태곤이도 몸 건강히 잘 있을런지요? 점돌이는 이제 뛰어다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맹심이 동짓달에 시집을 보내신다고 하시는데 아버지 어머님 고생을 덜어드리지 못하는 이 불효자는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맹심이 시집가고 또 이어서 순녀도 시집을 보내야 할 텐데 아마도 그때쯤이면 귀국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즈음에는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꼭 효도해 드릴 것을 지면으로나마 약속드립니다.

저는 동경의 운수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이번에 대동아전쟁이 한창인 까닭으로 회사의 사정이 급속도로 안 좋아져서 회사를 그만두고 귀국을 하려 하였습니다만 일로는 지금 가뭄이 극심하다고 광암 사는 친구 임종연에게서 기별이 왔습니다. 그래서 귀국을 포기하고 오는 동짓달에 만주로 가려고 합니다. 봉천 쪽에 일로 사람들이 몇 명 있다고 전해 들어서 그쪽으로 갈까 하는데 가서 자리 잡히면 그때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불효자 귀국하여 아버님, 어머님께 효도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만 필을 놓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1943년 8월 21일 토요일 밤 불효자 대전 올림.’

편지를 다 읽는 동안 쥐 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에도 훌쩍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경주댁이 눈물 바람을 한 것이다. 순녀는 훌쩍이는 경주댁 곁으로 다가가 손을 꼬옥 잡는다. 경주댁은 순녀가 잡은 손을 그대로 두었다.

순녀는 경주댁이 시집을 와 지금까지 한 식구로 살아오며 알게 모르게 한 가족으로서 깊은 정이 든 까닭에 눈물 바람을 하는 올케언니가 안쓰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경주댁이 눈물짓는 까닭은 남편 없이 살아온 지금까지 4년의 세월도 긴데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그나마도 만주로 간다고 하니 앞으로 살아가야 할 회한의 세월들을 생각하며 경주댁은 눈물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인길양반은 편지를 접어들고 마루에 걸터앉아 궐련에 불을 붙였다. 경주댁이 시아버지 앞으로 다가가

"아버님!"

하고 부른 뒤 뜸을 들였다.

"응! 그래. 무슨 말인지 기탄없이 말해 보거라!"

인길양반은 며느리가 자신을 부른 까닭을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은 것이었다. 경주댁은 긴 뜸을 들인 끝에 입을 뗀다.

"아버님! 점돌 애비에게 언능 돌아오라고 기별해 주이쑈! 만주로 가지 말고 여그로 오라고라우. 제가 시집온 지 4년에 그 사람과 같이 산 날은 불과 서너 달인디 대체 이것이 시집을 온 것인지 식모살이를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당께라우."

경주댁은 이렇게 시아버지에게 강요하듯 말하는 것이었으며 눈망울은 젖어 있었다. 얼핏 경주댁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시집살이 4년의 독수공방은 누가 봐도 불편한 세월임에 틀림이 없다.

며느리의 말을 들은 인길양반은 머릿속이 복잡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니 말을 일부 이해는 허겄다. 근디 너도 알다시피 저렇게 마른 들판을 보고 뭣을 먹고살자고 오라고 허겄냐? 그러고 점돌 애비는 지 나름 꿈을 갖고 일본으로 간 것이다. 아직 창창헌 젊은 나이에 이런 벽촌에 묻혀 있으락 허기에는 그 인물이 너무 아깝다."

인길양반은 기실 말은 이렇게 해도 대전이 일본 외유를 하는 까닭이 며느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실을 말을 하여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격이 될 것이 뻔하기에 언급하지 않을 뿐인 것이었다. 인길양반의 말을 듣고 있던 경주댁은 겁박하듯

"그래도 나는 이로코(이렇게)는 못 살아라우. 점돌이 덱꼬(데리고) 끝배(극배)로 가 불 텐께 그라게 아이쑈!"

이렇게 말하며 하얀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다. 인길양반이 도리깨를 들고 마당에 서 있는 금동굴댁을 불렀다.

"질부! 금동굴 조카가 만주에 간닥 허던디 어찌게 됐는가? 말 좀 해보소!"

"큼메, 아까도 아님(손아래 동서)허고 말했어라우. 여비만 되먼 갈란다고 그러요."

인길양반은 경주댁을 바라보며 보란 듯이

"자~아! 가뭄에 묵을 것이 없응께 저렇고들 도덕지를 뜨는(떠나는) 사람이 부지기순디, 도덕지뿐이냐! 시름묵 영기네 아부지로 해서 몇 사람이 더 뜬닥 허드라. 근디 애미 너는 어쩌자고 그러냐?"

경주댁은 아무런 대꾸도 않은 채 점돌이의 손을 잡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후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리는 것이다. 인길양반은 그 모습을 일그러진 얼굴이 되어 묵묵히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맹심과 순녀, 금동굴댁은 힘없는 모습으로 도리깨질을 다시 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