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4]
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4]
  • 임동식
  • 승인 2023.08.1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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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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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해거름이 되어 도리깨질이 끝나고 알곡의 조를 가마니에 담으니 석 섬에 이르렀다. 이날 밤, 낮의 도리깨질 노동으로 맹심과 순녀는 피곤했던 것인지 일찍이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순녀가 묻는다.

"언니! 잠들었어?"

"아직…. 어째 안 자고 그냐?"

"낮에 오빠 편지 받고 성님이 눈물바람 헌 것을 본께 맘이 짠해서 그래."

"오빠가 보고 잡은 것은 우덜도 똑같은디 근다고(그런다고) 아부지 말씀 끝에 자기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불면 쓰것냐?"

"그러기는 헌디…. 그래도 저녁밥도 안 묵고 저러고 계신께 맘이 겁나게 짠허네."

순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언니! 나 시방 성님 방에 갔다 오께."

하고 맹심에게 말하자 맹심이 그만 자라고 만류했지만 순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루를 건너 경주댁의 방문 앞에 이르렀다. 음력 팔 월 열엿새라 휘영청 달이 밝아 추녀의 그림자가 토방에 길게 늘어졌다.

순녀가 방문을 두들긴다. 방안의 불빛이 창에 훤하게 비쳐 호롱불이 켜져 있음에도 방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다시 또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성님! 나 순녀여라우. 문 좀 열어주이쑈!"

하고 부르자 그제서야 문이 열렸다. 경주댁은 낮에 눈물 바람을 했던 까닭인지 눈두덩이 둥실하니 부풀어 있었으며 상지 앞에 앉아 점돌의 바지를 꿰매는 중이었다. 점돌은 아랫목에서 잠이 들고 있었다.

"애기씨! 안 자고 뭔 일로 왔소?"

"성님이 낮에 우시는 것을 본께 잠이 오덜 안 해서 왔어라우. 저녁밥도 안 잡수고…."

"오빠가 만주로 간닥 헌디…. 집이(순녀를 일컬음) 오빠는 집 걱정도 않는개비요. 일본서 못 있을 테먼 여그로 와사제 멋 헌다고 만주로 가껏이요?!"

"성님! 오빠라고 어째서 집이 안 오고 잡겄소. 그만헌 입장이 안 된께 그럴 테제라우. 성님 우덜이랑(우리랑) 쪼깐 참고 살먼 오빠가 오실테제라우. 성님이 울면 우덜도 눈물 난께 심드시더라도 참고 우덜이랑 재미지게 삽시다!"

"애기씨는 어린께 잘 몰르것제만 내가 시집온지가 다섯 해가 다 돼가는디 집이 오빠랑 살대고 살기는 포도시(겨우) 너덧 달이요. 긍께 나는 식모살이를 왓제 시집을 온 것이 아니요!?"

"성님! 오빠가 성공허시먼 멋지게 허고 금의환향 허실 텐디 그러면 오빠랑 성님이랑 점돌이랑 우리 식구들 얼마나 재미지것소?"

"……."

경주댁은 말이 없었다. 정이란 양지 녘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마음의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따뜻한 피이다. 따신 피 없이 어찌 정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슬픔을 나눌 줄 아는 그것이 따신 피인 것이며 정인 것이다. 경주댁이 시집을 와, 사 년 남짓의 세월을 함께 살아오며 경주댁에게 순녀는 싫은 정, 고운 정, 온갖 정들이 몸에 배어 이제는 곰삭은 정으로 녹아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인간애가 넘쳐나는 순녀의 따스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경주댁은 친정집으로 돌아간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저처럼 토라져서 당장이라도 사달을 낼 모양이니 이것은 그동안 가족으로서 맺어 온 깊은 정을 잊었음일까...

이렇게 하여 경주댁은 식음을 전폐하고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근 지 사흘이 지났다. 인길댁이 문을 두드린다.

‘텅 텅 텅!’

"에미야! 문 열어라! 너도 너제만 점돌이 굶어 죽겄다."

인길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얼레 보기도 하고 호통도 쳐 봤지만 방 안의 경주댁은 돌부처와 같았다. 포기한 인길댁이 큰방으로 들어서자 인길 양반이 묻는다.

"거 삼 일씩이나 암 것도 안 묵고 죽어분 것 아니여?"

"아니여라우. 뽀시락 뽀시락 소리가 안에서 나요."

"그렇닥 허면 죽던 안 했는디. 그나저나 저렇게 문을 꽉 닫고 통을 파니 저놈의 것을 어째야 쓰끄나?"

"냅둬 부이쑈! 지가 나올 테제 어쩔랍디여(어떻게 하겠나요)"

이날도 결국 경주댁은 걸어 잠근 문을 열지 않았다. 나흘째 되던 날 아침 식사를 하기 전이다. 마침 임자도에서 침을 맞으러 왔던 사람이 가져왔던 전어가 있어 그것을 인길양반은 인길댁에게 굽게 했다.

아궁이에서 전어가 노릿노릿하게 구워지자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해졌다. 그리고 인길양반은 작심을 한 듯 며느리 방문 앞으로 갔다.

"점돌 에미야! 사나흘 통팠으먼 인자 그만 나오그라! 오늘도 안 나오먼 아예 보따리 싸서 끝배로 보낼텐께 그리 알아서 해라!"

경주댁은 아직 잠자리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시아버지 말대로 보따리를 싸서 친정으로 쫓겨 가게 되면 소박을 맞고 돌아왔다는 손가락질을 어찌 받을 것이며 친정으로 돌아간다 치더라도 슬하에 자식까지 둔 여자가 잘되면 얼마나 잘되랴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경주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네 살배기 점돌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때 문틈으로 스며드는 고소한 냄새가 있었으니 그 냄새는 바로 집 나간 며느리도 불러들인다는 전어구이 냄새가 아닌가.

결국 전어구이의 구수한 냄새에 후각이 자극되고 경주댁은 굳게 걸었던 빗장을 뽑아 문을 슬그머니 열고 점돌을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었다.

점돌은 며칠 보지 못했던 할머니에게 달려들어 치마폭을 파고들며 연신 허튼 발음으로 할머니를 외쳐댔으며 경주댁도 결국 방문을 열고 나왔던 것이니 이는 인길양반의 시의적절한 전어구이 작전이 잘 맞아떨어진 까닭이었던 것이었다.

여름 벼농사가 망조가 들자 가을 추수기를 보내는 영화농장 사람들은 망연자실 빈 들판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젊은 남정네들은 일자리를 찾아 만주로 가든가 아니면 가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경기도나 그 외 내륙 쪽으로 이주를 해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동네에 남은 사람들은 그나마 밭뙈기라도 있어서 그것으로 그럭저럭 먹고는 살 수 있는 사람들이거나 그도 아니면 죽고 사는 운명을 하늘의 뜻에 맡긴 사람들인 것이다.

늦가을이 되자 지난봄 순녀네가 논보리를 성공적으로 경작했던 것이 본보기가 되어 영화농장의 온 들판은 빈 논 한 자루 없이 보리를 갈았던 것이며 이때부터 겨울에는 보리를 갈고 여름에는 벼농사를 짓는 이른바 이모작의 경작이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이 해 순녀네는 세 배미의 논에 보리를 갈았고 보리 파종을 끝낸 초겨울에 맹심이 시집을 가게 된 것인데 맹심이 시집을 가게 된 배경은 이렇다.

약 30여 년 전 순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복룡촌에 살던 시기의 일이다. 인길양반의 본처는 영산강 건너 영암군의 인길이라는 곳에서 시집을 왔는데 그래서 댁호가 인길이다.

인길댁은 시집을 와, 인길양반과 사이에 첫 딸을 낳았고 그 첫 딸의 이름은 순금이다. 순금이 두 살에 이른 어느 날 인길댁은 용호동 뒤 영산강으로 맛조개를 잡으러 갯일을 나갔다가 개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인길양반은 지금의 인길댁과 재혼을 하게 되었던 것이며 후처인 지금의 인길댁은 순녀의 형제자매들을 낳게 되었던 것이었다.

순금은 성장하여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의 제법 뼈대가 있는 집안인 임 씨 문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던 것이며 순금은 같은 집안의 총각을 여동생인 맹심에게 중신을 하였고 한해가 극심했던 이 해의 겨울에 맹심은 임 총각을 맞아 시집을 가게 되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