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사의 권위가 추락한 현실을 개탄한다
기고/ 교사의 권위가 추락한 현실을 개탄한다
  • 김기록 / 사)노인의 전화 운영위원
  • 승인 2023.08.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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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록 / 사)노인의 전화 운영위원
김기록
김기록

[시정일보] 최근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의 죽음으로 교직은 물론 사회 전반에 자성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다. 유족이 공개한 그녀가 죽기 며칠 전의 일기장은 보는 이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점심을 먹는데 팔이 떨리고, 울음이 나오려 했다.” 대체 무엇이 스물셋 꽃다운 나이의 여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우리는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전인교육이니 교육 백년지대계니 하는 말에 익숙하여 교육의 근원적 중요성과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백 년의 대계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까닭은 교육이 개인의 인격도야와 국가의 역량을 키우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몇십 년도 안 되어 이토록 참담한 사건이 빈발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오늘의 교육 현실을 보면, 경제성장 위주의 산업구조와 생활양식의 급속한 변화 위에 물질적 풍요와 말초적인 편익을 공동체적 가치의 가장 윗자리에 둠으로써 젊은이들을 자본의 편의에 따라 수직적으로 배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교육의 사명인 진리 탐구와 자유, 정의의 정신은 제쳐두고 오직 직업전선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된 것이다. 오죽하면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라 홍보하기까지 하겠는가?

이러한 물질만능주의와 윤리의식의 결핍은 교육의 공기능을 팽개친 방송과 언론에도 큰 책임이 있다. 정치세력과 유착하여 물신숭배의 천박한 생활 풍조를 만연시키는 데 앞장서고 기득권세력을 옹호하거나 내 편 아니면 모두 네 편이라는 흑백논리로 편을 가르다 보니 시끄럽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게 되었다. 이런 현상들에 포위된 학교 교육에서 무슨 자율성과 창의성, 도덕성을 기대할 것인가?

참교육에 신경을 쓸수록 좌절과 자괴감만 커진다는 게 선생님들의 고백이다. 교육자의 신념을 소신껏 펼치다가는 문제 교사가 되기 일쑤고, 사랑의 매는커녕 제자에게 폭행이나 안 당하면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경이다.

학부모가 교실까지 찾아와 욕설하거나 손찌검하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보니 선생님에 대한 경외심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교사 중심의 참교육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면 결국 학생들의 심성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고 우리 사회의 미래도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에 대한 정책당국이나 대중매체의 대처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내놓는 제도나 정책은 전시 효과적인 땜질식 처방이 대부분이고 금쪽같은 내 새끼 운운하는 인기몰이식 방송은 특정 사례를 일반적 사례로 둔갑시켜 만병통치 해피엔딩으로 호도한다.

요즘의 젊은 부부는 대체로 자녀를 하나만 키우게 되어 그런지 육아를 엄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과잉보호로 아이가 버릇이 없거나 참을성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아이가 사랑스러울수록 가정에서부터 엄하고 바른 지도가 절실하다.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최악의 환경에서도 몇십 년 만에 눈부신 발전을 이룬 원동력은 교육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정 치하 36년과 독립운동, 해방, 전쟁 후 자유당의 무능과 부패로 이어진 질곡의 현대사에서 우리의 선배 선생님들은 추상같은 선비정신을 잃지 않고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너희들은 커서 이 나라의 국사(國士)가 되어야 한다(제물포고 길영희)”, “인류의 빛이 되고 민족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배명고 조용구)”라고 외쳤으니 남강 이승훈, 도산 안창호 등 선열들의 참교육 정신을 높이 받들었다.

과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찬물로 항상 꼿꼿이 선 자세로 세수했는데, 옷이 물에 젖는다고 지적하자 천하에 허리 숙일 데가 없어서 그런다 했고, 만해 한용운 선생은 성북동 심우장에 살 때 한겨울에도 불을 때지 않아 냉방에서 자는데, 누가 땔감이라도 가져오면 삼천리강산이 전부 차디찬 왜놈들의 감옥인데 내가 어찌 따듯한 방에서 자겠느냐며 꾸짖어 돌려보냈다 한다. 오늘의 우리 청소년들에게서는 그런 서릿발 같은 기개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라도 학생과 학부모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선생님을 교육의 중심축으로 받들어 위기의 교육 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처럼 교사들의 권위가 추락한 현실에서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희망에 찰 수도 없고 이 나라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