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우리는 레드우드를 통해 공동체를 배워야 한다
시정칼럼 / 우리는 레드우드를 통해 공동체를 배워야 한다
  • 권 혁 중 논설위원
  • 승인 2023.08.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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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혁 중 논설위원
권 혁 중 논설위원
권 혁 중 논설위원

[시정일보]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100m이상으로 치솟은 거인, 바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인 레드우드가 서 있다. 고대 자이언트세쿼이아의 사촌 격인 레드우드는 공룡 시대부터 북반구를 지배한 나무 종류로 꼽힌다. 가장 성장이 빠른 생명체로 손꼽히는 레드우드는 화창한 날씨 속에 묘목이 매년 1.8m씩 자란다. 십여 년마다 열매를 맺는 레드우드도 있지만 그때마다 숲에 수백만 개의 씨앗을 뿌리고, 3세기를 거치면 100m 이상의 거목으로 자란다. 그러나 이 큰 나무의 키에 비해 뿌리는 3~4m밖에 안 된다.

우리는 태어나서 자라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라는 끈을 가지게 된다. 인연에는 좋은 인연도 있고 좋지 않은 인연도 있다. 그렇지만 만남이라는 줄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연의 선택은 자신이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선(善)과 악(惡)은 늘 함께 공존하는 것이며 가치판단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갑(甲)과 을(乙)이 고정되어 있지 않듯이 선과 악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늘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는 자신의 의지(意志)보다는 주변의 환경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의사(意思)를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레드우드 나무는 자식같은 작은 나무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광합성을 하도록 자신의 가지를 스스로 부러뜨린다. 특히 토네이도나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나뭇가지가 자주 부러지는데 레드우드는 서로 간의 뿌리를 묶어 서로를 지탱한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렇게 묶어 놓은 뿌리는 서로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인연이라는 통로를 통해 맺어진 건전한 끈도 없고, 정쟁(政爭)으로만 사회가 돌아간다. 모든 주권(主權)을 가지고 있는 국민에 대한 예의(禮意)는 안중(眼中)에도 없다. 정당들은 서로를 나쁜 길로만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정쟁에만 집중하고 있어 주권자인 국민들은 엄청난 피로를 감내(堪耐)하고 있다. 국민들은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살림살이가 크게 힘들어진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정치적 목적만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안정적이고 생활이 편안하도록 도와주는 정책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국민을 올바르고 제대로 섬기는 지도자를 기다려야 할까? 한 번의 선택이 잘못됐으면 다음번에는 똑같은 경우를 발생시키지 않아야 발전한다. 발전한다는 것은 올바르게 진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올바르게 진화하기 위해서는 주권자인 국민이 지역이나 국가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지도자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활용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기후변화가 너무 심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단순하게 자연재해에 대한 단기적 대책이 아닌 발전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책을 확실하게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동안 추진했던 정책을 세밀하게 검토해 국민들이 재해로부터 더 이상의 아픔과 고통을 품지 않도록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깊이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므로 레드우드처럼 서로 뿌리를 묶어 서로 지켜주고 나누어주는 그런 큰 사회가 되기를 고대한다.

우리는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험난한 자연속에서 수 많은 세월을 지키고 있는 레드우드로부터 ‘공동체(共同體)’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