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14]
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14]
  • 임동식
  • 승인 2023.10.20 08:55
  • 댓글 0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임동식
임동식

[시정일보] 1946년 8월, 지난 4월에 발병하여 온통 영화농장 언저리의 동네들을 휩쓸었던 시두손님(천연두)은 7월 장마철에 접어들며 사라졌다. 그리고 8월, 우기가 끝나자 작열하는 태양 빛은 정수리가 벌어질 만큼이나 극렬하게 쏟아진다.

정오의 한더위를 피해 인길댁과 순녀는 논에서 피를 뽑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두 모녀의 하얀 무명저고리의 걷어 올린 소맷자락 끄트머리에는 논바닥에서 묻은 뻘국이 거뭇거뭇 묻어있다. 순녀가 이마의 땀을 저고리의 소맷자락으로 훔치며 인길댁에게 말한다.

"어무이! 논바닥에 이놈의 피는 어째 이렇코 많당가요?"

"그래도 우리 논은 옥답이라 그렇코 많던 않다. 쩌 밑에 피배미뜰 가 봐라! 피 반, 나락 반이여. 올해는 나락이 요만큼이라도 돼야 간께 참말로 다행이다. 가실에 나락이 치렁치렁 열려서 풍년이 들어야 시안(겨울)에 너를 넉넉허게 여우고 느그 동생들 사친회비도 마련허제."

하기는 가을 논바닥의 작황에 따라 집안의 살림살이가 풍성함과 빈곤함의 잣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거기에다 올겨울에는 순녀가 시집을 가야 하는 큰일을 앞두고 있으니 당연히 벼농사의 결실이 좋아야 할 일이다.

순녀는 인길댁의 결혼 운운하는 자신의 말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의 문제보다는 그녀의 가족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러한 순녀가 말한다.

"어무이! 나 시집가는 것은 둘째로 치고 나는 어무이, 아부지랑 우리 오빠랑 동생들이 잘살면 돼야라우."

인길댁은 늘 가족을 위하는 순녀의 효성스러운 마음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러기에 되레 그러한 순녀를 항시 가여히 여기고 있었다. 인길댁은

"니 맘은 잘 알겄다만은 그래도 평생에 한 번 있는 큰일인디 남보다 더는 못 해도 못 허지는 안 해사제. 예단 준비도 해야 허고 시집가서 쓸 세간도 마련헐라면 농사가 질로(제일로) 우선이여."

하고 말하는 것이다.

"어무이! 나 시집을 가도 우리 아부지, 어무이, 그러고 동생들 보러 자주 집에 올 것이여라우. 보고 싶으면 어찌게 해요. 헐 수 없제…."

"순녀야! 시집가면 집이 오고 싶어도 참고 살아사 써! 자주 친정에 들락거리면 시부모들 눈 밖에 난다."

이렇듯 이들 두 모녀의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틋하였다. 순녀가 화제를 바꿔 이렇게 말한다.

"근디 어메! 언저녁 밤에 요상헌 꿈을 꿨어라우."

"뭔 꿈을 꿨다고 그러냐?"

"아 글씨, 우리 마당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놨는디 저만치서 소솔이(회오리)바람이 마당으로 불어 오디만은 빨랫줄 끄트머리에 걸린 허연 바지를 휙~허고 몰아서는 뒤 까끔(산)에 큰 솔낭구 가지를 스치더니 소소리 바람 따라 빙빙 돔서(돌면서) 하늘 높이 구름 속으로 날아가 부요."

"쳇! 애기들 개꿈이여."

"아따, 어무이! 뭔 개꿈이여라우?!"

개꿈이라고 일갈하는 인길댁이지만 내심으로는 기괴한 꿈에 대하여 이런저런 나름의 해몽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메! 어째 나는 그 꿈을 꾸고 나서는 맘이 이상해."

"글씨 말이다. 바지가 휙~허고 날라갔닥 헌께 쪼깐 이상허다만은 개꿈이제 뭣 일라던?"

인길댁은 에둘러 꿈 얘기를 외면하려 하였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 켠에는 순녀의 꿈 얘기가 고개를 디미는 것이었다. 두 모녀가 도란도란 얘기하는 사이에 집 앞에 이르렀다.

누렁이 벅구는 그만의 발달 된 후각으로 동구 밖의 쥔네 냄새를 알아차린 것인지 다리 건너까지 꼬리를 흔들며 마중을 나와 인길댁과 순녀의 주위를 빙 한 바퀴 돌더니 앞장서서 집으로 향한다.

날렵한 벅구를 앞세워 인길댁과 순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린 큰방에서는 인길양반이 손님을 앉혀 놓고 마름모 한지에 한약을 싸고 있었다.

약을 지러 온 손님은 백호동의 정 황용이라는 남정네며 인길댁이 마루로 올라서자 정 황용은 아는 체를 하며 인길댁에게 인사하였다.

"저희 마누라가 쪼깐 아퍼서 약을 좀 지러 왔어라우."

정 황용은 순녀네와 사는 동네는 달라도 들판의 논을 이웃하고 있어서 농사일로 서로가 자주 대하는 사이였다. 인길댁이 흘러가는 말로

"어디가 많이 아픈개비요?"

하고 묻자 정 황용은

"아, 며칠 전부터 설사를 험서 머리가 아프다고 해 쌌디만 오늘 아칙 나절에는 이 더운 날씨에 춥다고 보들보들 떨고 야단인께 헐 수 없이 어르신한테 약을 지러 왔어라우."

하고 묻잖은 대답을 친절하고도 세밀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인길양반이 쌈질한 약봉지를 정 황용에게 주자 정 황용은 약봉지를 받아들고 허둥지둥 돌아갔다.

"아니, 시두손님이 아직도 남아있는갑네"

인길댁의 이 말에 인길양반은 손을 가로저으며

"아니여. 저것은 시두손님이 아니여. 설사를 헌다니 뭔 음식을 잘못 먹었든가 해서 뱃속에 탈이 났을 것일세."

하고 인길댁의 말에 일축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이다. 순녀네 이웃인 광암댁이 찾아왔다.

"인길 아제! 목포 사는 우리 여동상이 엊그저께 우리 집에 댕기러 왔는디 머리랑 배가 아퍼서 저리 죽것닥 허요. 그러니 쪼깐 봐 주이쑈!"

하고 인길양반에게 애원하듯 말하자 인길양반이 묻는다.

"언제부터 얼마나 아픈지 찬찬히 말해 보이쑈!"

"그~, 긍께 어저께 정나잘(정오)에 점심을 잘 묵고는 밥숟갈 놈서부터 머리허고 배야지가 하잖허닥 허디만은 오늘 낮부터는 치깐을 안방 드나들데끼 험서 죽는닥 허요. 긍께 언능 좀 가 보시장께라우!"

광암댁은 마음이 급한 것인지 말을 물동이 쏟아붓듯 하고는 재촉하는 것이다. 인길양반은 광암댁을 앞세우고 광암댁네로 향했다. 목포에서 왔다는 광암댁의 여동생은 갓 쉰을 넘긴 마른 체형의 중년 여인이었으며 반 주검이 돼 안방의 켠에 늘어지듯 누워있고 광암댁의 손자인 정언이는 그 주변을 맴돌며 놀고 있었다. 인길양반이 환자의 이마를 짚어 보고 손목을 잡아 진맥한 후 짐짓 놀란 표정으로

"열이 이렇코 많으신디 머리가 아프실 만도 허요. 배는 어짜요?"

하고 환자에게 물었다.

"아프요."

환자는 실 같은 소리로 겨우 대답을 하고 만사가 귀찮은 듯 눈을 감았다. 옆에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는 광암댁은 인길양반을 바라보며 애원이라도 하는 눈빛이었다. 인길양반은 광암댁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약을 지어 광암댁에게 건네주며

"아짐! 동생의 상태가 심헌 편인께 이 약을 먹고도 차도가 없으면 목포 병원으로 덱꼬 가셔야 쓰요. 혹시나 큰 병일랑가도 모른께 말이여라우."

하고 일러 주었다. 한의는 한의대로, 양의는 양의대로 사람의 병을 다스릴 수 있는 영역과 한계가 따로 있을 것이며 광암댁 동생이 앓고 있는 병 또한 한의인 인길양반이 지어주는 한약의 한계를 벗어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인길양반은 광암댁에게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 정오가 지난 시간, 순녀는 마루에서 깨 벗은 사내아이의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사내아이는 그녀의 막냇동생인 네 살배기 경배였다.

지푸라기를 뭉뚱그려 보드랍게 하여 그것으로 살갗을 문질러 때를 벗기는 것이다. 아이는 그것이 고통스러운지 자꾸만 몸을 비틀며 순녀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한다.

"이놈의 자식, 가만 있어야제 누나가 때를 벗기제. 인자 누나 시집가면 해 주도 못헌께. 옳지. 쪼깐만 더 벗기면 다 된다."

순녀는 안간힘으로 아이의 팔을 잡고 문지르고 물을 붓고 하기를 반복하고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한다.

"아퍼. 아~아~아! 아퍼"

"옳지. 우리 경배 이쁘지. 쪼깐만 허면 다 헌다."

아이는 여전히 오만상을 찌푸리고 순녀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발버둥을 한다. 이때 어제 한약을 지어 간 광암댁이 애달픈 얼굴을 하고 마당으로 들어서며 순녀에게 묻는다.

"순녀야! 느그 아부지 계신다냐?"

순녀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밖의 소리를 듣고 방에 있던 인길양반이 마루로 나왔다.

"아짐! 어서 오이쑈! 동상 분은 쪼깐 우선 허십띠여?"

인길양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광암댁은

"인길 아제! 우리 동상이 약을 달여 먹였는디도 그대로요. 아니, 모가지 쪽에 삘건 뚜드럭(두드러기)까지 양씬 나불고 머리가 터지게 아프닥 허요. 어째야 쓰께라우?"

하고 하소연을 하자 인길양반이 심각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래라우? 모가지 쪽에 뚜드럭까지 났다고라우? 큰일이네. 어디 그러면 한 번 가 보입시다!"

이윽고 광암댁과 인길양반이 광암댁네 집에 이르렀다. 인길양반이 마당에 들어서자 광암양반과 그의 큰아들 순재가 마루에 앉아 근심 어린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나며 인사를 하였다.

아픈 환자가 한 사람에게는 처제요, 또 한편은 이모가 되는 인척 관계이니 이들이라고 아픈 환자를 옆에 두고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다. 순제가 인길양반을 따라 방으로 들어서며 말한다.

"인길 아제! 이모님이 많이 아프신 것 같으요. 찬찬히 잘 좀 봐 주이쑈!"

"어이. 그렇코 험세."

인길양반은 짧게 대답을 하며 환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환자인 광암댁의 여동생은 어제와 다름없이 여전히 방 한 켠에 누운 채 끙끙 앓고 있었다.

머리는 산란스럽게 헝클어져 있고 풀어진 옷고름 사이로 보이는 목 언저리에는 쌀알만 한 발진이 깨알을 뿌려놓은 듯 수없이 돋아 있었다. 환자를 살펴본 인길양반이 순재에게 물었다.

"자네 이모님 심각허신 것 같은디 치깐은(화장실) 언제 가셨는가?"

"아칙밥 묵고는 서너 번 가셨는디요."

"그래? 그럼 치깐에 가서 똥을 한번 봐사 쓰겄네. 아무짝에도 이것이 장질부사 같단 말이시."

이 말에 순재가 놀란 얼굴로 묻는다.

"뭐이라우? 자, 장질부사라우?"

순재와 옆에서 듣고 있던 광암댁 내외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 치깐으로 한 번 가보세!"

인길양반을 따라 순재가 화장실로 갔다. 찌는 더위를 타고 퍼지는 악취를 무릅쓰고 인길양반이 변통(便桶) 속의 변을 확인했다.

"거 보소! 장질부사가 틀림이 없네. 자네도 한 번 똥을 보시게!"

인길양반의 권장에 변을 확인한 순재가 코를 틀어잡고 화장실을 나와서는

"야~아, 피 반, 똥 반이요. 그러면 이모님이 장질부사가 맞으께라우?"

하고 변통(便桶)의 내막을 확인 답변하였다. 이로써 광암댁의 여동생이 장티푸스에 걸린 사실이 확인되고 인길양반은 순재에게 그의 이모를 도회지의 큰 병원으로 데려가라는 당부를 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인길양반은 방으로 들지 않고 토방에 서서 인길댁을 불렀다. 이때 총기 밝은 순녀가 먼저 알아차리고 대야에 물을 떠 왔다.

"아부지! 인자 저녁 진지 잡술 시간인께 손발 닦고 들어가이쑈!"

"오냐! 고맙다. 그리 놔라!"

인길 양반은 마루에 걸터앉아 대야에 발을 담그고 씻으며 순녀에게 이웃집 광암댁네의 장티푸스에 관한 얘기를 한다. 이때 부엌에 있던 인길댁도 마당으로 나왔다.

"대전 어메! 우리 동네에 또 역질이 돌 모양이네. 그렁께 식구들 관리, 특히나 애기들 단속을 잘해사 쓰겄네."

이렇게 인길 양반이 말하자 인길댁은 지레짐작으로 묻는다.

"어째 광암떡네 동상이 안 좋습디여?"

"그렁께 말이세. 열이 심허게 남시러 목 언저리에 보리쌀만 한 발진이 생기고 피똥을 싸는 것을 본께 여지없는 장질부사여."

이렇게 인길양반은 백호동의 정 황용 마누라에 이어 광암댁 동생의 병세를 보고 동네에 장티푸스가 발생했음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지난 초봄의 시두손님, 즉 마마에 이어 8월 무더위 속에서 역질인 장티푸스, 이른바 염병이라는 역병이 영화농장에 창궐하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도덕지는 광암댁의 여동생으로부터 시작된 장티푸스 환자가 너덧 집 건너 한 사람 꼴로 번져 나갔다. 광암댁네 여동생은 한약을 달여 먹어도 차도는 없고 격리 거처할 방이 없는 관계로 잿간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누워서 자연치유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며 애초부터 광암댁의 여동생이 장티푸스에 감염 된 사실을 알았더라면 한약 처방은 안 했을 것이다.

이미 장티푸스균에 감염이 된 환자를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병세를 다소 완화 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질적 치료 방법에는 못 미치는 까닭이라 해야 할 것이다.

광암댁의 여동생이 장티푸스를 앓기 시작하고 여남은 날이 지난 날이다. 인길양반이 아랫목에 누워 순녀를 불렀다. 순녀가 방으로 들어서며 묻는다.

"야~아, 아부지! 쪼깐 우선 허시요?"

인길양반이 두통에 몸져누운 것이며 인길댁에게는 경배를 데리고 작은방으로 가 있게 하였다.

"아니다. 무장 무장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는지 오한이 드는구나. 쩌기 시렁에서 금은화 세 꼬투리하고 정향 두 촉을 꺼내서 그놈을 달여서 좀 가져오니라!"

"야~아, 아부지. 알았응께 아무 꺽정 마시고 눠 계시쑈! 내가 언능 해 갖고 오껏이라우(올테니까요)."

잠시 후 순녀가 금은화와 정향 끓인 물을 사발에 담아 왔다.

"아부지! 이놈 잡수고 새털같이 가붑게 털털 털고 일어나시쑈!"

"오냐! 이놈을 마시고 나면 쪼깐 나을 테제…."

이튿날 새벽이 되었다. 어제 약초를 달여 먹었어도 병증은 도리어 악화 일로여서 두통과 복통이 중복되고 게다가 설사까지 동반되는 것이었다.

인길댁은 하얀 천에 찬물을 적셔 인길양반의 이마에 올려 주며 체온을 낮춰주려 하지만 이것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순녀가 말한다.

"아부지가 어지께 탕을 잡쉈는디도 더 심허시면 어찌게 헌다요?"

인길양반은 여전히 양손으로 배를 만지며 끙끙 앓고 있을 뿐 대답이 없다. 이때 대전이 방으로 들어와 인길양반 곁으로 다가가며

"아니, 어째서 아부지가 더 아프신개비네요?!"

하고 묻자 인길댁이 대답한다.

"글씨 말이다. 새복(새벽) 내 치깐에 다니시고 열이 불뎅이신갑다. 어째야 쓰끄나?"

인길양반의 이마를 짚어 본 대전은

"아이고 이거 그냥 두시면 안 되겄네요. 목포 피병원으로 모시고 가사쓰겄소. 순녀야! 내가 회산 백용이를 델꼬 올랑께 작은집에 가서 동봉이를 좀 델꼬 와라! 그러고 어무이는 아부이 좀 보살펴 드리고 계시쑈!"

하고 인길댁과 순녀를 불러 당부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대전은 그의 사촌 동생인 동봉의 부축을 받아 아버지를 목포의 병원으로 모실 요량인 것이다. 잠시 후 대전이 회산으로 부르러 간 마차와 함께 집 앞 신작로에 도착하였다.

"백용이! 잠시 구루마 여그다 세우고 기다려 주소! 내 집에서 아부지를 모셔올 테니…."

"야~아. 그러이쑈!"

대전은 집으로 들어가고 마부 백용이 몰고 온 말은 등에 구루마를 맨 채 길가의 풀을 뜯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갔던 대전이 인길양반을 등에 업고 그 뒤로 동봉과 순녀가 부축하여 마당을 나왔다.

그 사이에 말례가 포대기를 가져와 마차의 바닥에 깔고 환자인 인길양반을 눕혔다. 인길댁을 비롯한 가족들은 모두 마차의 뒤쪽으로 서서 배웅을 하고 마차가 출발할 채비를 하였다. 인길댁은

"언능 출발해라! 지금 가면 학생 차를 탈 수 있겄다. 잘 갔다가 와!"

"야~아, 어무이. 꺽정 마시고 들어가시쑈!"

이렇게 하여 인길양반은 마부, 백용이 끄는 마차에 실려 목포로 향하였고 인길댁과 그의 식구들은 신작로에 서서 멀어져 가는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차에 실린 인길양반을 떠나보내고 순녀네 식구들이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순녀가 말한다.

"어무이! 아부지가 여적없는(여지없는) 장질부사가 맞은디 이유제 광암 아짐네서 엥긴(옮긴) 것이 틀림없어라우."

"큼메 말이다. 그렇게 오지 말라고 해도 약을 지어 돌라고 와 쌌는디 어찌게 허겄냐? 느그 아부지가 의원을 안 허시먼 몰라도 의원을 허신께 헐 수 없제."

그렇다. 장티푸스가 창궐함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집 앞에 장대로 걸장을 쳐서 서로의 왕래를 최대한 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 집에 볼일이 있어 찾아드는 사람을 문전에서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 광암댁이 장티푸스에 걸린 동생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루가 멀다고 순녀네 집을 방문하는데 이를 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순녀네 아버지는 장티푸스에 전염이 되었던 것이었다.

인길양반이 목포의 피병원으로 간 지 이틀째 되는 날 대전이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왔다. 인길댁이 아들을 보자 반가워서 묻는다.

"어째 아부지는 병세가 좋아지셨다냐?"

"야~아. 설사랑 복통은 없어져겠는디 어째 기운을 못 차리고 일어나덜 못 허시네요. 그래서 제가 기운 차리시라고 한약을 쪼깐 달여 드려볼라우."

대전은 큰방의 시렁에 치렁치렁 매달린 약초 봉지를 내려 약초들을 몇 조각씩 챙기더니 순녀에게 건너 주며 말한다.

"아부지 드시고 기운 차리시게 언능 달여라! 복령 몇 쪼가리 허고 녹각에다 몇 가지 약제를 넣었응께 그놈 잡수면 일어나실 테제."

"야~아. 알었어라우. 이놈 잡수고 언능 인나셔야 쓰껏인디…. 근디 오빠 얼굴이 꾀죄죄허니 시수를(세수를) 안 허셨는갑소! 물 떠 드리께 약 달이는 동안 시수나 허이쑈! 오늘 아칙에는 내월촌 성님이 물을 두 동우나 여다 줘서 물도 많이 있응께라우."

"응! 그래. 근디 어째 내 얼굴이 던지럽냐(더럽냐)? 병원에서 씻기가 그렇더서 못 씻었다만."

"야~아. 얼굴이 깨깥잖으요."

순녀는 대야에 물을 부어 부엌문 앞에 내놓고 한약을 안친 아궁이에 불을 땐다. 순녀네 아버지가 장티푸스 환자가 되자 순녀네 식구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혹시라도 장티푸스를 전염시키랴 싶어 스스로 동네 우물을 가지 않으니 이웃의 아낙네들은 번갈아 가며 물을 길어다 순녀네 집 앞에 놔 주었으며 이로써 순녀네는 밥을 짓고 빨래, 집 안 청소와 손발 등을 씻게 되었던 것이었다. 대전이 집을 나설 채비를 마치고 마루에 섰다.

"오빠! 여그 병에 담았응께 갖고 가이쑈!"

"응! 그래. 고맙다."

탕제를 마친 한약을 병에 담아 그것을 순녀가 대전에게 건네주었다. 대전의 처 경주댁은 병원에서 쓸 것들을 싼 듯한 하얀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신작로가 보이는 마당 끄트머리에 서서 대전이 나오기를 기다렸고 인길댁은 방 어딘가에 감춰뒀던 비상금인 듯 똘똘 말아진 지전 몇 잎을 들고나와 대전의 저고리 주머니에 넣어 주며 말한다.

"아나. 이놈 게아침에 너갖고 가서 병원비에 보태 쓰거라!"

"어무이! 비상전을 줘 불으시면 어무이는 어쩌실라고 그러요?"

"괜찮허다. 염려 말고 넣고 가그라!"

대전은 인길댁이 하는 대로 두었다. 인길댁은 어머니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준들 아까울 것이 없는 것이며 대전도 그러한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사양하지 않는 것이리라. 집을 나서며 대전은 문득 생각이 난 듯

"어무이! 우리 식구들 모두가 조심해야 쓰겄제만 특히나 애기들 점돌이랑 경배, 손발을 잘 씻쳐 주시고 날것은 절대로 먹이지 마이쑈!"

하고 당부하며 집을 나선다.

"오냐 오냐. 그럴랑께 꺽정 말고 아부지나 잘 돌봐 드려라!"

순녀네 식구들은 마당에 서서 한약 병을 들고 떠나는 대전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하였다. 이윽고 대전이 병원에 도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 앞에 앉았던 간호원이 일어서며

"아제! 친구분이신가 찾아오셔서 시방 병실에 하나씨랑(할아버지) 같이 계셔라우."

하고 묻잖은 것을 일러주었다. 누가 찾아온 것인지 궁금한 듯 대전은 병실이 있는 2층으로 바쁘게 올라갔다.

병실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두 개씩 모두 네 개였으며 인길양반은 오른쪽의 두 번째 방에 입원하고 있었다. 대전이 여닫이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있던 오 근식이 일어서며 맞는다.

"성님! 집에 가셨담서라우(가셨다면서요)?"

"어이. 아침에 여수행 타고 갔다 시방 오는 길일세. 근디 어찌게 알고 자네가 왔는가?"

두 사람은 반갑게 손을 마주 잡는다.

"어지께 쌍본이한테 소식을 듣고 아까 정나잘 차로 내려왔어라우."

문병을 온 근식은 선후배의, 아니 장차 처남, 매제 간의 의리를 지키려 했던 모양이다.

"그랬든가? 와 줘서 고맙기는 허네만 바쁠 텐디…."

대전은 말꼬리를 흐리긴 해도 문병을 와준 근식에게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 시선을 인길양반에게 돌리며 묻는다.

"아부지! 쪼깐 좋아지셨소?"

인길양반은 핼쑥해진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대전의 물음에 대답한다.

"오냐. 인자 정신도 좀 맑어지고 두통도 개고 배도 많이 좋아졌다. 오늘 저녁나절에 퇴원해서 집으로 가고 잡다."

발음은 또렷하고 목소리에 힘이 있어 장티푸스의 병고를 벗어난 듯하였다. 그러나 대전은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부지! 여그서 하룻밤 더 계시고 낼 오전에 퇴원허십시다."

"아니여. 내 몸은 내가 잘 알제. 인자 더 있을 것 없이 의사 선생께 말해서 퇴원해 집에서 몸조리해도 쓰것응께 언능 의사 선생께 가서 말해라!"

이렇게 하여 인길양반은 장티푸스를 이기고 일어났다. 8월의 해는 길기도 하여 해가 뉘엿거리는 해름에 벌써 목포 피병원을 출발하였건만 인길 양반이 대전과 근식의 부축을 받아 순녀네 마당에 들어서는 시간에도 아직 짙은 어둠은 내리지 않았다.

마당 어귀에 모깃불로 피운 마른 풀에서는 뭉실뭉실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루 일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마친 시간이라 순녀네 마루에는 마실 온 순녀네 작은댁 식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인길양반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마루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고 인길댁과 순녀는 버선발로 인길 양반을 향해 뛰어갔다. 의외의 빠른 귀가에 인길댁은 화색이 되어 인길 양반의 팔을 붙들며 ​

"오메! 많이 수척해 불었소. 인자 다 났었을깨라우?"

하고 묻자 인길양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인길 양반이 마루로 오르고 순녀는 큰방 아랫목에 요를 펼쳐 깔았다.

"아부지! 언능 오셔서 누우시쑈!"

인길양반은 기운이 없는 것인지 쓰러지듯 요 위에 드러눕고 인길댁은 저녁상을 차릴 요량으로 부엌으로 갔다. 대전과 일행이 되어 시중을 거들며 따라온 근식은 대전과 함께 윗목에서 인길 양반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인길양반이 손짓으로 대전과 근식에게 앉으라고 하자 두 사람은 윗목에 앉았고 대전이 인길양반의 머리맡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묻는다.

"아부지! 좀 어짜시요?"

"배고 머리고 아프던 않다만 기운이 없다."

"야~아. 아부지! 아직나절에 끓인 탕제를 한 보세기 자시면 수월허시 것이요. 말례야! 가서 보세기 좀 가져오니라!"

대전은 체온을 알아보려 인길양반의 이마를 손으로 짚자 인길양반은 아들의 미더운 손길이 뿌듯한 것인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부엌으로 갔던 말례가 사발을 가져오고 대전이 병에 든 약을 사발에 따랐다.

"아부지! 기운 나시게 이거 드시고 눠 계시쑈!"

"오냐. 그리 놔라!"

인길양반은 사발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마시고는 입가에 묻은 약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양반 자세로 앉으며

"나 쭈에(때문에) 자네까지 이렇코 와 줘서 고맙네."

하고 윗목에 앉은 근식에게 말하자 근식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한다.

"아니라우. 아부지께서 편찮으신디 당연히 와사제라우. 인자 언능 기운 차리시고 일어나시기만 허시쑈!"

"어이 어이 알었네. 탕제도 마시고 했응께 낼 아직이면 나을 테제."

대답하는 인길 반의 얼굴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려는 것이 역력했다. 이때 부엌문이 열리고 순녀가 상을 들고 들어왔다.

"아부지! 진지 잡수시쑈!"

순녀의 뒤를 이어 경주댁도 미음을 들고 들어와 상에 놓으며

"아부지! 여그 깨죽을 좀 썼응께 언능 잡수고 기운 차리시쑈!"

하고 인길양반에게 식사를 재촉하였다.

"오냐. 언능 묵자! 자네도 시장헐 텐디 들세!"

인길양반이 대전과 근식에게 말하고 세 사람은 식사를 시작한다. 여섯 살배기 경배가 인길댁의 치맛자락 언저리에서 얼쩡거리다 식사를 하는 인길 양반의 품으로 파고든다.

점돌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점돌은 제 아버지인 대전의 옆으로 끼어든다. 저녁을 이미 먹었어도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이라선지 벌써 배가 꺼진 모양이다.

인길댁은 아이들의 속내를 모를 리 없지만 두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인길댁에게 경배는 막내아들이요 그보다 두 살 위인 점돌은 큰 손자이다.

"이놈 자식들. 경배야! 점돌아! 아부이 진지 잡수게 이리 오니라! 언능 이리와!"

"내비 두소! 애기들이 배가 고픈 모양이네."

인길 양반이 점잖게 그냥 두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순녀가 인길댁을 거들어 두 아이에게 소리친다.

"그래도 어른들 진지 잡수는디…. 경배랑 점돌이 언능 이리 와! 안 오면 둘 다 목깐 니킬텐께..."

두 아이는 목욕하기가 싫은 것인지 마지못해 뒤로 물러난다. 세 사람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상을 내자 근식이 돌아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님! 저는 인자 가볼랍니다. 편안히 눠 계시쑈! 언능 쾌차허시고라우!"

"그러실랑가? 고맙네. 자네도 피곤헐 텐디 더 어둡기 전에 뜨시게! 그러고 자네 조모님께 안부 전허시게나"

인길양반은 궁둥이를 들썩이는 정도로 인사를 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근식은 문을 나서며 부엌문 쪽을 돌아다 봤다. 순녀와 눈길을 마주하여 밖으로 나오라는 시늉을 하고 자신은 앞문으로 나서고 이를 알아차린 순녀는 부엌을 나서서 마당으로 나갔다.

날은 어두워져서 사람의 윤곽만을 알 만큼이고 근식은 대문 앞에서 순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녀가 다가가자 근식은 저고리의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날이 어두운디 어찌게 가실라요?"

순녀가 염려의 말을 하자 근식은 괜찮다며 손에 쥐었던 것을 순녀에게 건넨다.

"이거 얼마 안 되제만 아부지 고기라도 좀 사다 드리소! 기운 차리시게."

"오메! 뭣 헌다고 돈을 다 주요! 집이(당신) 쓰시제. 고맙기는 허요만은…."

근식이 건넨 돈은 50환이었다.

"마음으로 전허는 것인께 적다고 숭(흉) 보지 말고 받어 주소! 언능 들어가소!"

"야~아! 밤이 깊은께 언능 가이쑈!"

근식은 순녀의 손을 잡아주고는 이내 돌아서서 길을 떠났다. 순녀는 근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근식이 다리를 건너 신작로 길로 멀어져 가고 힐긋거리는 모습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근식을 배웅한 순녀는 다시 큰방으로 돌아왔다. 인길양반은 아랫목 요 위에 누워있고 식구들은 모두 인길 양반을 주시하는 가운데 얘기를 나누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녀에게 시선이 모였다. 인길댁이 순녀에게 묻는다.

"갔다냐? 오늘 느그 아부지 모신다고 힘들었을 텐디 어두와서 어찌게 가는가 몰르겄다."

"어메! 꺽정허지 마이쑈! 젊은디 밝은 눈으로 졸졸 갈 테제라우! 그나저나 거시기가 아부지 고기 사 드리라고 50원이나 주고 갔어라우."

순녀가 손바닥을 펴 접힌 지전을 펼쳐 보였다. 인길양반은 얘기 소리를 들어서인지 고개를 돌려 눈을 빼꼼히 떴다가 다시 감는다. 대전은 순녀 손에 놓인 지전을 바라보며

"요새 같은 돈 가뭄에 뭔 돈을 그리 많이 줬다냐! 참말로 고마운 사람일세."

하고 말한다. 순녀에게 전달한 돈의 의미, 50원이라면 의미에 따라서는 그 액수가 많을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지만 나락 몇 가마를 팔아야 겨우 몇백 원을 만들 수 있으니 50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다.

액수가 많든 적든 근식은 사위로서, 또는 장차 순녀의 신랑으로서 그 돈을 줬던 것이다. 밤이 깊어지자 큰방에 모였던 식구들은 모두 잠자리를 찾아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큰방에는 인길댁 내외와 그 아들인 태곤과 경배가 남았다.

두 아들은 잠이 들고 인길댁은 잠든 아이들과 인길양반 사이에 앉아 상지를 앞에 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누워있던 인길양반이 숨을 가쁘게 쉬며 손은 자꾸만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린다.

수상쩍은 행동을 보고 인길댁은 상지를 밀쳐내고 인길양반에게 다가갔다.

"대전 아부지! 어째서 그라요?"

인길댁은 인길양반의 이마에 손을 짚어 본다.

"오메. 이마에 열이 겁나게 많네. 대전 아부지! 대전 아부지!"

인길양반은 대답 대신 가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만 뱉어낼 뿐이다. 인길양반의 모습에 놀란 인길댁은 황급히 막 잠자리에 들려던 대전을 데려왔다.

대전은 안색이 흑빛이 된 인길양반의 머리맡으로 가 꿇어앉으며 인길양반의 이마를 짚어 본다. 이마는 끓듯이 뜨겁다.

"아부지! 아부지! 어쩌시오? 아부지!"

인길양반은 대답 없이 가까스로 실눈만 떴다 감아 버린다. 초조해진 인길댁은 방 한 켠으로 널브러진 바느질거리를 윗목으로 모조리 밀어붙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순녀 방으로 가 순녀를 불렀다.

부르는 소리가 어찌나 다급했던지 순녀는 잠옷 바람에 큰방으로 건너오고 이어서 말례도 따라 들어왔다. 순녀는 인길댁과 대전을 번갈아 쳐다보며 묻는다.

"어째 아부지가 더 아프시다우? 우메 울 아부지 언능 낫으시제…."

인길양반의 모습은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달리 죽은 듯 가느다랗게 숨을 들이켰다가 가끔 길게 날숨을 내쉬었다. 대전이 순녀에게 찬물과 수건을 가져오라고 말하자 순녀가 가져왔다.

대전이 대야의 물에 수건을 적셔 인길양반의 이마에 얹고 손바닥으로 수건을 다독였다. 방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대전이 인길 양반을 부른다.

"아부지! 아부지!"

그러나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순녀가 부른다.

"아부지! 아부지!"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려는 것일까, 인길 양반은 미간을 잔뜩 찡그리더니 끝내 대답은 없고 눈은 감은 채였다. 순녀가 두 손으로 인길 양반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듯이 잡았다. 그리고 인길양반을 불렀다.

"아부지!"

여전히 대답이 없자, 식구들은 너나없이 인길 양반을 불렀다.

"대전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식구들의 부름에는 울음이 뒤섞이기 시작하고 요 위에 누운 인길양반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온 힘을 다하는 듯 경련을 크게 서너 차례 하고는 사지가 늘어져 버렸다.

"아이고! 대전 아부지! 대답 좀 해 보시쑈! 아까도 멀쩡허시디만 이것이 어찌게 된 것이라우!"

인길댁이 통곡을 시작하고 대전은 인길양반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귀를 인길 양반의 코에 갖다 대더니 인길댁과 한가지로 통곡을 시작했다.

호흡이 끊어진 것이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초저녁만 해도 곧 병마를 떨치고 일어날 것 같았는데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운명하다니 식구들 누구라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낌새를 지켜보던 순녀도 폭발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말례와 경주댁에 이어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눈물을 흘리니 온통 방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렇게 인길 양반은 1946년 음력 8월 초이레 날 밤 12경 숨을 거둔 것이다.

인길양반의 본명은 박 평래, 그는 1886년 고종 24년 겨울에 밀양 박씨들의 집성촌인 복룡촌에서 부잣집 큰아들로 태어났으며 그 마을에서 성장하고 결혼하여 1940년에 도덕지로 이사를 하고 그로부터 여섯 해 만에 운명을 하였으니 그의 나이 예순한 살이었다.

한밤중의 통곡 소리에 이웃집 쌍본이 찾아왔다. 쌍본네는 순녀네와 이웃으로 서로 부엌의 시렁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이니 이웃집의 통곡 소리에 쌍본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아니, 경주 성님! 이것이 뭔 일이라우?"

경주 성님은 대전을 일컫는 것이다. 방금까지도 울음 바람을 한 대전이 대답한다.

"글씨 말이세. 아부지가 숨을 거두셨네."

"아니, 아까 까장만 해도 다 나으신 것 같이 허셨는디 대체 뭔 일이라우? 진지를 잘못 들어겠으께라우(드셨을까요)?"

쌍본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대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구나! 그놈의 탕제가 잘못된 것인가보다. 정황에 복령 그리고 녹각으로 끓인 그놈의 탕제를 드셔서 그런가 보다.

병원을 나설 때만 해도 병색이 다 사그라진 모습이었는데 아버지가 절명하신 데는 그 탕제가 잘못된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대전은 밀려드는 자책감과 후회스러움으로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대전이 꺼져가는 소리로 인길댁을 부른다.

"어무이!"

대전의 부름에 인길댁은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한다.

"머다."

"아부지 말이여라우. …… 아부지가 …… 저, 저 땀시 돌아가신 것 같어라우. 무담씨(괜히) 그놈의 탕제를 해 드렸는개비여라우."

"먼 탕제 땜세 그런데야. 하이나 그런 소리 허덜 마라! 아이고오~~, 대전 아부지, 인자 우덜은 어째게 산다요."

인길댁은 아들의 자책하는 말에 에둘러 부정하려 대답을 하고는 죽은 인길양반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꺼이꺼이 통곡을 한다.

천하에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대전은 자신의 본의 아닌 실수에 아버지가 절명했다는 생각으로 비탄의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으며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쌍본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온 식구가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첫새벽 네 시경이 되었다. 대전이 순녀를 부른다.

"야~아."

대전은 순녀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작은댁에 전하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순녀네 작은댁은 집 모퉁이를 돌아 왼쪽으로 꺾어진 길을 따라가서 두 번째 집이다.

순녀가 그녀의 작은댁에 이르렀다. 초가지붕 너머로 무성하게 자란 대숲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칠흑 같고 불이 켜지지 않은 깊은 마루 안쪽으로 창호지 문은 어스름하니 어둑하다. 순녀가 마루 앞 토방에 올라섰다.

"작은 아부지! 작은 아부지!"

이른 새벽, 난데없는 불청객의 호출에 방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빼꼼히 열렸다.

"이렇코 이른 시간에 누구다냐?"

순녀의 작은아버지 신촌양반은 고쟁이 바람으로 나왔다.

"작은아부지! 나여라우. 순녀랑께라우."

신촌양반이 어둠 속에 선 순녀의 모습을 헤아리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응. 근디 먼 일이데야? 이렇코 이른 시간에…."

친근한 사람을 보면 감정이 복받치는 걸까, 순녀는 갇혔던 물이 쏟아지듯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흐흐흑! 작은아부지! 아부지가 돌아가겠어라우."

"아니! 순녀야! 너 시방 뭣이락 했냐?"

"흐으 흐흑! 아부지가 돌아가겠당께라우."

"뭐, 뭐, 뭣이여? 참말로 성님이 돌아가겠다고? 이거이 뭔 소리다냐? 동본 어메! 동보이 어메!"

신촌양반은 부랴부랴 방으로 들어가더니 그의 마누라인 신촌댁을 깨우고는 다시 방을 나서서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하여 후다닥 순녀네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순녀는 훌쩍이며 그 뒤를 쫓았다. 신촌양반이 방으로 들어섰다.

"오메! 성님! 이거이 뭔 일이라요?"

신촌양반은 절반의 정신이 나간 사람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촌양반(헌규)와 순녀의 아버지는 다른 혈육이라고는 없이 단 두 사람, 형제이니 난데없는 사실에 충격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헌규는 홑이불을 살며시 들어 굳어진 망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한동안 어깨를 들먹거리며 흐느껴 울었다. 그러다가 울음을 그치고 인길댁과 대전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인길댁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묻는다.

"성수님! 이것이 뭔 청천벼락 같은 일이라우?"

인길댁은 젖은 눈으로 망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 대답이 없다. 신촌양반은 다시 대전에게 묻는다.

"어저께 초지녁까지도 괜찮허셨는디 어찌게 된 것이데야?"

"작은아부지! 저도 잘 모르겄어라우. 엊저녁 자시 쪼깐 못 되야서 절명허신 것밖에는 저도 잘 모르겄어라우."

"허어 허! 이런 허망헌 일이 어디가 있당가이."

대전은 분명치는 않으나 자신의 실수가 아버지의 직접적인 사인이 된 것이 확실하다고 짐작은 하고 있으나, 복잡해진 심경이 되어 차마 그 대답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한동안 흐르던 침묵을 깨고 헌규가 나직한 소리로 대전을 불렀다.

"조카! 성님이 이렇게 가부시다니 기가 맥힐 노릇이네. 근다고 어찌게 허겄는가? 이 마당에사 잘 모시는 수밖에…."

"야. 그래사제라우."

대전은 맥없이 대답했다.

"질부! 질부는 아부지 입으시던 흰 적삼을 간 데에다 걸어서 언능 지봉에다 띵기소! 날짜로 치면 어지께 밤에 별세를 허셨응께 낼 발인을 헐라면 바쁘겄다. 조카! 긍께 오늘, 낼 준비해서 모레 발인허는 것이 어쩌겄는가?"

신촌양반은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대전에게 묻는 것이다. 대전은 쉽사리 대답하지 않고 인길댁을 쳐다봤다.

대전은 아직 그런 생각을 해 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인길댁은 무심히 망자 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전이 입을 뗀다.

"어무이! 글고 작은 아부지! 시방 동네마다 장질부사가 창궐허고 있고 아부지가 장질부사로 돌아가겠는디 장례를 치먼 못씁니다."

이렇게 대전은 장례에 대한 소견을 얘기했다. 이때 밖에서 인기척과 함께 방문이 열리고 대전의 사촌 동생인 동봉과 이웃집 쌍본이 들어왔다.

이들 역시 난데없이 벌어진 상황에 당혹스러워하였으며 방안의 침울한 분위기에 편류하려는 듯 쌍본과 함께 앞문 쪽에서 엉거주춤하니 서 있다.

"앉그소들!"

인길댁의 말에 동봉과 쌍본이 신촌양반의 뒤편에 불편한 자세로 앉고 신촌양반이 끊겼던 얘기를 잇는다.

"그러먼 아부지를 어찌게 모셔사 쓰겄는지 조카 생각은 어쩐가?"

대전이 대답한다.

"아까 말씀드렸데끼(듯이) 시방 니 동네 내 동네 헐 것 없이 장질부사가 극성인께 아부지 장례는 소리 소문 없이 식구들까장 모시는 것이 어쩌께라우?"

대전의 말에 신촌양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형수인 인길댁에게 묻는다.

"성수님! 조카 말을 들어본께 대체나 그 말이 맞은 거 같은디 성수님 생각은 어쩌시오? 그래도 성수님 뜻대로 해사지라우. 성님이 안 계시면 성수님이 집안의 질(제일) 어른이기도 허시고 시방은 미망인이신께 성수님 뜻대로 해사쓰제라우."

시동생의 이 말에 결국 인길댁도 대전의 의견에 따르기로 한 것이며 장례는 식구들과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온 몇 사람만이 참석한 가운데 간단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날이 훤히 밝아오니 아침이 되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더니 어느결에 들었을까 동네의 남정네들이 순녀네 집으로 하나 둘 찾아들고 약식으로 발인 준비가 진행 중이다. 신촌양반이 주축이 되고 광암 양반과 길선이가 신촌양반을 도와 염을 마쳤다.

"누가 마당에 덕석을 좀 펴라! 마지막 가시는디 아칙 진지는 들고 가셔야제."

염을 마친 신촌양반이 말하자 쌍본이 잿간에서 누덕누덕 낡은 장방형 멍석을 가져와 마루 앞에 툭 하고 내려놓고는 발로 툭툭 차니 말렸던 멍석이 쫘르르 펴졌다.

장정들에 의해 유해가 마당에 펼쳐진 멍석 위로 운구되고 병풍을 쳐 유해를 가린 뒤 그 앞에 제상이 차려졌다. 제사의 집전은 신촌 양반이 도맡았으며 급박스런 장례라 절차나 격식 따위는 아랑곳없이 최소한의 예만 갖추었다.

"아이고 성님! 시절이 시절인지라 지대로 예도 못 차리고 이렇게 보내드리게 되야서 죄송허요. 자! 우선 남자들부터 순서대로 한 잔씩 올리자! 대전이 조카! 자네가 젤 먼저 올려드리소!"

대전이 신발을 벗고 제상 앞에 무릎을 꿇어앉아 술잔을 공손히 받쳐 들자 옆에 서 있던 무현이 세 번 첨잔하여 술을 따랐다. 그리고 대전은 허리를 굽혀 술잔을 상에 놓고 제자리로 돌아와 병풍 뒤 망자를 향해 이 배 반의 절을 하였으며 절을 하며 대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전의 의식에 이어 식구들 모두 일일이 제상에 술을 올리고 절을 함으로 제례가 끝났으며 비록 약식의 조촐한 제례였지만 그래도 근엄하게 치러졌다.

이윽고 망자의 유해를 가렸던 병풍이 젖혀지고 주변의 허드레 것들이 다 치워지며 덩그러니 관(棺)이 드러났다. 관의 운구는 자발적으로 나선 동봉과 쌍본이 그리고 무현과 만복이다.

도회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이들의 자선, 도덕지라는 촌락의 공동체 생활을 바탕으로 형성된 인정이 넘치는 봉사협동 정신인 것이며 이날 인길양반의 장례식뿐만 아니라 동네 안의 어느 가정에라도 큰일이 닥치면 동네의 젊은이들은 너나를 가리지 않고 서로 협동하는 것이었다. 신촌양반이 준비된 네 사람에게 말한다.

"자~아! 언제 가도 가야 헐 일. 인자 떠나보세!"​​

네 사람의 청년들이 관을 묶은 하얀 무명 끈의 끄트머리를 어깨에 걸고 동시에 일어났다. 관의 받침목이나 상여의 뚜껑이 없는 맨 관이기 때문에 네 사람은 가뿐히 일어났다.

"성님! 그동안 여그 사셔서 이 정 저 정, 만정이 드셨을 텐디 그 정 다 떼어불고 인자 떠나십시다! 남자들은 산에까지 가고 여자들은 쩌짝 고사테까지만 뒤따라 오이쑈!"

이렇게 말하며 신촌 양반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관을 앞장서서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망자에 영이 있거든 마지막이 될 집을 살펴보란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순녀네 식구들, 대전에 이어 그의 남동생인 태곤이 따랐고 그 뒤로 여인네들이 따랐다.

사별의 슬픔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남편을 떠나보내는 인길댁은 배웅하는 길에 집이 멀어질수록 절절한 통곡을 하였다.

"대전 아부지! 나를 두고 혼자 가 부시면 나는 어찌게 헌다요? 흐흑. 나사 괜찮허제만 울 애기들 어찌게 허란 말이요! 아이고! 아이고!"

인길댁의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오던 어린 사내아이, 경배는 제 엄마의 통곡하는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통곡의 의미를 알기나 하는 것인지 제 엄마를 따라 덩달아 울어댔다.

슬픔은 번지는 것일까, 인길댁의 통곡 소리에 더하여 순녀와 경주댁, 말례에 이르기까지 애통한 모습으로 통곡하니 이 애절한 모습을 누구라서 맨눈으로 볼 수 있으랴.

보내는 이들의 비통함이 가슴을 짓누르더라도 산 자와 죽은 자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여인네들은 마을 어귀에서 따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월곡 쪽으로 멀어져 가는 운구행렬을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길댁이 순녀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참에 니가 빨랫줄에서 허연 적삼을 소소리 바람이 걷어가는 꿈을 꿨닥 허더니 그것이 선몽이었든갑다."

이 말에 순녀는 일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

"오메! 참말로 내가 꿈을 잘못 꿨는개비요."

이렇게 말하며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쳤다. 과연 그 꿈으로 인해 사달이 난 것일까 아니면 사달이 날 것을 선몽 하였던 것일까.

이 해의 장티푸스 전염병은 마을마다 적잖은 흔적을 남기고 추석 무렵이 돼서야 그 종적을 감추었던 것이며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장티푸스는 물론이요, 세균성 이질이나 홍역, 소아마비 등은 의술의 혜택이 부재했던 촌락의 민초들에게 커다란 애한을 안겨주는 질환이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