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16]
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16]
  • 임동식
  • 승인 2023.11.0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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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식
임동식

[시정일보] 1946년 12월 6일, 잠자리에 들기 전 순녀는 앞닫이 장롱을 뒤적여 뭔가를 꺼내어 그것을 들고 마루로 나왔다. 때마침 큰방 문이 열리고 인길댁도 뭔가를 손에 들고 마루로 나와 두 사람이 마주쳤다. 인길댁이 앞에 선 순녀에게 묻는다.

"어째 나왔냐?"

"큰방에 갈라고 나왔는디…. 어무이는 치깐에 가실라고?"

"아니. 들어가자!"

이렇게 하여 인길댁과 순녀가 큰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쪽으로 태곤과 경배는 솜이불에 머리만 내놓고 잠들어있다.

"그리 앉거라!"

방바닥의 이불을 밀치고 두 사람이 앉았다. 저녁밥을 짓느라 아궁이에 지폈던 불로 방바닥은 뜨거웠다. 순녀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인길댁 앞에 내밀며 말한다.

"어무이! 이놈 받으이쑈!"

"뭐이데야?"

순녀가 들고 있던 손수건을 펼쳐 보였다. 노안이 시작된 인길댁은 눈을 찡그리며 들여다본다. 호롱불 아래 펼쳐진 것은 종이돈 150환이었다.

"오메! 니가 어디서 이렇코 많은 돈이 났데야?"

"어무이! 이놈을 내가 맛 잡고 기 잡어서 팔고 산 돈인께 필요헐 때게 쓰이쑈! 인자 시집가 불먼 언제, 얼마나 어무이한테 뭣을 해 드릴 수 있겄소?!"

"워따 시상에 니가 어찌게 이렇코 큰돈을 어찌게(어떻게) 모텠으끄나! 고맙기는 한없이 고맙다만은…."

인길댁이 안쓰러운 마음으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순녀에게 내밀었다.

"이놈 조마이를 내가 만든 것이다. 허리에다 끄나불 묶어서 잘 차고 돈을 꼭 거그다 보관해라! 글고 이 돈은 고맙다만 여그다 그대로 넣어 주껏이 이놈을 씨돈으로 해서 돈을 모테 가그라!"

조마이, 조그마한 자루처럼 만들어 허리에 끈을 매달아 바지 안쪽으로 넣어 사타구니쯤에 매달리게 하여 여인네들이 쓰는 자루 모양의 주머니이다.

검정 무명 주머니에 복(福) 자를 하얀 실로 새긴 주머니에 순녀가 준 돈을 넣어 인길댁이 순녀에게 주는 것이었다. 주머니를 받아든 순녀는 한사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인길댁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안 받으려는 인길댁과 한동안 돈을 가지고 옥신각신 승강이 끝에 결국 인길댁이 받았다. 그리고 인길댁은 이렇게 당부했다.

"순녀야! 이 에미가 그랬데끼 누구나 여자는 성장허먼 출가를 해야 쓰고 출가허면 출가외인이라고 안 허디야. 인자 너도 낼 예식을 올리면 오씨 집안 식구가 되는 것이다. 그렁께 그 집의 어른들 잘 받들고 내외간에는 뭣이든 작은 일이라도 꼭 물어보고 상의해서 이가 안 상허도록 해사 쓴다. 집안이 성허고 쇠허는 것은 여자 허기 나름인 것인께 친정은 잊어 불고 그 집에 충실해사 쓰고, 그러고 또 중헌 것은 건강인께 항시 건강을 잘 지키도록 해라!"

"야~아. 알았어라우. 그런디 어무이! 나사 젊은께 다 괜찮허제만 아부지도 안 계신께 어린 동생들 거천허실 어무이가 꺽정이요."

인길댁의 당부의 말, 이별사를 들으며 순녀는 조금은 서운한 생각을 하면서도 더불어 본가에 남을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의 앞날을 걱정스러워하며 눈물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자가 출가한다는 것은 자신의 할머니나 엄마 그리고 언니들의 삶의 과정을 익히 봐 왔듯이 여자라면 누구라도 겪어야 하는 운명이요, 숙명인 것을 어찌하랴.

이날 밤, 순녀는 엄마의 품을 떠나야 할 아쉬운 마음으로 인길댁 옆에서 하룻밤을 같이 잤다. 그리고 그 이튿날, 이날은 영화농장 처녀, 순녀가 시집가는 날이다.

누릿하게 퇴색된 두꺼운 무명 천막이 하늘을 다 가릴 만큼 넓게 쳐진 순녀네 마당에는 술과 음식이 차려진 상이 여러 닢 차려져 있고 하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음식상을 중심으로 줄레줄레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과 음식을 나누고 있다.

하객들 대부분은 영화농장 마을인 도덕지와 신원목 그리고 월곡 사람들이며 이외는 드물게 복룡촌이나 용호동, 회산, 양도, 두레미 사람들이었다. 그중 복룡촌 사람들은 대부분 순녀네 일가 사람들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부엌 그리고 만들어진 음식들의 상을 차리는 광방, 빈객들을 접대하는 마당, 안방과 작은방 등 어느 곳이나 부산스럽기 이를 데 없었으며 마당 귀퉁이에서는 어제 잡은 돼지의 불알에 바람을 넣어 공차기를 하는 아이들이 더욱이 시끄럽고 부산스럽게 하였지만, 대삿집의 흥겨운 분위기를 돋우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될 것도 없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던 눈은 오전 열 시경에 이르자 제법 굵은 송이 눈으로 바뀌어 내리며 날씨마저도 부산스러웠지만, 바람은 없어서 도리어 아름답고 포근하며 정겨운 날씨였다.

순녀의 방, 홍원삼을 입은 순녀가 방 가운데 앉아있고 순녀의 언니인 맹심과 친구들인 양님과 부담이 순녀 얼굴에 화장을 시키고 있었다.

"아따, 가시나야, 인자 눈물 흘리지 말어라이! 또 지우고 새로 해야 쓴께. 니가 긍께 나까장 눈물이 날락 헌다."

순녀의 얼굴에 분을 바르며 한마디 한 양님의 이 말에 순녀는 피식하고 웃었으며 눈시울은 아직 촉촉이 젖어 있었다. 혼례를 앞둔 여자의 마음이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그동안 낳고 자라며 오랫동안 살아왔던 정든 집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과 지금껏 가족들과 가졌던 관계를 가슴 속에 묻고 새 가족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운명 앞에서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으랴.

화장하던 순녀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며 눈물 바람을 하였던 것이었다. 홍원삼 예복에 머리에 족두리 비녀를 꽂고 얼굴에 분을 바른 후 연지곤지를 찍으니 신부의 혼례 준비가 다 끝이 났다.

홍원삼, 이것은 여인네들의 전통 혼례복이며 본래 궁중 여인들의 예복이었다고 하는데 조선 후기부터 일반 여인네들의 혼례복으로 허용됐다고 한다.

그 유려한 선이나 화려한 색조를 어떤 옷이 이를 능가할 것이며 어떠한 꽃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젊음처럼 아름다운 게 어디 있으랴. 훤칠한 키와 호리한 몸매에 분장을 마친 열여덟 살 순녀는 마치 봉우리를 막 터뜨린 한 송이 백합과 같았다.

밖은 소란스럽고 동네 사람들은 신부 구경을 하자고 가끔 문을 빼꼼히 열고 한 마디씩 덕담이나 농담을 던지고는 하는데, 그 사이에 유달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달댁은 인길댁의 6촌 손아래 동서로서 순녀에게는 재종 당숙모가 되는 셈이다. 음식을 만들던 젖은 손을 한 유달댁이 순녀를 향해 말한다.

"워따워따, 순녀가 분 보르고 원삼을 입은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이 이쁘네. 순녀야! 시집가면 잘살아라! 허기사 니는 말 안 해도 잘살 것이여. 책맹허고(총명하고) 보지란 헌께…."

"야~아! 당숙모, 고맙소이."

긴 시간을 꼼짝없이 앉아있던 순녀가 실 같은 소리로 대답했다. 이때 마당 건너 신작로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어이! 신랑이 쩌그 오네. 순녀 신랑이 와."

이 소리에 맹심이

"으음. 신랑이 오는갑네. 내가 가서 보고 올 텐께 느그들 마당으로 나올 준비 허고 있어라이!"

이렇게 말하며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의 천막 아래 음식상을 받고 있는 몇몇 나이가 그윽한 사람들 말고는 마당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우르르 집 앞으로 나간다.

과연 저만치 신작로에 말을 탄 신랑과 상객을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하니 떠들어대며 터덜터덜 다가오고 있었으며 집 앞으로 나온 사람들은 신랑의 모습을 궁금해하며 한결같이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여남은 명쯤 되는 상객 일행과 더불어 말을 탄 신랑이 순녀 집 앞 신작로에 이르자, 대전이 앞으로 나아가 신랑과 상객 일행을 맞이하여 정중히 인사를 나누고 그중 상객 서너 사람을 데리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신랑과 더불어 나머지 일행들은 다리목 앞에 남았다.

신랑에 앞장선 함진아비와 일행 중 오징어 가면을 하고 기골이 장대한 사나이가 앞으로 나오며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하고 우람한 소리로 외친다. 이에 응대하여 쌍본을 선두로 하고 그 뒤로 얼굴이 험상인 길선과 힘깨나 쓸 듯이 어깨가 떡하니 벌어진 대봉이 신랑 일행들을 맞는다. 쌍본이 상대편에 질세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대들은 어디서 온 과객들이기에 이렇코 큰소리를 침서 떠들썩헌 것이요?"

하고 묻자 신랑 측 오징어 가면의 사나이는 말을 타고 있는 뒤쪽의 신랑을 쳐다보고 눈을 질끔 해 보이더니 대답한다.

"듣자 허니 이 댁에 박 순녀라고 허는 이쁜 규수가 있다는 소문에 우리 오 사또님이 천생에 배필로 삼고자 하여 보물을 가득 담은 선물함을 들고 우리 사또께서 찾아왔소. 쩌기 저 사람이 지고 있는 함이 보물함이요!"

오징어 가면의 사나이는 함진아비가 지고 있는 함을 가르치며 말하자 쌍본이

"아하! 그런닥 허면 예의를 갖촤서 사또께서는 하마를 허고 언능 마당으로 들어오시오!"

하고 사또가 하마 하기를 청한다.

"우리 사또께서는 원채 귀허신 분이라 맨땅을 볿고 가덜 않으시는지라 징검다리를 놔 주셔야 그 징검다리를 볿고 지나가시오."

징검다리란 돈을 말하는 것이며 신랑이 마당으로 가기까지 걸음걸음마다 돈을 놔 달라는 요구를 하는데 여기서 받은 돈으로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별도의 술자리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농장 혼례식의 관습이었다.

"아따 어디서 오신 싸또신가? 거 걸음걸음이 겁나게 비싼갑소!"

쌍본이 하는 수 없이 지전 한 닢을 신랑 앞에 놔 주었다. 신랑이 한걸음 나서서 돈을 밟고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앞잡이가

"아이고! 우리 사또님이 날개도 없는디다 이렇코 눈할라 오는디 어찌게 징검다리 한 번에 지날 수 있으께라우. 다리를 놔 줄라먼 지대로 놔 주든가 아니먼 도로 가 불어야 쓰겄소."

아침부터 간간이 내리는 눈은 발꿈치까지 쌓였다. 쌍본이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하고는

"내가 가진 것이 다 떨어졌는디 어찌게 허란 말씀이요?"

익살을 떨자, 옆에 섰던 길선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선다.

"쌍본이 동생! 쩌리 치나소! 내가 사또를 업고 가 불라네."

이러자 앞잡이가 주춤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서더니

"우리 사또께서는 이쁜 아낙이 업어 주면 모를까 뻣뻣헌 사나그(사나이) 등에는 안 업히시는 습관이 있소."

하고 늘어진다. 이에 길선은 쳇 하고 콧방귀를 뀌며 물러서고 쌍본은 또 마지못해 지전을 땅에 놔 준다. 이러기를 몇 차례, 쌍본의 주머니는 바닥이 났다.

이렇게 익살스러운 전례 행위가 끝이 나자, 함진아비를 앞세워 신랑이 그 뒤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고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신랑 인물이 여간 좋네."

"그렁께 키 꼴도 좋고 이목구비가 시원허니 잘 생겼그만. 순녀는 참 좋겄네."

과연 사모관대를 한 신랑은 우람한 풍채에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뚜렷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누구라도 호감을 가질 인물이었다. 이윽고 마당 가운데 놓인 초례상 위에 함진아비가 지고 온 암수 한 쌍의 목각 기러기를 놓고 화촉을 밝히자, 신부의 어머니인 인길댁이 탁자 뒤로 서고 신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인길댁과 마주하여 섰다. 예식의 집전은 오쌍본이 사회를 맡아서 진행하였다.

"자~아! 여러분! 인자 예식을 진행허겄습니다. 신랑은 거그 그대로 서 계시고 신부 입장하시오!"

집전자의 말에 따라 시종을 드는 부담과 양님의 부축을 받으며 신부인 순녀가 입장하여 신랑의 곁으로 가서 다소곳이 섰다.

"오늘 병술년(庚戌年) 동짓달 열나흗날, 진시를 기해 신랑 오 근식 군과 신부 박 순녀 양의 결혼식을 진행허것습니다. 그러면 먼저 신랑이 장모님께 드리는 전안례를 올리겄습니다. 여그 상 우게 사이좋은 한 쌍의 기우(기러기)는 신랑 오 근식 군이 장모님께 기우처럼 다복다산 허겄다는 약속을 드리는 선물입니다. 신랑은 앞으로 나서서 장모님께 약조의 술을 올리시오!"

신랑이 기러기가 놓인 탁자 앞으로 나아가 술을 따라 장모인 인길댁에게 전하고 다시 물러서서 인길댁을 향해 큰절을 하였다. 이어서 축사로 이어졌다.

"그러먼 이어서 오늘의 예식을 축하하는 축사가 있겄습니다. 축사는 광암리 임 종기 씨께서 해 주시겄습니다."

대전의 친구인 임 종기는 축사를 하기로 사전 약속이 됐던 듯 양복을 번드르르하게 입고 있었으며 쌍본의 소개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 탁자 옆으로 서서 둘러선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한 후 축사를 한다.

"축사, 오늘 병술년 동짓달 열나흗날, 혼례를 맞는 두 사람에게 우선 축하드리겄습니다. 이성지합(異性之合)은 백복지원(百福之源)이라고 헙니다. 오늘 이렇게 두 선남선녀가 혼례식을 허므로 인하야 두 명문가의 축복 받을 인연을 맺게 된 것이요, 두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얐습니다. 인자부터 신랑 신부 두 사람은 그 역할들을 성실히 하야 빛나는 가정을 이뤄가시기 바랍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고기의 뒤를 쫓아댕기면 고기는 잽히덜 않고 육신은 고달픕니다. 고기가 댕기는 길목을 짚어서 그곳에 그물을 치고 지다려야 비로소 고기를 수월허게 잡을 수 있습니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은 고기를 쫓아댕기지 말고 고기가 댕기는 길목에 그물을 치시오! 사리사욕에 앞서기보다는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헌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바로 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지금 당장에는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종단에 가서는 가정은 윤택하고 이웃과 사회는 밝아질 것입니다. 오늘 나는 신랑 신부에게 당부합니다! 이렇코 빛이 되는 가정을 꾸려가시라고! 하늘도 두 사람의 혼례식을 축복해 주시는지 미영꽃(목화) 같은 이쁜 함박눈을 저렇코 내려줍니다. 두 사람 천생연분으로 만난 것을 하늘도 축복해 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일체가 무상허다 허니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면 오늘 시작허는 초심을 상기하여 서로 협의하고 인내허면 난관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극복의 희열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항시 초심을 잃지 말고 서로 사랑허는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두 사람 협심하여 부모님들 잘 봉양해 드리고 건강헌 몸으로 자손들 많이 낳아 대대손손 번영허는 가문을 이끌어 갈 수 있기를 기원허면서 이만 축사를 가름험니다. 오늘 성스런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향민 여러분 감사헙니다."

축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우레와 같이 박수를 치고 신랑과 신부는 허리를 굽혀 답례하였다.

"임 종기 성님! 수고허셨습니다. 그러먼 이어서 신랑 신부 교배례를 진행허겄습니다. 신랑은 신부 맞은 짝에 무릎을 꿇고 앉거서 절을 받고 신부는 세 배 반, 큰절을 올리시오!"

신랑은 신부의 맞은편에 꿇어앉고 신부는 시종의 도움을 받아 절한다.

"신부가 절을 험서 웃으면 안 돼야!"

"그래. 웃어 불먼 첫 딸을 낳는당께."

그러고 보면 '첫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은 첫딸 생산자에 대한 위로의 말일 것이고, 그래도 첫아이로는 사내아이가 좋은 모양이다. 늘어진 원삼 저고리의 긴 소매 깃 너머로 보일 듯 말 듯 한 순녀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배어 있었다.

신부의 절에 이어 신랑이 재배로 답배를 하고 합근례로 이어졌다. 합근례는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서로의 배우자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위로 먼저 신랑이 잔을 받아 음복한 후 그 잔을 대례상의 오른쪽으로 돌아 신부에게 전하면 신부는 잔을 입에 댔다가 퇴주 그릇에 따르고 같은 모습으로 상의 왼쪽과 상의 가운데를 거쳐 차례로 잔을 주고받으면 합근례는 끝이 나는데, 이런 모든 혼례의식을 다 마친 시간은 해름이 다 되어서였다.

그리고 저녁 끼니때가 되자, 동네의 장정들과 처녀들이 하나둘 순녀의 신방에 모여들었다. 이른바 새신랑 다뤄 먹기를 할 작정인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무엇이겠는가.

일상의 생활들을 재미나게 엮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사는 즐거움일 것이요, 행복이 아닐까. 새신랑 다뤄 먹기도 그러한 것이었으며 영화농장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행위들은 언제부터인지 이어져 오는 관습이었던 것이다.

초저녁 어둠이 내리자, 순녀의 신방은 동네의 열혈 청춘남녀들이 가득하고, 물론 순녀의 절친한 친구들인 양님과 부담도 끼어 있었다. 의젓한 모습의 신랑과 요조숙녀가 된 신부는 아랫목에 나란히 앉았다.

신랑 신부의 주위를 빙 둘러앉은 사람들은 키득거리며 서로 잡담들을 하느라 왁자하니 시끄러웠다. 그때 호롱불이 점차 사그라들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아마도 호롱에 석유가 다 됐나 싶었다.

방안은 칠흑같이 어둡고 서로 옆 사람을 더듬으며 소리를 지르는 등 아우성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신랑 신부 입 맞추는 거 아니여?"

하고 말하자, 그 옆에서 또 누군가

"입 맞추는 것이 아니고 뽀뽀하것지라우. 그럴라고 역불로 색우지름을 비었는갑다."

그러자 방안은 한바탕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때 길선이 문을 열고 큰방 쪽을 향해 소리 지른다.

"경주 아짐! 큰일 났소. 여그 신방 초꼬지에 색우지름이 떨어져 불이 꺼져 불었당께라우."

이 소리에 큰방 문이 열리고 인길댁이 나오더니

"오메! 어째야쓰까이. 글 안 해도 아까 칙에 색우지름을 사 오라고 백호동에 태곤이를 보냈그만 당아 안 오는 개비네."

때마침 태곤이 댓 병을 대룽대룽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메! 색우 사 왔어라우. 여그…."

"오냐! 어둔디 고상했다. 느그 누나 방으로 가지가그라!"

이렇게 하여 한바탕 소동 끝에 불이 켜지자, 신랑 다루기가 전격적으로 실행된다. 청년들 중 만복이 정색을 하고 나서며 아랫목의 신랑을 향해 말한다.

"새신랑! 우리 인사나 나누세! 나는 자네의 신부가 우리 일가의 동생이 되는 사람인께 자네가 나한테는 매제일세. 내 이름은 박 만복이네. 순녀 동생 맞는가?"

하고 순녀를 바라보자, 순녀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신랑이 대답했다.

"그렇게 되시오? 저는 성은 오가에 이름은 근식, 오 근식이라고 허요. 그렇코 되시먼 앞으로 성님이라고 부를라우."

"그래. 그렇코 허소!"

이때 좌중에서 길선이 나서며

"아따! 만복이 동생! 시방 도란도란 일가친척 모임 허는가? 쩌리 치나소(저리 비키소)!"

이렇게 하니 신랑 앞에 앉았던 만복이 밀려나고 길선은 팔을 걷어붙이며 신랑 앞에 앉았다.

"오메! 잘허요, 잘해! 언능 신고식을 허고 한 턱 얻어 묵어사제라우!"

"그러제. 맞어, 맞어."

이렇게 좌중의 여인네들이 팔을 걷어붙인 길선을 향해 응원을 보내자 길선은 흥이 난 듯

"어~허! 그러먼 그러제. 어이 오 서방! 우리 동네, 그렁께 도동지서 말이여 색시를 덱꼬 갈라먼 값아치를 해사제. 어째? 돈을 뭉테이로 내 놀랑가 아니면 술상을 거나하게 한 상 내 놀랑가?"

하고 신랑에게 묻는다. 그렇다고 신랑이 고분고분 넘어가면 일이 싱겁고 재미없는 일임을 누구라도 아는 일이다.

"클씨! 저 맘이사 상다리가 휘어져 불게 한 상 차렸으먼 쓰겄그만 우리 장모님이 알어서 허실 테제라우."

새신랑이 옆에 앉은 신부를 쳐다보며 이렇게 도도한 대답을 하자 이번에는 길선의 뒤쪽에 앉아있던 대봉이 나선다. 뭣이라도 신랑에게서 꼬투리를 붙잡고 늘어지려는 데는 별도리가 없는 것이다.

"우메! 참말로 못 쓰겄네. 우덜 새신랑 손 쪼깐 봐 줍시다! 어이 무현이! 거 몽데이(몽둥이) 좀 주소! 몽데이 찜을 해 불어사 쓰겄네."

하고 말하자 준비를 해 뒀던 빨랫방망이와 긴 띠를 던져 주었다. 이어서 억세디억센 도덕지 사내들이 신랑의 손발을 틀어잡고 띠를 받아 든 대봉은 날렵한 솜씨로 삽시간에 신랑의 양다리를 모아 묶어버렸다.

새신랑이 사지를 꼼짝 못 하는 지경에 이르자, 길선은 방망이를 들고 다리가 묶인 신랑의 발바닥에 매질을 해 댈 작정으로 신랑 곁으로 다가가 앉더니 신랑의 발바닥이 천정을 향하게 발목을 잡고 방망이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한 대 두 대까지 반응이 없던 신랑은 네댓 대가 더 가해지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오!"

신랑이 죽는 시늉을 하자, 구경꾼들은 재미난 듯 키득거리며 웃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마치 자신의 발바닥을 맞기라도 한 것처럼 방망이질이 가해질 때마다 눈을 찔끔거리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도 하였다.

한편, 큰방에서는 인길댁과 대전의 내외 그리고 순녀의 작은아버지인 신촌양반과 순녀의 6촌 오라버니인 길수가 앉아 내일 순녀가 시집가는 일에 대한 논의가 한창 이어지는 중이었다. 대전이

"그러먼 상각으로는 작은아부지허고 동봉이, 길수, 두 동생들에 저까지 넛이서 가먼 어쩌께라우?"

하고 묻자 신촌양반이

"동본이는 빼고 우덜 섯이 가는 것이 좋제."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봉은 한쪽 다리를 저는 불구자였으니 상객으로는 적절치 않은 사람이었으나, 대전의 입장에서 6촌 아우인 길수를 들먹이면서 사촌지간의 동봉을 제쳐 놓을 수 없는, 말하자면 인사치레로 하는 말임을 신촌양반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오가는 중

“아이고, 아이고!”

왁자하니 떠드는 소리에 섞여 새신랑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인길댁이 좌중의 얘기를 끊으며

"오메! 저 순녀 서방 빙신 맹기는갑다. 점돌 애비야! 한번 가 봐라!"

하고 염려하는 말을 하자 대전은 태연히 말한다.

"아따 어무이! 빙신이사 맹길랍디여. 냅둬 부이쑈!"

"아니여야. 옛날에 회산 삼호떡네 큰사우가 장게 온 날 첫날 지녁에 방마이로 쎄레 맞고 빙신이 되야 불었단다. 아가, 태곤아! 니가 가서 매양 좀 말게 줘라!"

점돌과 경배를 데리고 놀고 있던 태곤은 갑작스러운 인길댁의 말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태곤이 묻는다.

"어매! 뭣을 말게 줘!"

"느그 매양이 저 방에서 동네 사람들한테 양씬 맞고 있는갑다. 니가 가서 어매가 씨암탉을 잡고 있응께 고만 때리락 헌다고 허그라! 어디 우리 태곤이 얼메나 야무진가 한번 보자!"

태곤은 인길댁이 시키는 대로 마루를 지나 신방인 순녀의 방으로 갔다. 마침 방망이질을 하는 길선의 팔을 붙들고 순녀가

"오라배! 고만 해라우!"

하고 말리던 참에 태곤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난생처음 매질을 하는, 그것도 아랫도리를 무명 띠로 묶어놓고 매질을 하는 경악스러운 광경을 보고 놀란 태곤이

"오메! 우리 매양 죽어불겄네. 뭣 헌다고 쎄리요? 우리 어매가 씨암탉을 몇 마리씩이나 잡고 있다고 때리지 마락 허시는디…."

이러는 것이다. 열한 살 어린 태곤의 당돌한 이 말에 방 안 사람들은 배를 쥐어 잡고 박장대소를 하고 심지어 매를 맞던 새신랑은 물론 아직 족두리도 벗지 않은 신부까지도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어댔다. 한참의 웃음이 끝나자 조용해진 틈을 타 만복이 물었다.

"몇 마리나 잡은신닥 허시디야? 여러 마리를 잡으시면 방마이질을 고만 허고 한 마리만 잡으시먼 더 쎄려야 쓴다."

냉큼 대답을 않고 머뭇거리던 태곤은

"하이칸에 한 마리는 넘고 열 마리는 안 되는디 몇 마린지는 잘 몰라라우."

이렇게 모호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방 안은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으며 이로써 신랑 다루기가 끝이 났다. 이윽고 부엌 쪽 문이 열렸다.

"상 들어간께 쪼깐 받어 주이쑈!"

말례가 건네주는 상을 방에 있던 사람들이 받아 방 가운데로 옮겼다. 상에 차려진 음식들은 비록 이날 예식의 끝물로 남겨진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푸짐하여 커다란 양푼에 담겨 김이 모락거리는 닭도리탕, 매콤하게 삭은 홍어, 잡채며 톳나물 등 산해진미의 음식이 상다리가 휠 만큼 차려지고 막걸리까지 곁들여졌다.

무엇을 먹어도 삭혀 낼,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열혈의 청춘 남녀들이 웃고 노닥거리며 야심한 시간에 이르렀으니 어떤 음식이 맛이 없을까. 신랑 다루기를 즐겼던 만큼 음식들도 잘 먹는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흥이 나지 않을 수 없고 흥이 나니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막걸리 몇 잔에 얼굴이 벌겋게 달은 길선이 쌍본에게

"쌍보이 동생! 요렇코 기분 좋은 날인디 노래 한자리해야제! 그, 그 뭐이냐? 응, 거 찔레꽃인가 허는 노래 한번 해 보소!"

기억을 더듬어 겨우 생각이 난 노래의 제목을 말하자, 쌍본은 서슴없이 목청을 다듬은 후 노래를 부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 사~암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에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도~오옹 무야~~~~!”

맑은 목소리에 유성의 꼬리처럼 여운을 남기는 바이브레이션의 기교는 과연 일품이라 할까? 끼를 타고난 솜씨로써 이날 주인공들인 신랑 신부의 모습도 이 노랫가락에 파묻힐 만큼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재창이요'가 연발했다. '궁자라작짝 궁짝짝' 입 장단과 젓가락, 숟가락 장단에 맞춰 이어지는 노래는 그 시대를 대표했던 남도의 애창곡, 아니 온 국민의 애창곡 ‘목포의 눈물’이 영화농장 열혈 청년들의 합창으로 불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랑 다루기가 끝나고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흩어져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순녀네 방문 앞에는 아직 대여섯 명의 처녀, 총각들이 남아있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사립문 옆 배나무 그림자는 하얀 눈 위에 긴 막대처럼 마당에 늘어졌다.

"침을 창호지에 많이 묻혀라이!"

"맞어. 그래 갖고 손꾸락 끝으로 꾸욱 눌러! 그래야 창 구녕이 소리 없이 뚫어지제."

이들 처녀, 총각들은 신랑 신부의 첫날 밤을 엿보기 위해 숨소리를 죽여가며 창호지에 구멍을 낸 것이다.

"아따! 가이나야, 좀 나와 보그라! 느그덜만 보냐?"

뒷전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차례를 기다리던 두일이 창구멍을 들여다보는 부담에게 말하자 부담이 자리를 내주었다. 두일은 여전히 침을 꼴깍 삼켜가며 창구멍에 눈을 들이댔다.

지금쯤 요 밑으로 들어가 있어야 할 신부와 신랑은 아직도 겉옷을 벗지 않은 채 요 위에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있다. 근식이 자신의 옷고름을 풀며 말한다.

"인지까지는 날 이녘이라고 불렀는디 오늘 여러 어르신들과 많은 사람들이 보는 디서 우리가 부부임을 선포했응께 인자부터는 나를 여보라고 다정히 불러주시게!"

"야. 알었어라우."

신랑의 주문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나 이런저런 화두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요량인 것이다. 자신의 저고리를 다 벗은 신랑이 신부의 옷고름을 풀려고 손을 대자, 순녀는 상체를 조금 틀며

"나는 쪼깐 더 있다 누울랑께 먼첨 누우이쑈! 피곤허실 텐디…. 미안허제만 이 밤에사 어무이랑 애린 동생들 그러고 조카를 생각헌께 울쩍해지요. 언능 먼첨 누우이쑈!"

이러는 것이다. 순녀는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울적한 것도 있는 데다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생소한 기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기실 옷을 벗지 않는 이유는 이전에 자신도 누군가의 신방을 엿보았던 전력이 있기 때문인 것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문밖에서 어둠을 지키고 서성거리던 영화 농장의 처녀, 총각들은 몸이 추워지는 것인지 발을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구멍을 내다 보던 양님이 방안 들여다보기를 포기하고는

"오메! 가이나가 언능 자제만은 잘락 허덜 않네. 바람도 차가운디 우덜 게양 집으로들 가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날 신붓집에서의 공식, 비공식 혼례식은 모두 막이 내려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친 시간, 순녀네 큰방이다.

아랫목에는 인길댁이 앉아있고 그 앞으로 상객들과 함께 순녀와 오 근식이 나란히 앉아있다. 오 근식의 입장에서 보면 우귀요, 순녀로서는 시집으로 떠나는 길에 부모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한 자리였다.

"짐꾼들은 먼저 떠났응께 언능 어무이에게 인사를 드리고 떠나자!"

대전의 말에 신랑과 신부가 인길댁 앞에 서고 인길댁은 두 사람을 담담한 눈길로 바라본다.

공들여 키워 놓은 자식이 제 갈 길을 찾아 먼 길을 떠나는 마당에 부모로서 어찌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마는 시집가는 자식의 마음에 요동을 염려한 까닭인지 인길댁의 모습은 담담하기만 하였다.

신랑과 신부는 어깨를 나란히 하여 큰절을 올리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인길댁이 다정한 목소리로 신랑을 불러

"오 서방! 자네를 이렇코 앞에서 본께 내 맘이 든든허네. 우리 순녀, 동생 모냥 애껴 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갈쳐 줌서 화목허게 잘살소!"

이렇게 당부한 후 순녀에게도 당부의 말을 한다.

"순녀야! 친정은 인자부터 잊어묵고 고상스러워도 시어르신들 잘 받듦서 오 서방이랑 사이좋게 잘 살어라! 글고 뭣보다도 무병해사 쓴다!"

"야~아. 어무이도 건강허셔야 쓰요! 저는 인자 제 곁에가 이 여보가 있응께 여보 믿고 살라우."

순녀는 옆에선 새신랑을 가르치며 이렇게 대답했으며 이 말에 신랑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길댁 옆에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어린 경배가 앉아서 의아한 눈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본다. 순녀는 그러한 경배에게로 다가가 어린 동생의 양 볼을 어루만져 주고는 방을 나섰다.

"여그 가매를 머꺼(세워) 놨응께 언능 타그라! 운임대표(상객)들은 벌써 떠났어야."

하고 대전이 방을 나서는 순녀에게 말했다. 토방 앞에 놓인 가마 옆에는 가마꾼들이 서성이며 서 있고 그 앞에는 근식이 탈 말과 재갈이 물린 말의 고삐를 쥔 마부가 서 있다.

가마를 타기 전 순녀는 배웅하기 위해 마당에 둘러선 경주댁을 비롯한 여러 이웃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가마에 올랐다.

"아가씨! 시집가서 잘 사이쑈!"

"순녀야! 잘 가! 잘 살어라이!"

여러 사람들의 배웅 인사를 뒤로하며 가마의 휘장이 내려졌다. 이윽고 말을 탄 신랑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돌배나무가 서 있는 문간을 나서자 그 뒤로 가마가 따라나선다.

다리목 앞 신작로에 나와 있던 여러 명의 동네 사람들은 말과 가마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으며 신작로 저만치 앞서가는 상객들을 따라 순녀를 실은 가마는 멀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며 인길댁은 가마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신작로에 서서 어린 경배의 손을 잡고 눈물을 떨구고 서 있었다.

영산강의 둑 너머로 손에 잡힐 듯 아스라이 보이는 월출산과 그 우능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보다 더 가까운 들판 건너에 ‘뫼 산’ 자 모양의 인의산이 있으며 또 인의산의 우능선에서 더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유달산의 노적봉이 저 멀리 손톱만큼 보인다.

더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노령산맥의 마지막 끝자락이 물결처럼 흐르는 승달산의 능선이 보이며 이 전경들은 도덕지에서 동남서 방향에 걸쳐 보이는 전경들이다.

그리고 매봉산 자락이 흘러내려 영화농장의 한복판에 촉수처럼 불거진 곳이 도덕지이다. 도덕지와 등을 지고 있는 동네는 신원목과 월곡이며 백호동, 농장, 산두, 돈도리, 두레미, 회산, 용호동 이 동네들은 도덕지를 중심으로 빙 둘러선 동네들이다.

순녀는 지금껏 이러한 지역적인 배경 속에서 영화농장의 일부가 되어 살아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순녀에게 있어서 영화농장은 정든 곳이다.

이제는 한 여자로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가마 속에 앉아 영화농장과 멀어져 가고 있었으니 이것이 순녀의 운명, 아니 여자의 운명인 것일까….

태고로부터 우리의 선조들 그리고 그 선조의 선조들은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갈피들을 만들어 오며 오늘날까지 대를 이어 왔고, 또 앞으로도 대를 이어 세월의 물결과 함께 흘러갈 것이다.

태고로부터 도도히 흐르는 저 영산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