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절자의 변
기고/ 변절자의 변
  • 조문환 전 제일은행 본부장
  • 승인 2024.01.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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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조문환

[시정일보] 변절자(變節者)란 사전적 의미로 절개(節槪)를 꺾은 자이다. 절개란 절의(節義)와 기개(氣槪)를 뜻한다. 절의(節義)란 절개와 의리(義理)를 뜻하는 말로 맺었던 의(義)를 끊음을 뜻한다.

기개(氣槪)란 굳건한 기상(氣象)과 절개를 뜻한다. 기상이란 타고난 성정(性情)과 기질(氣質)을 말한다. 그리고 의(義)란 사람이 행하여 할 바른 도리(道理)를 말한다. 도리란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길이다.

해석이 좀 길었지만, 변절자를 쉽게 풀어 말한다면 사람이 행하여 할 바른 도리를 행하지 않는 자를 변절자라 말할 수 있다. 변절이란 무서운 것이다. 왜냐면 자신이 쌓아 놓는 의를 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변절자를 많이 본다. 오죽하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다른 의를 찾겠는가? 사실 의란 하나이고 같다. 의란 사람이 행하여 할 바른 도리 이외 옳은 행위,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과 골육 관계를 맺는 일, 덕의(德義), 도의(道義)를 뜻하기도 한다.

의란 하나이고 같지만 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변절 또는 정절(貞節)로 바뀐다. 성경에서 의란 신의 뜻에 부합되는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다. 또한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돕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의를 바꾸는 주요 요인은 역사관이다.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의 기준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관은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다. 역사가 과거에 대해 완전히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의 기록은 일단 역사가의 정신을 거치게 되고, 역사가들 자신도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도 있으므로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역사의 시간과 장소는 목적과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예를 들어보자. 옛날 새옹이 기르던 말이 달아난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끌고 온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들이 준마를 타다 다리가 부러진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들이 전쟁에 끌려가지 못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만약 역사적 사실을 평가했다면 오류이다. 새옹지마는 그저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란 변화가 심하여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극히 단순한 옛말일 뿐이다.

따라서 새옹지마에는 역사관이 적용될 수 없고, 평가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기 때문에 역사적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역사적 사실을 길게 보면 단순한 과정임에도, 짧게 보므로 그때그때에 역사적 사실을 평가하여 다른 의를 찾다 보니 변절하게 된다. 의란 하나이고 같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한 나머지 변절자가 된다. 변절은 괴로운 것이다. 변절 된 자신의 객관적 역사관은 타인에게는 주관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에 비추어 볼 때 함축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의이다. 그러나 정의는 아니다. 권력에 항거하면 정의의 수호자가 된다. 그러나 기존 권력에는 배반자가 된다. 권력을 빼앗지 못하거나 쟁취하지 못하면 배신자는 망하게 된다. 중국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은 이렇게 말하고 죽었다.

“교토사(狡兎死)) 주구팽(走狗烹) 고조진(高鳥盡) 양궁장(良弓藏) 적국파(敵國破) 모신망(謀臣亡) 즉 교활한 토끼가 다 잡히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없어져 삶아 먹게 되고, 높이 나는 새가 다 없어지면, 좋은 활도 쓸모없어 폐기되고, 원수의 나라가 깨지면, 함께 모의한 공신도 필요 없어 제거된다“ 는 뜻이다. 권력과 돈에는 단맛이 있다. 이 단맛 때문에 변절자가 되고 또한 배신자가 된다.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우리 민족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개략적인 외세 역사를 보면 한사군(漢四郡),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임진왜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미소 분할점령, 주한미군으로 요약된다. 우리 민족의 조국은 오늘날까지 대대로 이어온 선조들의 나라이자 우리들의 나라이다.

최근 조국과 민족을 국가와 국민으로 의도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우려된다. 조국과 민족이란 단어가 돈을 숭상하는 맘모니즘 속에서 경제 논리에 따라 표현되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을 경제 논리로 만 볼 수 없다. 역사에서 조국과 민족이 바로 의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미군기지가 몇 개인가? 130개가 있다. 일본은 미국의 51번째 주(州)라고 생각하며 미군이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일본 스스로 힘이 없어 평화에 안주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러시아 중국 북한의 위협과 미국을 싫어하는 적국의 테러와 위협에 대응하여 자위대의 무력 증강과 국방력을 강화하므로 헌법에 교전권이 없는 자위대를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외국 특히 한반도에 교전권을 갖도록 만들었다. 일본의 조국과 민족은 일본의 의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의이다.

사회 계층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소득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으로 구분되고 또한 부와 지위 권력 계급에 따라 계층이 분리된다. 자본가와 노동자, 권력가와 사회적 약자, 부의 소유자와 경제적 빈곤자로 구분되기도 한다. 산업사회에서는 중간관리자의 증가로 전체인구의 10%가 사회를 지배하였다.

사회안정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1%가 지배한다. 복지제도가 확충되고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되면 0.1%가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빈부격차와 그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은 불의이다. 왜냐하면 인간적 대우받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갑진년부터는 권력에 배회하는 변절자가 되지 말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정의의 사도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