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 천사 부부의 배려
인문학광장 / 천사 부부의 배려
  • 전 목포동초등학교장, 수필가
  • 승인 2024.01.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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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지 택 전 목포동초등학교장, 수필가
임 지 택 전 목포동초등학교장, 수필가
임 지 택 전 목포동초등학교장, 수필가

[시정일보] 친구가 보내준 카톡을 읽어보면서 만병통치에 도움이 된다는 다이돌핀이 물씬 일어남을 느꼈다. 카톡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나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컴퓨터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오후 6시 경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윗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는’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나는 이라고 밝힌 컴퓨터 상인이 특정 사안에 대하여 작성한 글이 누군가에 의해 카톡에 기고되었다고 보아진다.

중고 컴퓨터를 주문한 사람은 서울시내 초등학교에 유학시키고 있는 경상도 칠곡에 거주하는 초등 6학년 여학생의 어머니다 . 이 학부모가 컴퓨터 중고품을 구입하려고 지인의 소개를 받아 컴퓨터 상인에게 전화로 주문한 것이라고 보아진다.

전화 주문을 받은 후 열흘 쯤 지난 후에 주문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물품이 확보되자 칠곡의 애 어머니께 연락하여 할머니와 초등 6학년 여학생이 거주하고 있는 집을 찾아가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을 때 6학년 딸애가 들어오면서 “아저씨! 고마워요.” 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마치 그 상인이 컴퓨터를 구해준 은인인 것처럼 좋아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너 열심히 공부하라고 네 엄마가 사준 것이라며 학원시간 늦지 않게 어서 갔다 오너라!” 하니까 그 애는 후다닥 뛰어나갔다. 상인은 집안에 액세서리를 조립하는 부업거리가 가득 쌓여있는 것을 눈여겨보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것으로 짐작했다.

상인은 컴퓨터 조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그 아이를 보고 “어디로 가니? 아저씨가 태워다 줄게.”라고 하자 어쩌면 주저할 만도 한데, 제 집에서 보았던 아저씨라서 인지 “하계역이요.” 가게와 반대 방향이지만 태워다주기로 마음먹고 차에 태우고 달렸다.

10분쯤 지났을 즈음에 아이가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해서 앞에 보이는 패스트푸드 점포 앞에 차를 세우자마자 “아저씨! 그냥 가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버려두고 간다는 건 너무 애절한 마음이 들어 기다렸다가 태워다 주기로 생각하면서 무심코 아이가 앉았던 조수석 시트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트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6학년 애의 첫 생리라고 직감하고 망설임도 잠시, 비상등을 켜두고 차에서 내려 속옷 가게를 찾아 헤맸다. 단지 중고 컴퓨터를 납품해준 조손 가정의 초등학생의 생애 첫 생리인데 엄마가 안 계신 상황에서 아이가 얼마나 당황하고 무서움에 떨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앞, 뒤 가릴 것도, 얼마간의 돈이 들어가는 것쯤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속옷을 사려하니 어떤 사이즈를 골라야 하는지? 또 속옷만 사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택시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오라고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택시 타고 오면서하라고 당부했다고 하니 이들의 마음 씀씀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아내는 택시 안에서의 통화로 전후사정을 파악하고 이에 대처할 물품을 말해주었다고 하니 마치 007작전 같아 보였다. 아내의 작전지휘를 받고 남편은 일사분란하게 준비를 마치고 그 아이가 들어갔던 건물로 황급히 차를 타고 갔다고 하니 이 작전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준비해간 물품을 가지고 세 칸짜리 화장실에 들어가 차례로 문을 두들기며 “애야! 여기 있니? 나는 컴퓨터 아저씨 네 아줌마야!” 했더니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네에!” 하고 응답하더란다. 그 시간까지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서 울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후사정을 모르고 초조하게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앞에 보이는 꽃가게에서 예쁜 꽃 한 다발 샀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의 아내는 마치 이 같은 일이 마치 자기 친딸의 경우처럼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으니 천사부부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듯싶다.

패스트푸드 가게 앞에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는 컴퓨터 아저씨 앞에 나타난 아이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어찌할 수 없어 그저 울고만 있었기 때문이리라.

화장실에서 낯선 여인을 처음 본 순간은 멋쩍게 웃어보이다가 챙겨간 옷가지와 물품을 보고나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하니 그간의 처절한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사자인 아이는 그렇다 치고, 상인의 아내도 덩달아 울어 눈물자국으로 범벅이 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의 상황은 마치 친 모녀처럼 기막힌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어 얼굴이 퉁퉁 부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저녁밥을 먹여서 보내고 싶어 아이를 설득했으나 한시 바삐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집 앞에서 내려주고 돌아서려 할 때 아이는 “아저씨! 아줌마! 너무너무 고마워요! 한 마디를 남기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이 같은 어린애의 모습을 보면서 상인 내외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하니 천사부부라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상인 부부의 배려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와 돌아오는 차속에서 중고 컴퓨터 매도 가격이 22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어려운 조손가정의 형편을 딱하게 여겨 22만원 모두 돌려주고 오자는 아내의 제안을 듣고 다시 돌아가 10만원을 돌려드리고 귀가 했다하니 이같이 마음씨 고운 부부의 배려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날 밤 열한 시쯤 아이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여기 칠곡인데요, 컴퓨터 구입한….”이 한마디를 하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