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정치가 응급의료체계를 망치지 않게 해 달라
사설 / 정치가 응급의료체계를 망치지 않게 해 달라
  • 시정일보
  • 승인 2024.01.11 11:30
  • 댓글 0

[시정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습된 후 부산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않고 소방헬기를 이용,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외상센터라 일컬을 수 있는 국립 부산대병원의 역량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그곳에서 수술 받을 수도 있었다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로 전원해야 할 만큼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중한 상태였다면 현지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는 것이 마땅했다.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이송은 결코 일반적인 경우라고 하긴 어렵다. 헬기이송이 소방청 기준에 부합한다고는 해도 일반인들은 요청 자체도 쉽지 않다. 지역거점병원의 역량을 믿고 현지에서 수술을 받았다면 지역의료체계에 대한 신뢰를 몸소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됐을 것이다.

물론 가족 결정을 두고 지나치게 공격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혐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무척 다행이지만 부산대병원 대신 서울대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은 이 대표의 선택은 부산을 포함한 지방 의료계와 지역 주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의료 전달 체계를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지방 의료진과 의료시설에 대한 불신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부산시 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심각한 응급상황이 아니었음에도 119 헬기를 전용한 것은 그 시간대에 헬기 이송이 꼭 필요한 환자들의 사용 기회를 강탈한 것”이라며 통상 응급체계를 무시한 위선적 특권 행태를 비판했다. 이재명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119 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은 것을 놓고 부산 지역 의료계는 물론 대다수 의료인이 ‘내로남불’, ‘특권의식 발로’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 상처에 대해서는 서울대병원에서도 다소 신중한 의견이 나온 만큼 어느 쪽 주장이 절대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국내 응급의료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지역 상급 종합병원 및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았어야 하고 환자 혹은 보호자의 전원 요구가 있을 경우 119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편을 통해 연고지 병원으로 이송돼야 하는 게 원칙이다.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정치가 응급의료체계를 망치지 않게 해 달라. 이는 정치 논리나 진영 논리가 개입돼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궤변은 의료 혁신은커녕 총선을 앞두고 정치 냉소를 가속화하지는 않을는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공공의대를 세우고 지역 의사를 배치해도 좋은 병원은 서울에 있는 병원이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의료 격차 해소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란 사실을 직시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