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계층을 위한 정책이 필요할 때
소외 계층을 위한 정책이 필요할 때
  • 시정일보
  • 승인 2009.04.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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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빈 전라남도의회 의원

요즘 대중매체에 의해 자주 접하게 되는 소식은 소외 계층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공원에서 겨우겨우 하루의 생명을 연장해 가는 길거리 사람들. 이들은 정말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갖가지의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또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 막다른 길에 몰린 신용불량자들,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동반 자살한 이야기, 부모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들 등등 수많은 사연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한계상황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영하 십 몇 도의 혹한에도 길거리에서 차디찬 땅바닥에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보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고 2만 달러를 달성한다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과연 우리나라 사회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정부에서 절대 빈곤층들을 구제한다고 하지만, 나라 빚도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계속 끌어다 쓰다가 나라가 부도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국민의 혈세로 세어나가는 눈먼 돈만 잘 활용한다면 그까짓 100만쯤 구제 못할 일도 없겠지만, 서민의 입장에서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는 생각해 본 입장을 말해보고자 한다.
주요 역 주변에 있는 노숙자들은 국가와 서울의 이미지를 어둡게 하고 우울하게 한다. 그들이 길거리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떠도는 이유는 한 곳에 주소를 두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정과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일수도 있고 사회에 버림받은 사람일수도 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국가 기관에서 관리하는 부서를 두고 사회복지 예산을 늘려 노숙자를 위해 예산도 편성하여 넓은 실내를 만들어서 자고 씻고 먹고 갈아입는 기본적인 생존 요건은 해결되었으면 한다.
상담, 심리 치료도 받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신력도 강화하고 무장시켰으면 한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더라도 빈곤층의 사각지대는 너무 많다. 은행을 통하지 않고 정부에서 직접 대출을 해주고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공과금도 내지 못해 가스, 전기가 끊기고 국민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해서 치료도 받지 못하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람은 이들을 상담하여 가장 최선의 방책을 가르쳐주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언제까지 이들에게 책임을 돌릴 것인가?
대출도 은행을 통해서가 아닌, 정부기관에서 관리하여야 하며 생존을 위한 대출도 과감히 해줘야 한다.
고리사채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를 강화하여 신용이 없는 사람들이 사채 때문에 자살하고 가정이 깨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웃과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노숙자와 빈곤층은 더욱 나락으로 빠져들어 갈 뿐이다. 직장 잃은 실업자와 휴·폐업하는 영세업자가 쏟아지는 이때에, 정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빈곤층에게 부빌 언덕이 되어주어야 한다.
옛말에 ‘소도 부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 빈곤층을 위해서 누가 부빌 언덕이 되어야할까? 또한 우리 정부에게만 내맡기지 말고 종교단체와 자선사업단체나 개인이 나서야 할 때이다.
구제는 당연히 해야 할 덕목이며 의무라고 경전이나 윤리 지침서에도 많이 나와 있다. 성서에서도 우리에게 명령한다고 반드시 해야 할 일로 기록하고 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내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 지니라”
이웃을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마음과 시간을 할애하여 국 한 그릇 밥 한 그릇 나누며 그들에게서 삶의 찌든 때를 씻겨내고 사회의 대열 속으로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일, 힘든 때를 극복하기 위한 부탁이라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