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 시국선언 ‘양날의 칼’ 되나
공무원노조 시국선언 ‘양날의 칼’ 되나
  • 방용식 기자
  • 승인 2009.06.2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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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단순가담자도 중징계” 선언…공무원노조, 30일쯤 재논의 ‘후퇴’
시대상황이 달라져서일까. 시국선언을 놓고 정부와 공무원노조 사이에서 벌어진 힘겨루기에서 정부가 이겼다. 행정안전부와 검찰 등 정부는 공무원노조의 시국선언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력징계방침을 천명했고, 전국공무원노조 등 공무원단체는 시국선언을 뒤로 미루며 한발을 뺐다. 공무원노조의 두 축인 전공노와 민주공무원노조는 시국선언 시기 등을 놓고 의견을 달리하는 등 통일된 입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노조사무실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시국선언 발표승인을 연기하고, 이달 30일쯤 모여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전공노와 민공노, 법원노조는 지난 22일 노조위원장이 만나 이르면 금주 안으로 각 노조와 본부‧지부‧지회명의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민공노는 전공노와 별도로 내일(25일)께 회의를 열어 방침을 정할 계획이다.

• 정말 의견수렴이 안됐기 때문?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중앙집행위위원회에서 ‘내부 의견이 아직 수렴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우세해 본부와 지부별로 의견을 모은 뒤 시국선언 참여여부를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민주공무원노조 측도 이런 입장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무원노조의 투쟁과정을 살펴보면 의견수렴 미비를 이유로 중요한 정책결정을 미룬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 인사담당 6급 직원은 “시국선언을 해 대규모로 파면이나 해임을 당할 경우 희생자 구제기금 규모가 커져 조합을 운영하는데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은 재정적인 문제가 시국선언을 연기하게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법외노조 시절 활동경력과 지난 2004년 11월 총파업으로 파면 또는 해임된 공무원은 120여명 수준이다. 2004년 총파업 당시 파면 64명, 해임 58명, 정직 49명, 기타 17명, 유보 22명 등 모두 188명이 징계됐다. 파면이나 해임된 공무원들은 노조로부터 월급만큼의 희생자구제기금을 받고 있다. 지난 한해 전공노와 민공노가 희생자구제기금으로 지출한 금액은 88억여 원이다.
이와 관련, 전국공무원노조는 2005년~2006년 노조소속 공무원으로부터 조합비(본봉의 0.8%)와 별도로 2만원을 희생자구제기금으로 받았다. 이후 희생자구제기금에 대한 내부비판이 제기되자 2007년부터는 본봉의 1%를 조합비로 책정했다.
정부의 ‘발 빠른’ 강력대응 방침 천명도 공무원노조의 시국선언을 미루게 한 원인이다. 이달곤 행정안전부장관이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공무원노조 조합원 전원을 중징계 해 달라”고 각 부처장관에게 직접 주문한 것을 비롯해 행정안전부 복무담당관실은 23일 오후 4시와 5시에 각각 지방자치단체와 중앙행정기관 관계자회의를 열어 엄정한 대처를 요청했다.

•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하지만 공무원노조의 시국선언 불길이 잡힌 것은 아니다. 비록 최대 조합원을 가진 전공노가 시국선언 연기를 결정했지만 민주공무원노조는 시국선언문 발표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또 법원노조도 25일 상임집행위원회를 열어 시국선언 참여여부를 정할 계획이다.
우선 정부는 공무원의 시국선언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공무원노조 시국선언을 불법행위로 규정한 근거는 <국가공무원법> 등에서 정한 정치운동금지, 집단행동금지 등 조항에 두고 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은 ‘집단행위금지’ 조항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경제회복과 민생안정에 앞장서여 할 공무원이 시류에 편승,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공무원이기를 포기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단순가담자도 배제징계 등 중징계 처분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이 달라진 만큼 과거하고는 비교하지 말라. 시국선언 참여공무원은 대규모 징계도 피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2004년 총파업 당시 징계수위를 놓고 오락가락하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정부가 물러설 경우 이명박 정부가 정책결정과 집행 등 정치행위를 하기 어려워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과 국민장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급락한 상태다.
하지만 지나친 강경대응은 상황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자치구 관계자는 “공무원노조의 투쟁방향을 결정하는 건 대부분 해직자다”며 “대규모 해직사태가 발생할 경우 또 다른 반정부인사를 키우게 되는 꼴이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측도 고민이 많다. 일단 ‘내부 의견수렴 불완전’을 이유로 시국선언문 발표를 연기했지만,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옥쇄(玉碎)를 선택하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재정적 압박에 따른 조합운영이 어려워진다. 또 지난 3일 이들 3개 노조의 통합선언으로 얻은 대(對)정부투쟁의 동력을 상실할 위험이 생긴다. 게다가 여기서 생긴 틈이 커질 경우 연말로 약속했던 통합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들 3개 노조는 ‘전국공무원노조’라는 단일노조였으나 설립신고와 관련, 이견으로 2007년 분리됐다.
한편 공무원노조는 조합원 보호를 위해 조합원 서명 없이 조합‧지부‧지회의 명단을 넣는 식으로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노조가 밝힌 시국선언은 지난 10일 발표한 성명과 같은 내용으로 성명서에는 국정전면쇄신과 반(反)민생‧민주 악법철회, 서민 살리기 정책 우선시행, 남북 간 긴장관계해소, 4대강 정비사업 즉각 중단 등을 담고 있다.
<방용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