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에 의한’ 풀뿌리 자치 ‘일보전진’
‘주민에 의한’ 풀뿌리 자치 ‘일보전진’
  • 임지원 기자
  • 승인 2010.01.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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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책행정/주민참여제도


서울 성동구 주민들이 임시주거시설 조성을 의무화하는 조례안을 발의해 지난해 12월7일 성동구청에 제출했다.
주민 참여,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정책 결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참여해 영향을 미치거나 권한을 행사하려는 일련의 행위’로 정의된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주민들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한다. 이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정책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주민들의 이런 ‘욕구(needs)’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난 정부는 지방분권 로드맵에 따라 2003년 12월 ‘주민투표제도, 주민소환제도, 주민소송제도의 도입방안을 강구하는 등 주민직접참여 제도 강화’를 주요 골자로 하는 <지방분권특별법 제14조>를 제정하고, 주민 참여의 본격적인 돛을 올렸다.
그러나 민선 5기가 출범하는 2010년 시작점에서도 주민참여제도는 ‘실효성’ 등을 이유로 여전히 ‘미완성’ 단계다. 한국 지방자치의 도약을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주민참여제도에 대한 홍보가 절실하다. 본지를 통해 주민참여제도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1991년 구ㆍ시ㆍ군의회 선거와 시ㆍ도의회 선거로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1995년 동시지방선거로 지방자치의 첫 도약을 알렸다. 선거를 통한 지방자치단체장 선출은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 참여 통로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지역 행정의 중심에 지역 주민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법률적 제약이 많은 탓에, 예산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앙정부의 통제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으며, 직권남용 등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각종 비리는 잊혀질만하면 한번씩 터져 나와 지방자치제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다.
결국 지방자치의 발전은 주민참여를 통한 자치 역량 강화에 있다.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지방자치는 중앙 권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비리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이다.

주민발의 확산 ‘지방의회 관심’ 필수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광장을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신고제’로 바꿔달라는 내용이 담긴 주민 발의가 지난해 12월29일 서울시에 접수됐다. 서울시민 10만2741명의 참여로 발의된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이 그것. 서울시는 서명요건 검증을 거쳐 서울시의회에 개정안을 제출하게 된다. 이후 시의원들의 표결을 통해 개정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같은 해 12월7일 서울 성동구에서도 주민발의가 접수됐다. 임시주거시설 조성을 의무화하는 조례제정안을 주민발의하기 위해 ‘성동구 임시주거시설 조례제정 운동본부’가 주축이 돼 6000명의 주민 참여를 이끌어 냈다.
주민발의제도는 2000년 3월 <조례제ㆍ개폐 청구권>으로 처음 도입됐다. 대표자가 청구서를 제출하고 단체장이 공표하면, 이날로부터 광역은 6개월, 기초는 3개월 동안 청구인명부를 제출하면 된다. 이 과정을 거쳐 청구인 수를 채우면 해당 자치단체는 조례안 전문을 60일 이내에 지방의회에 부의해야 한다.
주민발의가 빛을 보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지방자치단체에 거주하는 20세 이상의 주민 중 20분의 1이상의 주민들의 연서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조례의 제정이나 개폐를 청구’하기 위해 시민들의 서명을 받을 때 주소, 주민등록번호, 날인 등을 필히 기재해야 한다는 점은 심리적 부담을 주는 부분이다. 발의를 한다 해도 지방의회의 무관심 등으로 주민발의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주민발의는 2003년 49건, 2004년 29건, 2005년 41건, 2006년 8건, 2007년과 2008년 각 6건이 청구됐으나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제기된 주민발의 123건 가운데 원안대로 가결된 것은 12건,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52건(42%)이며, 26건은 심의조차 하지 않아 자동폐기 됐다. 상임위에서 부결시킨 경우도 22건. 2007년 7월 이후 가결된 경우는 5건뿐이다.

지역현안 갈등 ‘주민투표’로 해결

주민참여제도의 일환인 ‘주민투표’ 또한 갈 길이 멀다. 행정안전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 중인 행정구역개편과 관련,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주민 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주민투표법> 제8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지방자치단체의 폐치ㆍ분합 또는 구역변경 등 국가정책의 수립에 관해 주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주민투표의 실시구역을 정해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주민투표의 요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행정안전부장관의 요구가 없으면, 주민투표는 실시되기 어렵다.
2004년 7월 시행된 주민투표는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에 대해서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직접 결정하는 제도로, 2009년 9월까지 3건이 진행됐다. 2006년 제주도 행정구조 개편 관련 주민투표를 실시, 당일광역자치안이 채택돼 같은 해 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충북 청주ㆍ청원 통합(2005년 9월)은 청원군의 반대로 무산됐다. 또한 같은 해 치러진 중ㆍ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유치 주민투표 결과 경주시가 선정됐다.

강력한 만큼 논란이 많은 ‘주민소환제’

주민투표가 지방자치단체의 개별적인 지방정책에 대한 것이라면, 주민소환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총체적 평가에 해당한다. 지방정치인의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결정에 불만이 누적되는 경우 주민들은 지방정치인의 소환을 요구할 수 있다.
주민소환제도는 시행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소환청구 사유에 대한 모호한 규정과 청구횟수의 제한이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2007년 7월 첫 시도된 경기도 김황식 하남시장의 소환에 관심이 집중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황식 하남시장의 소환은 투표율 미달로 개표 없이 무산, 38일간의 시장 직무정지 등 행정 공백과 9억여원의 투표비용에 의한 재정압박이라는 잔해만 남겼다.
지난해 5월13일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관련 주민의견 수렴 부족’ 등의 이유로 소환됐던 김태환 제주도지사 사례 또한 33.3%의 투표율을 넘기지 못해 개표함을 열지도 못하고 무산됐다. 2007년 5월 시행 당시부터 현재까지 25건의 주민소환이 접수됐으나 대부분이 서명인수 미충족 및 서명활동 중단 등으로 소환 대상자가 해임된 사례는 없다.
2007년 5월 첫 시행된 주민소환제도는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을 임기와 관계없이 해임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민참여제도로, 지방행정과 지방정치에 대한 주민들의 최종적인 통제수단으로 의미가 크다. 반면 단체장 선거에 정당공천제가 허용되고 소속정당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당리당략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크다. 또 단체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행하고자 할 때 소수의 주민에 의해 저지당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한편 주민소환투표는 시ㆍ도지사는 투표권자의 10% 이상, 기초자치단체장은 15% 이상, 지방의회 의원은 20% 이상의 서명을 받아 청구할 수 있다. 유권자 1/3 이상이 참여하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소환대상 선출직 공무원이 해직된다.

잘못된 재정 운영 ‘주민소송’ 추진

주민참여제도 중 주민소송이 그나마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주민소송은 법을 어긴 지방자치단체의 재무 행위에 대해 주민이 직접 소송을 제기해 그 행위를 중단시키고 낭비 예산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로, 먼저 상급기관에 주민 감사를 청구해야 하며, 그 처리가 미흡하다로 생각하면 감사청구에 서명한 사람이 주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2006년 1월 주민소송제도가 시행된 이래 해당 자치단체장의 업무추진비 위법지출 등 위법한 재정운영에 대한 주민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08년 5월28일 도봉구를 시작으로 11월20일 금천구ㆍ양천구, 12월24일 성동구, 2009년 4월28일 서대문구까지 불법 의정비 인상분 환수를 요구하는 주민소송이 접수됐으며, 지난 5월20일 서울행정법원은 주민들의 편을 들어줬다.<본지 2009년 5월21일자 법원 “편법인상 의정비 반환” 판결 기사 참조>
林志元 기자 /jw8101@sijung.co.kr



서울시 주민참여정책 ‘시민감사옴부즈만’
지역 행정 시민 참여 창구

사례 1 의정비 인상 10개 자치구에 시정권고

2006년 지방의회 유급제 도입에 따른 논란은 ‘시민감사청구’의 단골손님. 지방의회의 부적절한 의정비 인상에 반발해 주민들은 해당 광역단체에 주민감사를 청구하는 등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서울시 시민감사옴부즈만으로 감사를 청구한 자치구만 해도 2008년 10곳(도봉구ㆍ광진구ㆍ양천구ㆍ금천구ㆍ성동구ㆍ노원구ㆍ중랑구ㆍ서대문구ㆍ동대문구ㆍ구로구), 2009년 상반기 8곳(강동구ㆍ강북구ㆍ강서구ㆍ동작구ㆍ마포구ㆍ용산구ㆍ은평구ㆍ성북구)이다. 시민감사옴부즈만은 청구된 건에 대해 60일간 감사를 펼치게 된다.
그 결과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주민감사를 실시한 10개 자치구(2009년 상반기 기준)에 대해 관련 공무원을 문책하고, 심의위원회를 다시 구성해 의정비를 재심의 하도록 시정 권고를 내렸다. 이에 대해 도봉ㆍ금천ㆍ양천구 등 각 지방의회는 의정비 반환 판결에 반발하며 항소로 대응했다.

사례 2 ‘돈 주고 상 받는 구청장’ 주민감사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을 쌓기 위해 수천만원의 주민 혈세가 쓰였다. 주민들이 서울시 시민감사옴부즈만에 청구한 주민감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른바 ‘돈 주고 상 받기’ 의혹이 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상과 관련, 2008년 지방자치대상을 받은 9개 자치구 중 7개 자치구 주민들이 감사를 신청했으며, CEO 대상은 상을 수상한 4곳 모두 주민감사를 신청했다.
시민감사옴부즈만 감사 결과 시상식을 주관한 단체가 지자체에서 받은 돈의 일부만 홍보ㆍ행사비로 쓰고, 나머지는 직원 인건비로 사용하는 등 시상에 따른 홍보비용이 부당하게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낭비된 주민의 혈세를 전액 환수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주장에 반해 시민옴부즈만은 해당 지자체에 행정ㆍ신분상의 조치만 취한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서울시가 1996년 전국 최초로 시민감사청구제도를 도입한 이래 2007년 4월 시민감사관 제도와 청렴계약옴부즈만을 통합, ‘시민감사옴부즈만’으로 재탄생시켰다. 시민감사청구제도는 2000년 도입된 주민감사제도의 모델로, 일련의 사례들은 주민감사제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감사옴부즈만이 지역행정 및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여를 이끌어 냈다는 성과를 보여준다.
시민감사옴부즈만은 시민이 청구한 감사 및 조사 등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으로, 5명의 시민들로 운영협의회를 구성, 주1회 정례회를 개최해 제적과반수로 의결하는 합의체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시민감사관으로 위촉하고 공익 및 다수 시민관련 사항 등에 감사권을 부여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팀장 1명과 팀원 7명으로 시민감사관팀을 구성, 시민감사옴부즈만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