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대 웅 구로구청장 / 현대판 목민관의 자세
양 대 웅 구로구청장 / 현대판 목민관의 자세
  • 시정일보
  • 승인 2010.01.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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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구청장은 법률전문가 다운 말만 했지요, 근데 양 구청장께서는 저희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셔서 골목길을 들어설 때마다 찌푸린 인상은 더는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법, 법, 누가 모릅니까? 법만 내세우는 위인보다는 구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사람이 행정의 전문가가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에 주민 한 분이 방문하여 던진 말이다.
물론 공무원은 법에 의해 행정을 해야 한다. 그게 법치행정을 실현하는 일이다. 법치행정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법률 유보와 법률 우위의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 행정을 함에 있어서 법률의 근거에 의해, 법률의 범위 내에서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법은 국민의 합의기관인 의회에서 제정했다. 따라서 법률에 따라 행정을 집행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여기서 주민께서 융통성이라고 밝힌 것도 합목적성을 두고 하신 말인 듯하다. 법에만 매달려 일을 하면 행정이 경직되어 요즘 같은 다원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행정이 법에 근거 없이 또 법을 무시하며 집행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합법과 합목적을 두고 이익형량을 해야 하고 또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곤 목적을 향해 집행하면서 법치행정이 되도록 합목적과 합법을 적절히 융화시키는 융통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정의 기술이며, 현대판 목민관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32년 동안 행정공무원으로 몸담고, 또 정치인으로 입문하여 7년 동안 민선 구청장으로, 도합 39년 동안의 행정 경험과 노하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주민께서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골목길 포장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구로는 자연취락적 구조의 마을에서부터 도시가 시작됐기 때문에 사유도로가 요소요소에 깔려있다. 사유도로를 포장하기엔 법대로 하자면, 쉽지 않은 일이다. 남의 땅에다 구청에서 임의대로 포장을 하여 공용에 활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유권자의 재산권 행사에 부딪히면 부당이득반환청구니, 손해배상청구니, 원상회복청구니 하는 분쟁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다. 최근의 판례는 ‘공익 우선’보다는 ‘사익을 보호하는 공익’이라는 개념이 팽배하다. 공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무조건 강요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논리에 부딪혀 그동안 사유도로는 포장되지 못했고, 주민은 생활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과감하게 포장을 하도록 했다. 주민의 고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서 합목적성에 무게를 뒀던 조치였다. 그렇다고 합법을 소홀히 하진 않았다. 당초 사유도로는 개설 당시에 기부채납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었기에, 당시의 서류를 찾아 기부채납을 유도하거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반면, 포장을 하고 나서 사용료 부담 등의 청구소송에 결부되면 사용료도 부담할 준비를 하라는 조치까지 곁들였었다. 국유재산을 개인이 사용하면 개인은 사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도 개인의 재산을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 옳다. 개인의 특별한 희생에 대한 보상까지 염두에 뒀던 것이다.
이후 구로에서는 사유도로에 대한 포장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이 같은 주민의 방문을 받게 된 것이다.
邑例者(읍례자) 一邑之法也(일읍지법야) 其不中理者(기부중리자) 修而守之(수이수지)라고 목민심서 봉공6조 편은 말한다. 당시에도 한 고을의 법이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고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정은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지방행정은 더욱 그러한 요소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주민에게 이로운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구민이 구청장입니다’라고 외쳤듯이, 구청장이 곧 주민임으로 역지사지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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