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청, 2월의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 선정
보훈청, 2월의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 선정
  • 백인숙 기자
  • 승인 2010.02.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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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덕 선생
 
◈ 동경 2·8독립선언 대표 ◈

국가보훈처(청장 김양)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동경 2·8독립선언에 참여, 옥고를 치르고 중국에서 임시의정원 의원과 임시정부 문화부 부장으로 활동한 김상덕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김상덕 선생은 경북 고령군 저전동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배움에 대한 뜻을 잃지 않고 한학으로 학문적 소양을 다진 뒤 1915년 경신학교에 입학했다. 또 졸업 후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진학, 유학생들과 민족운동의 방안을 모색했던 인물이다.
지난 1919년 1월 김도연·백관수·최팔용 등과 함께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 2울8일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 낭독을 감행한 선생은 일제에 체포·구금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 3월5일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선생은 1928년 시사연구회 책임비서로 전민족유일당조직촉성회를 개최, 이어 같은 해 12월에 지린(吉林)에서 혁신의회와 민족유일당재만책진회를 조직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만주에서의 유일당 운동은 참여한 독립운동단체간 입장 차이로 결렬, 1931년 일제의 만주 침공으로 선생은 다시 중국 본토로 건너왔다.
그 후 1942년 조선민족혁명당이 임시정부에 참여하면서 선생은 의정원 의원으로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요청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쳐 나갔다. 또 임시정부에서 문화부 부장에 선임돼 국무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편 1945년 11월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 등 임정요인과 함께 귀국한 선생은 1948년 5월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6·25 전쟁 때 납북됐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