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기고문> 병탄, 합병? 사죄, 사과?
<경술국치 100년 기고문> 병탄, 합병? 사죄, 사과?
  • 시정일보
  • 승인 2010.08.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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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필 순 서울지방보훈청 보훈과

8월29일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입장에서 1910년 경술년에 나라를 빼앗기는 국가적 치욕을 당했다는 의미에서 ‘경술국치’이며, 나라가 망했다는 의미나 나라의 권리를 빼앗겼다는 의미에서 ‘국망’ 혹은 ‘국권피탈’이다. 또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켰다는 의미에서 ‘일제의 한국병탄’이고, 강제로 점령했다는 의미에서 ‘일제의 한국강점’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입장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일본이 대내외에 한국을 강제로 점령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조약의 명칭을 정하는데 고심을 거듭했고 그 결과 선택된 어휘는 ‘병합(倂合)’이었다. 침략적인 성격이 너무 드러나는 ‘병탄’이라는 용어는 차마 사용할 수가 없었고 또한 두 나라가 형식적이나마 동등하게 하나의 나라로 합친다는 의미의 ‘합방’이나 ‘합병’도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병합’은 한국을 일본 제국 영토의 일부로 삼는다는 의미가 ‘합병’보다 강하고, 한국이 아주 폐멸돼 일본 제국의 영토가 됐다는 뜻은 명확히 하되 그 어조가 너무 과격하지도 않았기에 그 사용례가 흔치 않았던 ‘병합’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게 됐던 것이다.

미묘한 어조의 차이마저 함부로 간과할 수 없는 한일관계는 경술국치 100년 및 광복 후 65년이 된 현재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본의 나오토 총리가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지난 10일 발표한 담화는 식민지 지배가 “정치·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 한국인들의 뜻에 반하여 이루어졌다”라고 밝히며 내각의 전 각료 야스쿠니신사 참배 불참,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를 한국에 넘기는 등 과거 청산의 의지와 노력의 실마리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담화문에 쓰인 어휘에도 한일 양국의 미묘한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다. 의궤 반환과 관련해 우리는 ‘반환’이라고 번역했지만 일본은 ‘인도’라고만 썼을 뿐이다. ‘반환’이 갖는 문화재 유출의 불법성 인정 및 향후 다른 약탈 문화재에 대한 동일한 처리에 대한 부담을 피하고자 일본은 ‘이번에 예외적으로’라는 의미에서 ‘넘겨준다’라는 표현을 썼다. 또 ‘사과’와 ‘사죄’는 그 전달하려는 바의 수위가 다름에도 일본의 전자의 표현을 하고 우리는 후자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서로간 대화에 쓰이는 어휘 하나하나도 조심스러운 관계, 그 어조가 담고 있는 이면에 숨은 뜻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하는 관계가 한일관계이다. 양국 국민이 모두 바라는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과거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과, 용서의 단계를 거치되 이러한 과정에 쓰이는 언어는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거나 희석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위 기사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