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에 맞는 ‘인사청문회’를
시대정신에 맞는 ‘인사청문회’를
  • 시정일보
  • 승인 2010.09.0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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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기획취재국장
최광희 국장

‘위법과 탈법에는 죄송, 의혹은 함구’로 대응하던 8.8 개각에 따른 청문회가 끝나고 총리와 장관 2명이 국민의 여론에 밀려 사퇴를 했다. 청문회 대상자들이 제출한 자료는 부실했고 ‘버티면 된다’는 모습만 보이는 지저분한 청문회였다. 여기에 개인사만 캤을 뿐 정책검증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당연히 ‘죄송 청문회’ ‘부실청문회’라는 국민적 비난만 쇄도했다. ‘이런 지저분한 청문회는 더 이상 안된다’는 인식만 높아졌다.
많은 사람이 잘못된 인살ㄹ 바로잡을 수 없는 현재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총리를 제외하고 국회는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만 채택할 뿐 임명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 청문회가 통과의례가 아니라 공직자 자질을 검증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공직자와 일반시민은 분명히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흠결이 있으면 처음부터 공직을 맡아서는 안된다.
예나 이제나 위기의 냄새를 맡는 정치본능을 마비시키는 건 권력이다. 권력에 갇힌 시간이 길러질수록 위기감도 무뎌진다. 고심을 거듭해 내놓았다는 개각이 도리어 민심을 거스른 이번 사태도 권력의 노화현상이라는 말로써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인간은 법의 거울에 자신의 행동을 비춰보며 두려워하고 도덕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한다. 정치라는 것은 이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교묘하게 섞어가며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나간다. 법의 거울밖에 없는 사회는 부끄러움을 잃게 되고, 도덕의 거울로만 지탱하는 사회엔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결과는 다 같이 혼란과 무질서다. 하물며 법의 거울과 도덕의 거울이 함께 망가진 나라의 앞날은 더 이상 물을 게 없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인사청문회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는 가운데 “더 엄격한 인사검증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제라도 철저한 사전검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청문회에서 지적되는 대부분의 의혹은 시전검증 과정에서 다 걸러야 한다.
본인들도 문제다. 자신에게 위법 사실이나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면 고위 공직은 스스로 삼가야 한다. 그것이 국민은 물론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예의다. 청문회에서 망신을 당하더라도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위기를 넘기면 그만이라는 출세지상주의는 시정잡배나 마찬가지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하며 살아왔는지는 인사청문회에 나가 봐야 알 수 있다”는 우스개가 있듯이 자신도 미처 몰랐던 온갖 일들이 파헤쳐지는 곳이 청문회이긴 하지만, 자기검증을 통해 후보 수락여부를 고민하는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했다.
임기 후반을 시작하면서 40대 총리 후보자를 내세워 ‘쇄신과 세대교체’의 의욕을 보였던 인사가 ‘도루묵’이 됐으니 정부 얼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그래도 민심을 거스른 인사를 무리하게 밀고 나가려다 국민의 저항을 키워 나라를 더 큰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 사태는 면할 수 있게 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듯하다. 따라서 고위 공직후보자들을 평가하는 현재 잣대의 현실성과 일관성 문제를 사회적으로 고민할 때가 됐다. 아울러 “무신불립이라 했습니다. 구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신뢰가 없으면 제가 총리직에 임명된다 해도 무슨 일을 앞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죄의 변을 새겨보자는 것이다.
시대는 이미 자신의 이득을 위해 법을 어긴 사람을 공직자로 원하지 않고 있다. 어떤 대통령이 먼저 시대정신을 실현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