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표준시’ 135° 유감
한국 ‘표준시’ 135° 유감
  • 방용식 기자
  • 승인 2011.03.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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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이 92번째 지났다.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보신각, 전국에서는 동시에 기념식이 열렸고 선열을 추모했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로 시작되는 독립선언서 선포에 이어 벌였던 식민지 한국인의 비폭력만세투쟁은 중국의 5.4운동에도 영향을 주기도 했다.

마침 국가기록원은 <한국 표준시 변경> 관련 기록물 3건을 ‘이달의 기록’으로 선정하고, 2일부터 나라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로 서비스한다고 밝혔다. 제공 기록물은 ‘표준시간 복구에 관한 이유서, 표준자오선 변경에 관한 건’, ‘한국 표준시간 변경에 관한 건’, ‘표준자오선 변경에 관한 법률공포의 건’이다.

1954년 3월21일 0시30분을 기해 단행된 <한국 표준시 변경>은 일본 혼슈 효고현 아카시(名石)가 기준인 동경 135° 대신 서울이 기준인 동경 127.5°를 표준시로 정하는 내용이었다. 이 결과 우리나라의 시간은 30분 늦춰졌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표준시 변경과 관련, ‘일광절약시간(summer time)을 30분 잃어버리고, 실제 한국지방의 시간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극도의 반일주의자’로 알려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식민지 시절이던 1912년 1월1일 정해진 표준시를 인정하지 않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표준시 변경에서 찾았다는 게 설득력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1월 평화선(일명 이승만 라인)을 선포하고, 소련 등 공산세력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의 일본과 국교회복 요구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등 반일감정을 그대로 나타냈다.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8월7일을 기해 표준시를 다시 동경 135°로 변경했고, 현재까지 우리나라 표준시 기준은 일본의 아카시이다. 물론 세계표준시와 계산하기 어렵고 낮 시간을 30분 상실하는 문제가 있다는 어려움을 들었지만, 표준시를 일본에 맞춘 탓에 좌파는 ‘일본인, 박정희’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토지측량은 일본 도쿄가 기준이었다. 92년 전 빼앗긴 나라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희생했던 선열들은 광복 65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