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의거의 의미를 되새기며
4·19 의거의 의미를 되새기며
  • 시정일보
  • 승인 2011.04.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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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한만수

- 언어문화창달을 기초로 하는 정의의 질서확립 -

한만수 논설위원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다가와 성장을 촉구하는 계절이다.
얼음판에 깔렸던 굳은 땅에 묻혔던 생명의 씨앗들이 지난날의 쓰라림을 딛고 성장을 지향하면서 화창함을 만끽하고 있다. 봄을 맞는 우리마음의 자세를 뒤돌아 보게한다. 이에 4·19의거의 올바른 의미를 되새겨 본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1960년 2월28일 대구에서“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고교생들의 외침이
4·19의거의 최초의 도화선이 되어, 결국, “학생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뭉치자” 라는 정치적 구호로 바뀌면서 “학생은 더 이상 현실을 좌시할 수 만은 없으며 정의와 민주수호를 위해 궐기해야 한다” 는 서울시내 각 대학에서 총 궐기의 선언낭독문과 더불어 대행진의 막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4·19의거는 처음부터 정권탈취를 목적으로 한 투쟁이나 어떤 정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체제변혁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며, 어떤 정치적 주도세력이 개입 된 것도 아니며, 따라서 조직적 투쟁계획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학생 시민들이 요청한 바는 정의의 질서확립이었다. 모든 불의·부정부패에 항거하여 정의의 질서를 회복하며 건설하자는데 그 의미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의의 질서는 그것이 그대로 윤리적 사회건설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민족역사의 윤리적 과정 이후의 정치적 건설로 향하는 발달의 형성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국민의 지지와 신망이 없는 어떠한 정권도 존립할 수 없음을 입증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민족의 우수한 잠재적 소질의 표현이며 강한 생명력 있는 자각적 민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참다운 민주국민이 될 수 있는 자질을 보여주고 있다. 4·19의거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사건에 불과했지만 4·19의거가 요청하는 정의의 질서건설은 오랜 세월을 요청했다. 4·19의거는 바로 위대하고 훌륭한 건설을 위한 우리의 땀을 요구하고 있다. 4·19의거의 고귀한 피의 희생은 가장 민주적이며 국민적 신망을 받는 정의의 질서건설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국민의 민주의식의 발전과 나아가서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위한 우리의 의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4·19의거의 고귀한 벽돌들을 한장 한장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있다.

민족역사의 터전을 장만하는 시급한 사명감을 안고 새로운 책임감과 건설적인 비판을 가하면서 건설의 탑을 쌓아 올리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나 산업에 있어서나 어떤 건설에 있어서나 위로위로 치솟고 있다.
그러나 4·19의거의 교훈을 망각하게 된다면 바벨탑이 무너지듯 모처럼 쌓아 하늘에 닿을 듯하다고 기뻐할 때 무너짐의 쓰라림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줄 알고, 정직하고,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참된 인격을 갖춘 인간상을 상실할 때 우리의 공든 탑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4·19의거의 정의의 질서적 교훈과 윤리적 사회건설이 결여된 어떠한 단체나 사회도 결국 역사의 심판 앞에 붕괴되고 만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우리는 옷깃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하 정의의 질서확립과 윤리적 사회건설의 기초는 언어문화창달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줄 믿는다.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언어 행위, 거짓없는 참말을 하는 언어행위가 바른 질서확립과 건강한 사회윤리 건설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오늘의 정의실현을 위한 질서회복과 윤리적 건강한 사회구축을 위해서 정부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각급 기업단체에서 언어문화창달의 봉사기관에 그 얼마나 관심과 지원을 쏟고 있는지 자각을 촉구하게 된다.

이러한 정의의 질서없이 산업이 발전되고 부가 축적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우리」가 아니라 「나」만이라는 이기적 사고에 젖어질 때 4·19의거의 정신을 모독한 행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4·19의거의 정의의 질서는 오늘도 살아 움직여 우리국가와 사회의 성장발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성장을 지향하면서 학생은 학원에서, 정치는 정계에서, 농부는 농장에서, 노동자는 공장에서, 실업인은 사업에서 각기 주어진 일터에서 정의의 질서하에 각자가 자기의 실력을 쌓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자주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돕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서로가 서로를 협조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때 4·19의거는 뿌린씨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사)국제기독교언어문화연구원 원장
http://www.clc.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