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왕 박태준
철강 왕 박태준
  • 방용식
  • 승인 2011.12.1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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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 ~1919). 미국의 ‘강철 왕’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1901년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점유한 US스틸을 세웠고, 은퇴 후에는 카네기공과대학(현 카네기멜론대학)을 세워 교육과 문화 사업에 헌신했다. ‘축적된 부는 사회복지에 투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고, 미국인들 뇌리에 위대한 인물로 각인됐다.

박태준(1927~2011). 대한민국의 철강 왕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육사 6기 출신으로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비서실장에 발탁됐고, 포항제철 건설의 주역으로 한국 철강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박태준은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라는 좌우명으로 수많은 영욕 속에서 생활했다. 세계의 업신여김과 내부 논란에도 대일청구권 자금 7000여만 달러와 일본은행차관 5000만 달러 등을 밑천으로 허허벌판 포항에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설립해 신화를 이뤘다.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4번의 국회의원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욕됨’도 있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하고,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일본으로 망명으로 떠나기도 했다. 1997년 4선 의원으로 DJT(김대중-박태준) 연합을 이끌어내며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4개월 만에 부동산투기 및 명의신탁 의혹으로 낙마했다. 일부에게 박태준은 ‘개발독재 시대의 아이콘’으로 폄훼되기도 한다. 그러나 박태준은 25년간 포철과 인연을 맺으면서도 단 1주의 주식도 갖지 않았다. 포철 명예회장직도 무보수였다. 박태준은 1961년 당시 박정희 의장의 하사금을 받아 매입한 아현동의 주택에서 40여 년간 살다가, 2000년 처분해 사회에 환원했다. 생활비도 자녀들에게 받아썼다고 한다.

그를 보는 시각은 시좌(視座)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否)보다는 공(功)이 크다. 카네기는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의 본보기로 존경받지만 미국 노동 탄압 역사에서 유명한 ‘홈스테드학살사건’의 장본인이다. 그리고 남북전쟁 때는 300달러를 주고 대리징집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대리징집제도가 있었지만, 요즘 세간에서 회자되는 ‘정의(Justice)’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영원한 포철 맨, 박태준 포철 명예회장이 13일 영면했다. 박 전 명예회장의 별세 뉴스를 보고 우리에게도 영웅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