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해적
  • 방용식
  • 승인 2012.03.1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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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공해상에서 국가 또는 정치단체의 명령 또는 위임에 의하지 않고, 사적 목적으로 다른 선박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행위를 행위를 하는 자. 우리는 이를 해적(海賊, Pirate)이라고 부른다. 브렌다 랄프 루이스가 쓴 <해적의 역사> 등 책을 보면 역사에서 기록된 해적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등장했다. 기원전 1400년경 터키 해안에 근거지를 둔 Lukka라는 해적이 있었고, 이집트 역사는 비슷한 시기 해적이 사이프러스를 공격했고 1300년경에는 히타이트와 동맹을 맺었다며 기록하고 있다.

해적이라는 용어는 기원전 140년 즈음 로마의 역사가 Polybius가 ‘바다의 도둑, 약탈자’라는 의미의 Pirate로 명명했다. 대표적인 해적은 영국 등을 건설한 바이킹(Viking)들이다. 바이킹은 서기 9~11세기 영토 확장을 위해 유럽에 출몰한 스칸디나비아반도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서기 789년 잉글랜드 남부 해안에 상륙했고 795년에는 더블린, 799년에는 프랑스 남부에 도달했다. 이들의 유럽진출은 1050년에 마무리됐다.

해적은 바닷길이 개척되면서 생긴다. 또 해상무역이 번성하면서 ‘동반’ 성장한다. 지중해 해적은 그리스와 로마의 뱃길을 이용한 무역이 커지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신대륙이 발견된 후에는 카리브해의 해적이 크게 준동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도 당시를 배경으로 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해적을 없애기 위해 1700년에는 포상금을 걸었고, 해적행위는 배심원 없이 사형할 수 있도록 처벌조항을 강화했다. 1713년에는 유럽국가 간 협약을 통해 해군력을 동원, 해적을 토벌했고 결국 1725년에는 해적이 사그라졌다.

우리에게 알려진 해적은 지난해 1월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해군 청해부대의 ‘아덴만의 여명’ 작전으로 소탕됐고 5월에는 재판을 받았다. 일본이나 한반도 남쪽에 살면서 노략질을 하던 왜구(倭寇)도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해적이다. 통일신라 장보고는 왜구와 중국 해적으로부터 신라 상인을 구하기 위해 해상 군사기지인 청해진을 설치, 해상무역을 장악했다. 우리는 장보고를 ‘해상 왕’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던 젊은 여성이 제주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로 불러 논란이 됐다. 인기작가 공지영 씨도 부연설명은 했지만 해적이 맞다고 말했다. 장보고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