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내 고향은 베트남입니다
독자기고/내 고향은 베트남입니다
  • 시정일보
  • 승인 2013.03.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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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웬티빅짬 (신안군 팔금면 원산리/베트남)


[시정일보]아직까지도 공산사회주의가 뿌리 깊은 나라 베트남에서 태어나, 어딘가 좀 더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에 대한 동경이 늘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던 시절, 그 돌파구를 찾아 국제결혼이라는 결단을 내리고, 대한민국 신안군 팔금면 원산리에서 태어난 내 이쁜 남편 김진강 씨와 베트남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저는 베트남에 남아 서류를 준비하면서 한국말을 공부했습니다.

알 수 없는 문자들, 머리는 아파 오고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과 설렘이 나를 짓누르는 시간이 지나고, 2007년 4월 마침내 한국에 왔습니다.

따뜻한 나라에서 살았던 나는 두 발을 한국 땅에 내딛는 순간 한국의 날씨가 너무 추웠고, 나를 더욱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날이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남편이 눈에 들어오고,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뛰어가 안기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한국생활은 기대보다 힘들고 지치고, 현실은 너무나 실망이 컸습니다. 처음 신혼생활은 시댁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시작했는데, 환경이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안 보이고 옆을 보아도 앞을 보아도 오로지 할머니들밖에 없으니, 나의 환상은 하나하나 허공으로 날아갔습니다. 남편은 작은 땅을 일구는 농사일과 자활사업단에서 염소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남편을 따라 그래도 남편과 같이 해야 된다는 생각에 농사일을 하나하나 배워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졸린 눈을 비비며 한국어/베트남어 사전을 넘기며 한국말을 공부했습니다.

남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농사도 제법 규모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되자 농사규모가 많이 늘어 남편은 자활사업단 일을 그만두고 농사일에만 매달렸습니다. 특수작물 브로컬리를 재배해 수익도 많이 올리고 돈도 모아지자 남편은 지금 살고 있는 아름다운 새 집을 장만해 분가했습니다.

그 사이 소중한 딸이 태어나고 또 둘째도 예쁜 공주가 태어나 우리 부부는 행복에 젖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타국 땅에서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소중한 우리 딸들, 내남편, 이젠 이상하게 보던 동네 할머니들도 저를 살갑게 대해 주시고, 모든 동네일에도 끼워 함께 해 주시는 동네 어르신들, 모두 사랑합니다.

한국에 온 지 4년이 되던 해에 잊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저 몰래 3년 만기 적금을 들었던 것입니다. 만기가 되자 저에게 통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이 돈으로 친정에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이렇게 정이 깊고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베트남에서 떠나올 때는 저 혼자였으나 4년이 지난 지금은 남편과 두 딸과 함께 친정에 갈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남편의 마음이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나라는 달라도 부부란 참 오묘한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며 믿어주고,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가진 지금 생각하면 처음에 그렇게도 추웠던 한국이 이제는 따뜻하기만 합니다.

오늘도 남편과 저는 논으로 뛰고 마을, 시금치, 브로컬리 밭으로 부지런히 뜁니다. 거기에 희망과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다문화 가정이란 용어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으로, 단란한 한국의 한 가정으로 봐 주는 게 더 나을듯합니다.
한국을 사랑하고, 내 남편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니 행복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