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최악의 해킹사태 해결은 결국 관료의 인식과 정책의 문제다
특별기고/최악의 해킹사태 해결은 결국 관료의 인식과 정책의 문제다
  • 시정일보
  • 승인 2013.03.2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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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동대문문화원장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은 전 재산을 털어 천하의 재능 있는 자들을 불러 모았는데 그 중에는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하찮게 생각했던 도둑과 성대모사의 재주꾼이 맹상군을 위기에서 구해낸 이야기는 유명하기도 하지만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맹상군이 사신의 임무를 띠고 진나라에 갔다가 모함에 빠져 옥에 갇히게 되었고 진나라 왕이 총애하는 후궁에게 뇌물을 바치면 풀려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후궁은 흰 여우 가죽으로 만든 옷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것은 고가의 진귀한 옷이었기에 맹상군이 진나라에 도착하자마자 그 옷을 진나라 왕에게 예물로 바쳐 버려 다시 구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맹상군의 수행원 중 말석에 끼어있던 개도둑 출신의 식객이 그 옷을 구해오겠다고 나섰다. 개도둑은 그날 밤 왕궁 창고에서 흰 여우 가죽옷을 훔쳐냈고 그 옷을 받은 후궁이 진나라 왕을 졸라 맹상군은 풀려나게 되었다. 맹상군이 서둘러 진나라를 탈출하는데 함곡관에 닿았을 때는 한밤중이었고 날이 새고 닭이 울어야 관문이 열리고 관문이 열려야 진나라를 벗어날 수 있었다. 위기에서 맹상군을 구해낸 것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이었다. 그 식객이 닭 우는 소리를 내자 근처에 있는 닭들이 따라 울었고 문지기는 새벽인 줄 알고 관문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이때 생겨난 말이 계명구도(鷄鳴狗盜)로 우리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재주도 크게 쓰일 때가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

최근 방송사와 금융기관의 컴퓨터가 해킹을 당한 큰 사건이 있었다. 그야말로 세계적인 IT강국이라는 자부심에 먹칠을 하는 망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사건을 보면서 컴퓨터를 잘 모르는 필자이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우리는 너무 소비 양적기준으로만 IT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부풀어있지 않았나 하는 자성과 함께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조속히 재발방지의 해법을 찾아야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1997년도에 해커부대를 창설하여 5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해킹전문가를 양성했으며, 북한은 1990년대 후반부터 약 3000여명의 전문가를 양성하였다. 미국도 2만명 이상의 전문가가 있으며, 일본 역시 2000년대 초반에 사이버부대를 창설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적 IT강국이라는 우리나라는 겨우 200~300명 정도라고 이번에 우리의 허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앞에서도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이야기를 하였지만 비록 범법자라 할지라도 재주가 뛰어난 전문가를 정부에서 구제하여 선의의 전문가로 양성한 사례는 또 있다.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취미 이프 유캔(catch me if you can)은 사기꾼이며 위조 지폐범이었던 주인공이 죗값을 치르고 난 후 정부의 위조지폐감식 전문가로 채용되었던 실화를 극화한 것이다. 만약에 우리나라였다면 가능했을까? 아니다. 100% 아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전문성보다는 학벌과 인맥 그리고 배경을 우선으로 하는 풍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컴퓨터해킹 사고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기업은 물론 심지어 정부의 전산망까지 해킹당한 일이 보도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대부분 고교생 정도 청소년들의 소행이었다는 것이며 이들의 재능은 해킹 등의 범죄를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는 반증이다. 그들을 입건하여 벌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선의의 해커(화이트 해커)로 양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들 뿐 아니라 선의의 전문해커들도 우리사회에서는 적응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관료사회의 고정관념과 경직성, 보신주의, 그리고 젊은 세대와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보다는 시스템에 가두고 획일화하려는 개념의 문제와 해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등 때문이라고 한다.

산업통상지원부와 정보기술연구원에서 차세대보안리더라는 이름으로 6개 분야에 화이트해커 1명씩 6명을 선발하여 2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해외기관교육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냥 봐도 또 이벤트성 대책의 냄새가 난다. 이런 일회성 행사보다는 전문가로 인정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여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두 번 다시 망신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IT강국이라는 수식어다운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전산망은 국가의 안보와 사회전체의 시스템은 물론 우리의 생활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기술개발에 대한 자화자찬과 사용의 편리함에 앞서 오작동과 해킹으로 인한 재앙을 먼저 생각해야한다. 그리고 이는 국민의 모두의 인식에 앞서 정책을 입안하는 고위 관료님들의 인식이 앞서야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