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기러기 아빠의 꿈
시정칼럼/기러기 아빠의 꿈
  • 시정일보
  • 승인 2013.05.2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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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기러기 아빠’가 심각한 사회문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러기는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서 평생 반려의 상징이며, 새끼들을 위해 먼 거리 여행도 서슴치 않는 사랑스런 철새의 대명사이다. 오늘날 ‘기러기 가족’은 자녀교육을 위해 부부가 헤어져 사는 것으로 해석되며,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서 언급한 것에서 시작한다.
5월13일 ‘기러기 아빠, 희망을 향해 날다’라는 주제로 문정림 국회의원(새누리당)이 간담회를 가졌는데 참석자 대다수는 자녀의 조기유학이 부부의 원하는 바가 절묘하게 결합된 명분이 있는 선택이라고 했다. 남편은 자녀의 교육을 전적으로 부인이 전담해 주길 바라고, 부인은 다양한 스트레스(시집, 가족부양 등)로부터 합법적으로 해방될 수 있는 창구가 바로 ‘자녀의 조기 유학’이라는 것이다.

통계청 ‘2010년 인구주택 총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국내외 다른 지역에 가족이 있는 가구는 245만1000가구로, 전체 가구(1733만9000가구)의 14.1%에 달하고 있으며, 이중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기러기 가구’는 115만 가구에 달한다. 이는 전체 결혼가구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10년 전인 2005년 5.9%에 비해 곱절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기러기 아빠 문제가 개인 해결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진화된 이유는 115만 기러기 가구ㆍ50만명 기러기 아빠(2013년 통계청 추산)가 양산되는 등 ‘기러기 현상’을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 가구가 늘어나는 만큼 병폐도 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국내에 홀로 남겨진 ‘기러기 아빠들’이다. 그들은 매월 자녀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느라 빠듯한 삶을 산다. 특히 전문가들은 △체중 감소ㆍ음주 증가 등의 신체적 변화 △외로움ㆍ소외감 등 심리적 변화 △경제적 부담의 증가 △주변 관계망 축소 등의 사회적 변화 △존재감 하락 등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거남의 정신건강지표의 불량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가족과 같이 있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지만, 그렇지 못한 ‘기러기 아빠’들이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은 없을까. 자녀의 행복과 밝은 미래를 위해서 아빠들은 ‘기러기’ 아닌 ‘개미’아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정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자녀의 학습을 지원하는 것이 과연 ‘자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또한 자신의 경제력을 무시하고 남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정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무릅써야 할 위험인가. 무릇 행복은 자녀의 웃음소리가 집안에 울리고, 같이 티격태격하며 자녀가 올바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것이 아닐까. 행복은 가까이 있다.

어쨌든 기간도 목적도 불분명한 영어교육을 위한 자녀교육으로 기러기 아빠의 일방적 희생ㆍ고통이 너무 모호하고 막연하다.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교육문제를 개별 가족이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가족관계를 희생하고 있으며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족 정서 환경을 희생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전국 광역시ㆍ도와 시ㆍ군ㆍ구 149곳에서 운영 중인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도 기러기 가족으로 살기로 결정한 후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부모 교육 및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기러기 아빠로 인한 가정 붕괴가 국가와 사회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점을 정부와 국회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기러기 아빠의 문제는 한 가정의 문제로 치부돼서는 안 되며 우리 사회가 함께 치유해야 할 사회적 사안으로 인식해야 한다.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