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박근혜 대통령이 머리를 숙였다
시정칼럼/박근혜 대통령이 머리를 숙였다
  • 시정일보
  • 승인 2013.10.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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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기초연금제도 도입과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을 놓고 요새 논쟁이 매우 뜨겁다.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에게 매월 2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지난해 대선 직전 TV토론에서 진솔하게 약속했었다. 당시의 이 공약은 모든 국민들에게는 솔깃한 정책이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노인들과 장애인들은 노골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까지 했었다. 대선 당시 전체 유권자의 20.8%(842만8748명)에 달한 60대 유권자 중 72.3%(방송 3사, 코리아리서치, 미디어리서치, TNS 출구조사 결과)가 박 대통령을 지지했었다. 그런데 공약이 공약답지 않게 축소되자 그들은 크게 실망을 아니 분노를 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26일 기초연금 공약 파기 논란으로 비판여론이 확산되자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 언급은 대국민 담화가 아닌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을 상대로 간접 사과한 것이다. 이어 27일에도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관계자들과의 오찬에서 “저도 참 안타깝다”다고 거듭 사과했다.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대국민 사과인지 아니면 지난해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사과인지는 불분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기초연금 공약 파기를 두고 ‘의도적 공약파기’, ‘공작정치’, ‘사전 기획설’ 등을 주장하는 야권의 비판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도 반발하고 나섰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복지공약이었던 기초연금 정부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10만∼20만원을 차등 지급하는 식으로 확정됐다. 이들은 국민연금 수령액이 많을수록 기초연금은 적게 받는다.

어쨌든 재정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기초연금 제도의 안정적 운용을 생각하면 형편이 넉넉한 노인에게까지 20만원을 주는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복지 욕구가 강해져 돈을 쓸 곳이 많아지고, 특히 초고령화 사회가 임박했지만 경제여건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2014년에만 2조7000억 원이 더 투입되는 등 4년간 평균 4조원 이상을 더 투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초연금(기존 기초노령연금) 정부안이 지방재정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여 지방자치단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무상보육과 관련해 양육수당과 보육료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마당에 설상가상으로 2014년 7월부터 기초연금 시행에 따른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초연금을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2014년 기준 국비는 5조2000억원, 지방비는 1조 8000억원이 소요된다. 정부가 지자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앞으로 10년에 걸쳐 지방교부금 1조 5000억원을 더 주기로 했지만 이 돈으로 기초연금 부담을 충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제라도 대선 당시 국민과 약속했던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정부안으로 확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초연금 재원문제 역시 공약 후퇴를 위한 핑계가 아니라, 공약이행을 위한 방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노후빈곤을 예방하고 기본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든든한 기초연금 도입을 위한 형평성 있는 증세라면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기초연금이 어떻게 도입되느냐에 따라 대량 노후빈곤 양상국가로 갈 것인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을 지키며 노후를 보낼 수 있는지가 결정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요구와 국민적 기대를 끝내 저버린다면, 이에 대한 혹독한 정치적 책임과 대가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