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비현실적’이었던 기초공천 폐지론
<창간기획> ‘비현실적’이었던 기초공천 폐지론
  • 문명혜
  • 승인 2014.05.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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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시리즈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파동

대한민국 국호를 사용한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였던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5월, 향후 지방자치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을 내다 보며 지면을 펼치기 시작했던 본지의 지령이 벌써 26년에 이르렀다.

본지는 지방자치 발전이 대한민국 국운융성의 주요 재원이 될 것임을 확신하며 지난 26년 동안 한결같이 그에 부합하는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행보를 지속할 것을 독자 여러분께 약속드린다.

창간 기념일을 즈음해 매년 어김없이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현안을 집중 조명해 온 것은 본지의 창간목적을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으며, 올해도 네 번에 걸친 연속 기획물로 독자들과 현안해결을 함께 고민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지려 한다.

네 개의 주제는 기초선거 공천문제와 재정위기, 선거문화 선진화, 복지 등으로, 이번호에서는 지난 1년여동안 정치판을 뜨겁게 달궈왔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배제문제를 짚어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정략과 반전 등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기초공천 폐지 파동은 2010년 10월부터 시작돼 올 4월까지 꼬박 1년 6개월이 소요된 대하드라마였다.
시간을 되돌려 1년 6개월전으로 돌아가보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전국 이슈화의 첫걸음은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있기 두 달여 전인 2012년 10월8일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신인’ 안철수 후보가 뗏음을 알게 된다.

대선 후보들의 정략적 선택

정쟁과 정치과잉을 지양하는 것이 정치개혁의 요체임을 믿고 있던 안철수 후보가 기초의원 공천폐지를 역설한 후 당시 빅3 였던 문재인 후보가 공천폐지 열차에 탑승했고, 박근혜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기초의원 뿐만 아니라 시군구 단체장의 공천까지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여론 추세로 볼 때 세 명 중 한 사람은 틀림없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될 유력 후보들이 입을 모아 기초선거 공천폐지 대열에 합류한 것은 당시의 여론 때문이었다.

자신의 정치역정에 정점을 찍게 될 가장 중요한 싸움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여론을 거스를 수 없었던 후보들은 60~70%를 넘나들던 기초선거 공천폐지 반대편에 설 수 없었던 것이고 결과적으로 당시 후보들의 태도는 정략적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 선거는 그동안 정치판에서 가장 오랫동안 풍상을 겪으며 ‘선거여왕’의 명성을 얻은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1년동안 기초선거 공천폐지 이슈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으며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이 문제가 필연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일정 때문이었다.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담는 <공직선거법>을 빨리 바꾸라는 빗발치는 여론에 등 떠밀린 국회는 작년말 ‘일단’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여론에 호응하는 듯 했지만 정개특위 표정에서는 1년전 공약을 이행하려는 적극성은 읽혀지지 않았고 일부 언론에서는 “기초선거 공천폐지 물건너 갔다”는 예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올해 들면서 대한민국 정계의 최대지분을 갖고 있는 새누리당이 공천폐지 입법화의 마감시한이 임박해오자 슬그머니 발을 빼고 최대야당 민주당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비공식적으로’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원점회귀로 종결될 것으로 보였다.

민주, 안철수 손잡으며 반전국면

3월2일에 대한민국 정치의 역동성을 증명하는 작지 않은 드라마가 펼쳐졌다. 많은 국민들이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오전 10시경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이 통합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발표되고 기초 무공천을 천명한 것으로, 죽은 줄만 알았던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관’을 박차고 나왔다.

최대야당의 50% 지분을 약속받고 통합세력의 공동대표가 된 안 의원은 힘을 얻어 여당과 박 대통령에게 무공천 약속을 지키라고 공세를 취하며 국민들에게 다가 올 지방선거에서 약속이행과 불이행을 대비시키는 선전전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

3월30일 박 대통령에게 기초공천 폐지 등 현안타결을 위한 회동을 제안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다음날인 3월31일 김한길 공동대표와 함께 민주당 출신 서울시 현역 구청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실질적인 민주당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게 했던 민주당 출신 서울시 구청장들과의 간담회는 기초선거 무공천 파동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표면적으론 공천폐지 반대론을 잠재운 만남이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문을 걸고 이어진 비공개회의에서 구청장들은 ‘전멸’이라는 암시로 안 대표를 흔들었고 간담회의 임팩트가 확인된 것은 일주일 후였다.
한달 전까지는 라이벌이었지만 합당을 통해 ‘식구’로 바뀐 지방선거 용사들의 우려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우려가 현실로 바뀌게 될 때 안 대표가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은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할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물론 공천유지로의 회귀도 쉽지 않은 게 국민과의 약속 이행을 누차 강조했고, 민주당과의 신당 창당 명분도 기초선거 공천폐지 의견 일치였으니 안대표는 딜레마의 수렁에 빠져버린 셈이 돼 버렸다.
며칠동안 속을 끓이던 안 대표는 4월4일 누구도 상상치 못하던 파격행보를 보여줬다.
제1야당의 대표로 청와대를 기습 방문해 기초선거 공천폐지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했지만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하자 3일 후인 4월7일까지 답을 달라는 말을 남기고 빈 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측의 묵묵부답에 ‘회군’

야당 대표의 방문을 나몰라라 할 수도 없고 원하는 답을 줄 수도 없었던 청와대측은 데드라인 당일이 되자 정무수석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을 방문케 하는 의전을 갖추긴 했지만 “기초공천 문제는 여야가 국회에서 해결하라”는 박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는데 안 대표의 바람과는 상반되는 답신이었다.

청와대측의 반응에 크게 실망한 안 대표에게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고 단 하루만에 기초공천 폐지 여부를 국민과 당원들의 뜻을 묻고 그에 따르겠다는 중대발표를 감행하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이 ‘회군’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결정이었다.

국민여론 50%, 당원투표 50%를 합산한 투표결과는 안 대표의 신념과는 다르게 7% 차이로 공천유지론이 우세했는데 특이한 것은 수년간 공천폐지 쪽에 압도적 우위를 보였던 국민여론이 어찌된 일인지 불과 0.5% 차이밖에 나지 않은 것이다.

국민과 당원의 뜻을 묻는 투표는 설문의 표현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는데 새누리당과의 형평성을 명시함으로써 공천유지에 무게가 실려 있었음이 추후에 밝혀짐으로써 의문이 일정부분 풀렸다.

또 다른 해석은 무공천으로 선거를 치를 경우 패배가 자명할 것이라는 전통적 야당 지지층의 전략적 선택이 국민여론에 반영됐다는 것으로,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는 투표 다음날인 4월10일 오전에 발표됐는데 수개월동안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기초선거 공천폐지 파동은 기존질서 ‘유지’로 결론이 났다.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던 ‘기형적 선거’는 회피됐지만 그 사이에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은 바뀌어졌다.
전통적 지방선거 강자인 제1야당이 몸집을 불림으로써 지방선거의 흥행성이 높아진 것이다.
文明惠 기자 / myong5114@daum.net

기자가 본 기초선거 공천폐지 파동

폐지론의 불투명한 미래


기초선거 공천폐지 파동은 추억의 명화 ‘혹성탈출’의 엔딩 신처럼 허무한 결말을 맺었다. 미지의 혹성에서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보고 인간을 돕다가 힘에 밀려 혹성탈출을 감행하는 순간 바닷가에서 파괴된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그곳이 미래의 지구라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는 라스트 신과 같이 원점회귀 되는 결말이 비슷해 보인다.

이처럼 허무한 결말은 정당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두터운 허리층과 아래쪽 넓은 부분을 상당부분 점하고 있는 지방권력을 정당으로부터 분리해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하고 그에 대한 답 또한 금년 4월10일 안철수 대표의 공식적인 ‘회군’에서 찾을 수 있다.

기초선거 공천폐지론에 상당한 선의가 담겨져 있는 건 분명하다. 정당조직의 일원으로서 정쟁에 나설 수밖에 없고 자리보전을 위해 중앙의 눈치를 봐야하는 족쇄가 지방자치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어서 상대적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기초선거 공천폐지론은 정당들의 정치적 활동을 보장해 대의 민주주의를 유지케 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운영시스템에 제한을 가하는 요소가 있어 폐지반대론에 명분을 주는가 하면 관련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이미 헌법불일치 판정을 내린바 있어 ‘기술적 난항’이 예상되기도 한다.

입법부가 관련법을 정비하면서 정당은 기초선거에서 후보를 낼 수 없다는 강제적 조항을 만든다 해도 불복하는 누군가가 헌법재판소에 달려가게 되면 결과는 누구도 장담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파동의 주인공은 이론의 여지없이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새로운 정치인을 찾는 젊은층의 폭발적 지지를 등에 업고 데뷔한 안철수 대표는 정치과잉과 정쟁 지양이 새정치임을 주장하면서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자신의 첫 번째 정치적 과업으로 정해 최소 수개월동안 백방으로 뛰어 다니지만 결국 그의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그의 신념은 일단 실패했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실패자가 아니다.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매개로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위기감에 젖어있던 60년 전통야당 대표로 탄탄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한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시각에 따라 파동의 최대의 피해자도 안 대표이고, 수혜자도 안 대표라는 해석이 가능한데, 정치란 참 오묘한 세계라는 게 기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기초선거 공천폐지론은 정당들이 스스로 공천을 포기하거나 국민들의 결집된 압박에 정치권이 굴복하는 길 외엔 달리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래가 불투명하다.

입법주체인 국회의원들의 종가인 정당들의 이익에 반하고, ‘선구자’ 역시 주류에 편입됨으로써 더 이상의 동력이 상실된 것도 폐지론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文明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