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두 토끼 잡은 ‘노원구 궁중문화제’
<기자수첩>두 토끼 잡은 ‘노원구 궁중문화제’
  • 李周映
  • 승인 2015.04.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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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가치가 있다.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역사를 발굴해 새로이 알리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내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 18일 성대하게 치러진 ‘노원구 궁중문화제’는 역사적 의미와 자긍심 고취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행사인 듯 싶다.

노원 궁중문화제의 하이라이트였던 어가행렬은 태강릉에서 초안산 비석골 근린공원까지 이어졌다.

구는 이 어가행렬의 역사적 타당성을 위해 전문가의 역사고증에서부터 지역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민담 하나 하나까지 모두 조사했다.

노원 지역은 조선시대의 능행길이었다. 돈화문을 나온 행렬이 흥인문을 나와 제기동을 지나서 안암동 고려대학교, 석관동(돌곶이), 월릉교를 건너 비선골을 지나 태릉과 강릉, 동구릉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다.

구는 이에 대한 근거로 서울여대 앞에 말이 쉬었다 가는 ‘하마비’가 있고, 태릉입구에는 임금이 쉬어가는 ‘주정소’도 있었다는 자료도 찾아냈다. 위의 사료들이, 이 거리가 능행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서울시립대와 서울여대 교수의 자문도 받았다.

하지만 구는 왜 어가행렬길이 초안산까지 연결돼야 하는지에 대해 벽에 부딪쳤다. 구는 다시 한번 역사자료와 민담을 찾아 나섰다.

4대 임금을 모셨던 김처선은 연산군에게 충언을 하다가 능지처참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월계동 초안산 내시분묘가 모인 곳에 수습돼 묻혀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능행을 다녀오던 임금에게 신하가 꿈에 김처선이 나타났다고 하자 임금은 친히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처선을 위로하기 위해 초안산에 들러 술 한 잔을 따라 주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는 것도 확인했다.

구는 이렇게 두발로 뛰며 엮은 스토리로 어가행렬의 외형만을 보여주는 행사에서 당시 임금이 직접 지나갔던 길을 그대로 재현한 어가행렬을 태강릉에서부터 초안산까지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왕이 다녔던 길을 직접 다시 걸어 보고, 그 길에 얽힌 역사 이야기와 지금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민담 등 지역주민의 참여로 엮어낸 노원구 궁중문화제는 문화를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고, 지금을 사는 우리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뿐 아니라 모두가 함께라는 또 다른 의미를 더하는 뜻 깊은 마당이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