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시정칼럼>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시정일보
  • 승인 2015.06.0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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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증가하는 ‘노인 복지 비용’ 문제를 놓고 정부가 고심하는 사이, 대한노인회가 5월26일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는 대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노인빈곤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복지 혜택의 당사자인 노인들이 직접 공론화에 나섰다는 점이다.

하기야 요즘 65세가 되었다고 노인이라고 여기는 일은 자타 불문하고 거의 없다. 70세는 되어야 겨우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2014년 정부가 노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노인을 70세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조사 대상자 10명 중 8명꼴로, 2004년의 55.8%보다 크게 늘어났다.

결국 대한노인회는 이를 근거로 “노인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심정에서 복지 혜택을 받을 노인 나이를 조정하도록 공론화 길을 터주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노인이라고 지각하고 있는 노인은 70세가 아니다. 노인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측면을 고려해서 규정해야 한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노인의 연령 선은 사회적인 활동 여부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특히 은퇴, 정년, 사회참여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에 불과한 단순한 나이를 가지고 일률적으로 노인복지 혜택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대한노인회는 노인의 기준을 70세로 하자는 중요한 이유는 국가재정이 어려우니 65~69세 때는 국민연금 기초연금과 지하철 무료이용 등을 양보하자는 내용인데, 이처럼 노인세대가 먼저 보장된 복지 혜택을 줄이겠다고 양보한 것은 유례가 없다. 그래서 관변 단체인 대한노인회가 정부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이제부터 노노(老老) 갈등은 물론 세대 간의 불화도 예상할 수 있다. 지금의 노인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노인이 결단하고 동의해야 할 문제이다.

하기야 이해 당사자의 결단과 동의가 없으면 이러한 종류의 개혁은 거의 불가능하다. 반쪽의 개혁조차 어렵고, 그마저도 지난한 과정이 따른다는 사실을 최근 공무원연금개혁에서 우리는 잘 보고 있다. 유럽에서 65세를 기준으로 노령연금 개념이 생긴 것이 1800년대 말, 기대수명이 50세 정도였을 때이니 거의 10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의 모든 국가에서 노인복지의 기준은 65세에 머무르고 있다. 세대 간의 합의, 전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들의 복지 혜택은 다양하다. 노인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2015년 10조원이나 되며, 노인이 매년 급증하면서 2020년 13조7000억 원 등 매년 예산이 소요된다. 지하철과 전철은 1984년부터 65세 이상 노인들이 무료로 이용하고 있고, 2014년에는 연인원 7800만명에 달해 지자체마다 적자 누적인 무임승차 비용을 정부가 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밖에 65세 이상 노인들은 고궁·박물관·공원 등 공공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거나, 이용 요금을 할인받고 있다. 현재 65세 노인은 665만명으로 전체 국민의 13.1%를 차지하고 있으나, 2030년에는 4명 중 한 명(24.5%)꼴로 노인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예산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복지제도 역시 지난 세기 빈곤과 질병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 노인세대는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위하여 땀 흘려 헌신한 것에 비하면 시혜가 아닌 보상은 빈약한 편이다. 정작 국가발전에 기여해 온 노인세대는 소외되고 어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통합을 위하여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선 연령기준으로 복지 수혜자를 책정하는 것보다 노인 대상 캠페인을 벌려 나가는 것도 바람직하다. 복지제도는 대부분 정치적인 포풀리즘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정책을 수정하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노인들의 출퇴근시간 지하철, 전철 이용 제한이라든가, 아니면 기초연금처럼 소득 하위 70%에게만 이용권을 주는 방법도 있다. 선진국의 사례다.

대한노인회가 ‘노인 70세’ 공론화의 물꼬가 노인빈곤 심화 그리고 노인 복지축소의 우려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되어 노인의 가치와 역할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어르신들의 자식 걱정, 나라 걱정을 하는 투정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이제부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노인복지에 관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과감하게 노인복지를 정책 순위의 상위에 올려놔 보자. 노인에 대한 투자는 절대 낭비가 아니다. 가령 정부가 노인복지에 많은 예산을 책정했다고 해서 잘못했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닥칠 노후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험이기 때문이다.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