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남성의 요리 전성시대를 보는 사회학
<특별기고> 남성의 요리 전성시대를 보는 사회학
  • 시정일보
  • 승인 2015.07.0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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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 시인,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시정일보]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가 있고 아버지 형제가 있다. 수많은 시와 소설은 밥에 관한 소재가 유난히 많다.

시인 김소월도 밥에 관한 시가 있다. 소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최부자 집을 드나드는 객들에게 밥을 거르지 않게 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느 가수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안부를 묻는 소재의 노래를 부른다. ‘밥은 먹었느냐' 어머니의 애잔한 자식사랑 목소리가 들린다. 시청자나 방청객은 모두가 눈시울을 적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과 어머니에 관한 인식은 공식적으로 따라 다닌다. 사람들은 신세를 지면 ‘밥 한 끼 해요'라고 인사를 한다. 대접은 최대의 예절이다. 밥을 같이 먹어야만 일이 성사된다는 공식이 있다. 한국인에겐 밥에 대한 인식은 유다르다. 관광지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양한 식당들이 맛을 뽐낸다. 경치 좋은 해운대나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외국인들을 접하는 명동만 해도 그렇다. 식당과 길거리의 먹거리가 불야성이다.

영국엔 ‘봄모스’라는 해운대 같은 관광지가 있다. 런던에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해안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요트가 잔잔한 바다에 정박되어 있다. 여기가 천국인가 하는 정도의 그림 같다. 넓은 백사장 주변에 식당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입구에 편의점이 하나 있고 중간에 간이 음료수를 파는 곳이 전부다. 우리의 해운대나 인천의 바닷가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식당이 없다는 것은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두고 문화의 차이라고 할까. 유럽인들에게 관광과 먹거리는 별개일까. 의문이 간다.

요즘 예능전성시대다. 과거 맛집 정보를 소개하던 모습을 거쳐서 ‘먹방'을 거쳐 ‘쿡방'(먹방 +방송)으로 진화하고 있다. 남자 출연자들이 직접 삼시세끼를 지어먹는 콘셉트로 ‘쿡방'이 인기다. ‘삼시세끼’는 웬만한 예능프로를 능가했다. 2015년 백상대상을 받기도 했다. 예능 PD가 수상하는 방송역사를 새로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신동엽, 성시경, 차승원 같은 연예인이 시쳇말로 대박이다. 스타셰프 샘킴, 최현석, 백종원도 인기인의 대열에 낀다.

다양한 요리에 도전, 여성은 물론 남성시청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인들 정서엔 먹고 산다는 표현이 행복의 조건처럼 되어 있다. 집안의 정도를 말할 때도 ‘먹고 산다'고 한다. 신랑감의 조건에서도 처자식 굶기지는 않게 생겼다. 긍정의 표현이다. 그간의 안부를 묻노라면, ‘굶지는 않고 지냅니다' 인사를 건낸다. 모든 것들이 먹는 것과 직결된다.

흘러간 명화 중에 ‘산불'이라는 영화가 있다. 전쟁으로 인하여 굶기가 일수인 시대물이다. 여자 주인공은 자식들을 먹이기 위하여 감자 몇 개에 몸을 허락한다. 그때는 그랬다. 먹는다는 것은 생존이다. 바야흐로 경제성장과 함께 물질의 풍요 속에 먹는다는 것은 우아한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멋진 차승원이 나와서 제육 두루치기를 요리 하는 것은 배만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맛좋은 레시피에 맛깔 나는 엄마 표 손맛의 요리를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다.

음식을 볶고 끓이는 남성상. 가정의 풍경을 가족의 화합을 만드는 매력으로 연결된다.

요리 잘하는 남성들이 각광 받는 것은 사회인식의 큰 변화다. 과거의 남성상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금기 시 되었다. 그러나 요리를 잘하는 것은 친근감과 로맨틱한 남성상의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먹는 것이 한이 된 민족성, 남존여비시대의 역사관, 삐뚤어진 시대상이 부단히 변모해 왔다. 남자들의 여성을 사랑하는 우아한 변화. 급격하게 달라지는 남성상에 대한 요구가 요리하는 남자로 반영된다.

과거의 엄하고 가부장적인 가장에서 다정하고 친구 같은 아버지로 변하고 있다. 1980년대 학번 이후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기성세대가 40~50대가 되면서 벌어지는 사회현상이다.

이제는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삶의 질이다.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멋드러진 분위기와 눈맛, 입맛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관계의 중요성까지 곁들어진다. 기타를 잘 치는 남성보다 앞치마를 두르고 지지고 볶는 셰프상. 남자의 전성시대다. 먹는 것에 한이 된 세대들의 사회학적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

이제 남성이 만드는 음식은 과학이고 힐링이다. 그리고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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