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휴가에 얽힌 불편한 진실
<기자수첩>휴가에 얽힌 불편한 진실
  • 윤종철
  • 승인 2015.08.0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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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철 기자 sijung1988@naver.com
   
 

[시정일보]일에 보람을 느끼고 신나게 일하던 사람이 돌연히 일에 흥미를 잃고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고 한다. 증세가 심해지면 자살까지도 시도하는데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가 그 원인이다.

평균 근로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의 경우는 당연히 심각한 상태로 10명 중 8명 이상이 이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알맞은 휴식과 재충전뿐이다. 그러나 ‘휴식’이나 ‘재충전’이라는 개념보다 ‘논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휴가제도 안에서는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치상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한다는 공무원들만 봐도 1인당 평균 21일의 연차휴가를 주고 있지만 실제 사용일수는 절반도 안되는 9.3일에 불과하다고 하니 멀쩡한 사람이 이상할 정도다.

이에 최근 정부는 저조한 연가사용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권장휴가제’와 ‘연가저축제’ 등을 도입했다. 한 지자체 구청장은 직원들의 연가 사용을 촉진하겠다면 솔선수범(?) 2주간의 휴가를 먼저 떠나기도 했다.

‘논다’라는 인식으로 상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경직적인 휴가문화를 개선, ‘연가 혁신’에 나서겠다는 설명이지만 이는 솔직히 생색내기 ‘꼼수’의 냄새가 난다.

공무원들의 연차 사용이 이렇게 저조한 진짜 이유는 처리해야 하는 담당 업무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담당자와 담당업무가 1대 1 구조를 이루면서 담당자가 연가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당장 업무 공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공무 특성상 처리하지 못한 업무는 차곡차곡 쌓이게 되며 이와 연계된 업무의 지연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물며 장기간의 연가는 자신의 업무 부담은 차치하고 주변 상사나 동료들에게 업무가 몰리게 되면서 심적 부담을 안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정부도 모르진 않을 텐데 미사용 연가를 저축해서 장기간 휴가를 보내주겠다니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설상가상으로 기관장으로 하여금 휴가 촉진에 필요하다면 연가보상비를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부의 발상은 생색내기를 넘어 예산을 아끼기 위한 ‘꼼수’로 비쳐진다.

실제로 서울시 자치구만 하더라도 각 자치구마다 각각 10억원 이상의 연가보상비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하니 그리 터무니 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아무런 대책 없이 마냥 휴가만 떠나라고 등 떠밀고 있는 정부가 과연 “질 높은 노동생산성은 일과 휴식ㆍ재충전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의문이다.

대체근무자 없이, 업무 부담을 가지고 억지로 쉬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번아웃 증후군’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