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지방분권이 미래의 정치질서
지방자치, 지방분권이 미래의 정치질서
  • 문명혜
  • 승인 2015.12.3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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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지방자치 현주소/ ①지방자치 20년 성과와 과제
   
 

[시정일보 문명혜 기자] 지방자치 연구자들은 1995년을 매우 특별하고 ‘역사적인’ 해로 기억한다. 5천년 유구한 역사속에서 한결같이 통치의 대상이었던 ‘민’이 주인으로 바뀌는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지역의 행정책임자를 주민들이 선택한다는 의미는 간단치않다. 임명권자인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재신임을 얻기 위해 끝없이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할 필요와 책임이 따르니 지방자치는 진화를 거듭하게 되는 구조를 갖게 된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지 20년이 지났다. 사람으로 치면 주변의 도움없이 스스로 자신의 일가를 이뤄나가야하는 성인이 된 것이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지난 20년동안 무엇을 이뤄왔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본지는 매년초 지방자치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현주소와 비전을 탐색하는 기획물을 연재해 왔다.

올해 선택한 주제는 지난 20년간 우리 지방자치가 거둬온 성과와 과제라는 무거운 담론과 현재 자치단체들이 행하고 있는 사업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뜻깊은 행사를 이어가려 한다.

이번호에서는 먼저 ‘지방자치 20년 성과와 과제’를 싣는다. - 편집자주-

 

사람이 태어나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면 신체와 지적능력이 커지는 것처럼 강산을 두 번 바꿀 수 있는 세월동안 우리의 지방자치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지방자치 20년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다. 현재까지 인류가 실험했던 정치체제 중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자리매김한 민주주의가 1995년 이후에 대한민국 전국 방방곡곡에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민’ 위에 군림하던 관’의 시대 종지부

오랜 역사동안 ‘관’은 언제나 ‘민’ 위에 군림하던 권력이었지만 ‘그날’ 이후 지역의 주인은 주민이 되었고 관은 주민들의 종복이 된 것은 역사상 초유이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지방정부는 주민의 불편사항을 꾸물대지 않고 개선하는 행정서비스 기관이며 수장은 그 기관의 책임자라는 인식이 길지않은 시간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은 4년의 임기를 정하고 공과를 묻는 선거제도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의 역할을 지방정부가 대신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역특성에 맞는 발전방향을 정하고 끝없는 노력을 기울여 풍성한 결실을 맺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가는 수많은 자치단체가 생겨난 것은 지방분권의 커다란 효과다.

지하에 흐르는 맑은 물을 퍼내 전국 생수시장의 강자로 만든 자치단체가 있는가 하면 지역의 특이한 자연지형을 살려 연간 수십만 관광객을 찾게 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탠 사례들은 중앙집권시대에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오랜기간 동안 주민들의 속을 끓여오던 크고 작은 숙원사업들이 거짓말처럼 이뤄진 경우는 수없이 많은데 이는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지방정부와 의회가 손잡고 부단히 움직인 결과다.

수년전부터는 주민들이 사업구상과 예산집행까지 도맡아 하는 ‘주민참여예산제’가 도입돼 전국에 확산될 정도로 주민들의 자치참여 영역이 확대되는 추세가 이어져오고 있다.

“가난구제 나랏님도 못한다”는 옛 말

최근 수년간 복지는 지방정부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전체 예산 중 복지예산이 절반을 넘는 자치단체가 수두룩할 만큼 복지가 지방자치의 최대현안으로 굳어진 것이다.

4년마다 치르는 지방선거의 최대이슈는 보편적 혹은 선택적이냐는 차이가 있을 뿐 무조건 복지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복지비중이 높은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전국을 통털어 굶어죽는 국민이 한 사람이라도 나오게 되면 국가적인 이슈가 되는 나라가 된 것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골목골목을 다니며 숨겨진 빈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지방자치의 힘이 작동한 것이다.

지방행정의 투명성이 높아진 것도 지방자치가 가져다 준 값진 선물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공무원들이 ‘가욋돈’을 챙기는 것을 우리의 문화라고 인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투명성을 자치행정의 주요성과로 인식하는 자치단체장과 예산을 훤히 들여다보는 의회가 생기고부터는 공직부패는 점차로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법령 정비 지방분권의 최대 과제

지방자치 20년이 가져다 준 빛이 한반도 남쪽을 온통 훤하게 밝혀주긴 했지만 결코 만족할 만한 완성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게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지방자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은 30년전에 개정된 헌법의 불완전성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대통령직선제로 권력의 원천이 국민의 손에 있음을 확인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터 놓았지만 권력의 집중을 막는데 미흡한 것이 지방분권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은 법령의 범위안에서 지방자치를 보장하고 있지만 중앙정부가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어 지방의 문제를 지방정부가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만드는 게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 헌법개정이야말로 지방분권의 필수적 과제라고 지적한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극히 제한된 자율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각 지역의 고유한 여건과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고 과거 중앙집권시대의 수직적 효율성이 강조된 ‘강한 집행부와 약한 의회’로 표현되는 단일모델이 전국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렇게 경직된 단일 조직체계는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주민들의 세세한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운영상 실패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국으로 퍼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앞으로 우리의 지방자치는 자치단체의 규모와 정치 문화 등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해당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전략을 서둘러 세우지 않으면 지방자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데 많은 전문가들의 뜻이 모아지고 있다.

지방정부가 획일성을 탈피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권을 제한하는 근거인 지방자치법 제22조(‘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안에서 그 사무에 관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제한 또한 의무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를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학자는 지방자치법 제22조가 지방자치를 불능으로 만드는 위헌적 조항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지방의회 독립성, 전문성 높여야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지방자치 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과제다.

지방의회 사무처의 인사권을 지방의회가 아니라 지자체장이 쥐고 있는 것은 지방의회만 구성하고 단체장은 임명직으로 고수하던 1995년 이전의 왜곡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결과이기 때문에 집행부의 견제기관인 의회의 정상적인 지위와 활용을 위해 의회로 가는 게 옳다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정책보좌관제 도입은 기초의회보다는 광역의원에게 해당되는 과제로, 시ㆍ도의 의정활동 폭과 규모를 고려하면 도입 필요성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기자가 본 대한민국 지방자치 20년

           고도문명국 진입의 견인차

프랑스 헌법 1조에 명시된 “프랑스는 분권으로 이루어진다”로 느낄 수 있듯 지방자치는 고도문명국을 가르는 척도이자 세계적 추세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려지는 초고속 산업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을 이룬 후 파죽지세로 공정한 선거관리체제를 갖추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용이한 ‘탈아시아급’ 민주화에 성공했다.

탈아시아급 민주화의 내용은 수평적 정권교체와 더불어 20년전 1995년 유사이래 처음으로 200개가 넘는 지방정부가 생김으로써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것이 주효한 것이다.

넓지 않은 영토에 촘촘한 도로와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연결된 250개 지방자치단체들은 서로의 장점을 배워가며 빠르게 지방자치 발전을 이뤄왔다.

20년 지방자치가 거둔 최대의 성과는 물샐틈없는 복지망 구축을 꼽을 수 있다.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이 과거사가 된 것은 지방자치 관계자들이 그만큼 오랜 노력과 공을 쏟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20년의 지방자치를 평가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다. 학술적 비평에 능한 학자 그룹은 성과보다는 과제에 무게를 싣고, 정치권은 중앙정치의 간섭에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하며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국민 여론인데 온갖 부작용과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대략 70~80%의 국민들은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데 이는 우리 지방자치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반증이다.

지자제 실시 이후 그 이전에 비해 행정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민원처리 속도는 빨라졌으니 중앙집권시대로의 회귀에 찬성하는 국민은 소수임이 분명하다.

최근 수년동안 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의 복지매칭사업에 매달리느라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드높아진 행정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자치조직권과 입법권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헌법과 법률 개정 없이는 모든 노력이 한계에 부딪힐 것을 잘 알고 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은 키를 쥐고 있는 입법부와 중앙정부, 나아가 국민들에게 지방분권 확대를 목표로 홍보역량을 강화하고 ‘여론전’을 펼쳐 나가고 있다.

아직도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믿지 못하고 분권에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지방분권이야말로 미래의 정치질서라는 게 혜안있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바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러하듯 지방분권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자치의지를 갖고 쟁취해야 하는 가치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