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제가는 자기수양에 달려있어
시청앞/ 제가는 자기수양에 달려있어
  • 시정일보
  • 승인 2016.03.1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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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소위제기가재수기신자)란 人(인)은 之其所親愛而辟焉(지기소친애이벽언)하며 之其所錢惡而辟焉(지기소전오이벽언)하며 之其所畏敬而辟焉(지기소의경이벽언)하며 之其所哀矜而辟焉(지기소애긍이벽언)하며 之其所傲惰而辟焉(지기소오타이벽언)한다.

이 말은 大學(대학)에 나오는 말로써 ‘이른바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자신을 수양하는 것에 달려있으며 사람은 자기가 친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자기가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자기가 어렵게 여기고 경외하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자기가 불쌍히 여기고 가련히 여기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자기가 오만이 여기고 업신여기는 것에 따라 편파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격물·치지로부터 성의·정심을 거쳐 수신에 이르기까지는 개인의 일이며 제가·치국·평천하는 그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의 일이다. 그러나 이는 명목상의 구분일 뿐 실제로는 개인과 사회의 뚜렷한 경계를 지울 수가 없다. 사회에 밝은 덕을 밝히는 첫걸음인 제가 즉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결국 자기수양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는 개인이 모여 이루는 사회의 첫 단계로 오늘날 가족보다는 큰 개념이다. 즉 하나의 가문 또는 나아가 한 씨족이 하나의 나라를 이룬 광범위한 공동체를 말하는 것으로 편의 상 여기서는 집안이라고 했다. 집안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결국 개인의 수양이 중요한데 인간관계의 그릇된 결과가 각 개인의 지나친 아집 또는 집착으로 인한 편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애기했다. 결국 편벽한 태도는 상대의 참다운 면목을 파악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작금에 들어 계모에 의해 버림받은 줄로만 알았던 일곱 살 신원영군이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는데 대해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계모는 평소 원영이가 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때리고 굶기며 학대를 일삼다가 지난해 11월부터는 아이를 차가운 욕실에 가뒀다고 한다.

지난달 1일에도 아이에게 표백제와 찬물을 뿌려댄 계모는 그 다음 날 죽음을 확인하고 열흘간 시신을 베란다에 방치하다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어린 자녀에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지 정말 반인륜적이고도 악질적인 범죄라 아니할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를 아동보호망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것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차제에 정부는 이웃과 학교 등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해 앞으로 제2, 제3의 원영이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