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 상생도시로
단체장칼럼/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 상생도시로
  • 시정일보
  • 승인 2016.04.0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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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지난해부터‘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낯선 단어가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한다.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작가, 음악인, 창작활동인 등 문화예술인이 스튜디오, 공방, 갤러리, 카페 등을 운영하면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으면 상권이 살아난다. 그러면 집주인과 땅주인이 임대료와 땅값을 올리고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소규모 상점과 문화예술인 집단, 그리고 원주민이 쫓겨나게 되는데 이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 후 구도심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주류 유흥업체로 채워진다. 몇 해 지나지 않아 문화와 예술로 채워졌던 공간은 사라지고 치솟던 땅값과 임대료는 반토막이 난다. 이는 1990년대 신촌 상권 몰락의 원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지금도 홍대앞, 서촌, 삼청동, 경리단길에서 지역 상권을 일군 문화예술인이 쫓겨나고 있다. 과욕을 채우길 원하는 사람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결국 죽이고 있는 셈이다.

성동구 성수동에 홍대앞이나 서촌 등지처럼 문화예술인,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면서 상권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상가 임대료가 올라 기존 세입자와 원주민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동구는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지역상권을 파괴할 우려가 있는 업체를 주민이 직접 제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임차인의 대항력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전담 법률?세무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보장받아야할 권리이지만 법과 제도에 대해 잘 몰라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밀려난 영세 소상공인이 임시로 영업할 수 있는 안심상가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건물주와 임차인, 지역주민의 상호신뢰와 연대의식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이를 위해 건물주-임차인간 자율 상생협약 동참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역의 상승된 가치를 임대인뿐만 아니라 문화를 만든 기존 그룹과 지역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나누기 위해 상생협력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지역 주민과 소상공인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유사한 현상이 진행 중인 다른 지자체를 비롯해 여론의 관심도 크다. 서울시는 대학로와 인사동, 성수동 등 6개 지역을 대상으로 장기저리융자를 통한 자산화전략 등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상가임차인 보호조례도 제정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선 성동구의 작은 실험이 언론매체와 타 지자체 사례전파를 통해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성동구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희망의 가능성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이미 ‘임차권 존속 보장제도’를 시행해 임차인 권리를 직·간접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일본은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을 통해 모든 임차인을 약자로 간주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미국 뉴욕시도 최근 임대료 상한선을 제시해 궁극적으로 지역주민과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이 때, 임차인의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대폭 개정 등 관련 법률 개정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더 나아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특별법이 제정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지자체발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작은 가능성이 현실로 정착될 것이다. 우리구는 과거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조례로 제한하고 이 후 법률개정으로 이를 뒷받침됐던 경험이 있다.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의 가치가 높아졌다면 상승된 가치로 얻게 될 이익은 그 공간을 일군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보다는 지역문화를 만들고 높아진 지역의 가치를 공유하는 상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않고, 함께 건강한 황금알을 계속 낳도록 길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예술가, 음악가, 사회혁신가, 소상공인으로서 각자에게 허락된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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