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쓰레기에 갇힌 모자를 구하라”
특명! “쓰레기에 갇힌 모자를 구하라”
  • 정응호
  • 승인 2016.08.1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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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구의1동 저장장애 주민, 끈질긴 설득, 청소ㆍ정리정돈

정신치료 지원 등 새 삶 선물

   
▲ 정리 전 안방의 모습.

[시정일보]광진구 구의1동에 사는 김봉순 씨(여, 60세, 가명)는 남편과 1남1녀가 있었지만, 자신과 아들의 저장장애(호딩, hoarding) 증세 때문에 매일 같이 남편과 부부싸움을 했다. 결국 남편은 5년 전에 가출하고, 직장을 다니던 딸도 그 뒤를 이었다.

저장장애는 강박 때문에 물건이나 쓰레기를 모아 집안 가득 쌓아두고 치우지 못하는 정신장애를 일컫는다. 김 씨는 결혼 후 지금까지 자신이 사용한 물건은 물론, 온갖 종류의 상자와 플라스틱 용기 등을 집안 곳곳에 쌓아뒀다. 김 씨가 거주하는 집은 8년째 보증금 255만원에 월세 28만원으로 임대계약은 이미 종료상태다. 집주인은 “김 씨와 가족이 안타깝지만, 심한 악취와 쓰레기에서 생기는 각종 벌레 때문에 이웃주민들의 원성이 심해져, 4개월째 밀린 월세도 포기하고 최근까지도 퇴거 요청을 했다”고 한다. 광진구가 이들의 저장강박에 대한 원인을 알기 위해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상담을 의뢰한 결과, 정신질환 경계성에 있으며 만성우울증도 있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치료를 거부했다.

지난 2월 김 씨의 사연을 접한 구의1동 주민센터 주민복지팀은 구청 복지정책과 희망나눔팀 통합사례관리에 김 씨의 사연을 전했다. 동 주민센터는 집주인의 사업장까지 찾아가서 설득해, 퇴거를 하지 않고 주거 개선 이후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동의를 받아냈다. 구청 희망나눔팀은 사례관리를 통해 김 씨에게 주거환경 개선 필요성을 설명하고 내부 집수리의 동의를 받아 정리에 들어갔다.

구청과 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처음 김 씨 집을 방문했을 때, 현관 입구부터 방안까지 가득 찬 쓰레기더미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악취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주방 싱크대와 냉장고에는 유효기간이 훨씬 넘은 식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입구부터 쌓인 물건을 하나씩 치우면서 들어간 방안에는 공간이라곤 앉거나 웅크리고 누울 수 있는 정도뿐이었다. 집 전체에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고, 행거에 걸린 옷에는 책 두께만큼의 먼지가 쌓여 있었다. 방안 구석에는 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서류상자 안에는 15년 전부터 모아둔 공과금 영수증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 청소와 정리를 마친 안방의 모습.

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김 씨는 “버릴 수 없어요. 다 쓸모가 있어요. 버리면 죽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쓰레기더미 집안은 그녀에게 전혀 불편함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깨끗한 환경이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줄 뿐이었다.

지난 6월29일, 구청과 동 주민센터, 복지관 직원 11명이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집안을 청소했다. 쓰레기는 2톤 트럭에 가득 찼다. 이어 7월7일 ‘사랑의 집수리’ 도배장판 기사들이 참여해 내부환경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2주 후 다시 찾은 김 씨의 집은 다시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희망나눔팀은 통합사례관리사업비로 내부를 정리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을 지원했지만 김 씨는 자신의 물건은 직접 정리하겠다며 전문가와 함께하는 정리수납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기관 직원들이 수시로 방문하고 전화로 확인하며 정리하는 과정을 지켜봤지만 창문으로 보이는 방안에는 정체모를 박스 투성이였다. 저장장애로 반복된 생활패턴 때문에 청소보다는 유지를 위한 대책이 절실했다.

그러던 지난달 13일, 김 씨는 정리정돈을 한 방안에 아들(30세)이 다시 물건을 쌓아 놓는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어 19일 민관이 다시 모여 청소를 하고, 김 씨와 아들을 설득해 정신치료와 상담을 받게 했다. 이들은 현재 깨끗한 환경에서 쾌적하게 생활하고 있다.

서울동부여성발전센터 수납정리양성과정 담당강사인 라이트라이프 박인선 대표는 “스스로 청소하고 정리하려는 의지에 따라 저장장애인의 삶이 향후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볼 수 있는 사례”라며 “공간활용과 정리정돈은 매우 중요한 주거복지”라고 강조했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복지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의지를 갖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며 “이번 사례처럼 공급자 중심의 복지에서 벗어나 수요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복지정책을 펴서 소외계층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복지도시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응호 기자 / sijung1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