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중용은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있어
시청앞/중용은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있어
  • 시정일보
  • 승인 2017.03.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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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子曰(자왈) 道之不行也(도지불행야)를, 我知之矣(아지지의)로다. 知者過之(지자과지)하며 愚者不及也(우자불급야)니라.

이말은 中庸(중용)에 나오는 말로써 ‘공자가 말하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는 까닭을 내가 알겠도다,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며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이다.

도는 性(성)을 따르는 것이며 또한 중용의 도이다. 중용의 용에 이미 平常(평상)의 뜻이 있듯이 중용은 무슨 고매하고 원대한 곳에 있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 어디에나 있다. 즉 우리가 늘 마주치고 처리하는 일상의 만사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너무 지혜를 믿고 추구하는 까닭에 그저 고매하고 원대한 곳에서 중용을 찾으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은 너무 쉽고 단조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냥 이론적으로만 중용을 따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고와 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현상과 실천을 등한시 여기는 지식인의 폐단을 많이 본다. 중용은 그렇게 먼 것이 아니요. 우리 주위 일상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평범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혜로운 자는 너무 지나친 까닭에 어리석은 자는 너무 모르는 까닭에 중용의 도가 행해지기 어려운 것이다.

작금에 들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형국이라는데 대해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촛불집회를 하는 측은 “탄핵 기각 시 혁명”이란 말이 나오고, 태극기집회 측에선 “탄핵 인용 시 내전”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이토록 정면충돌 양상으로 달리고 있지만 이를 말릴 사람이 없다는 데 그 문제점이 있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명색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국가적 위기를 진정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부추기고 영합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스팔트 위에 앉아 시위대 틈에 끼어 있는 것을 무슨 선거 유세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차기 대통령은 법치를 위협하는 시위대 속에서 앞장섰던 사람들이라면 그들 역시 작금의 국정농단 못지않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사람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해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명시돼 있듯이 대통령의 제1의 의무는 법치 수호다. 그래서 대선주자들이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하고 승복하는 일이 바로 법치의 시작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