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일보 사설/추락하지 않는 곳에 100만 공무원이 있다
시정일보 사설/추락하지 않는 곳에 100만 공무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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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1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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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촛불’의 편인가. 내가 ‘태극기’의 편이라면 촛불을 배반하는 것이 되고 태극기를 배반하면 태극기를 부정하는 것인가. 이러니 어느 편인가를 밝히라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인가. 가족도 어머니와 딸자식 간에 ‘촛불’과 ‘태극기’의 불편한 의견이 대립되는 현실이다.

이 참담함에서도 확실하고 믿음직스러운 구석이 있다. 100만 공무원이다. 기존 판도를 재편성하는 차기정권창출 전략이 난무해도 공무원은 변함없이 공고하게 업무를 수행한다.

공무원을 대표하는 황교안 대통령권한도 성실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람이 기울어진 상태로 보면 기울기로 보이는 법이다. 난세에 기준을 잡고 추락하지 않는 날개를 펼치는 황 대행에게 박수를 보낸다. 서울시청을 들러도 공무원의 일상은 매우 친절하고 웃는 모습으로 시민을 대한다. 박원순 시장이 자의든 타의든 대통령을 출마하지 않겠다고 도중하차한 것도 서울 시민에게는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몇몇 단체장이 대권출마에 선언한다. 업무공백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천만 시민의 민복을 책임지는 박원순 시장이 빠른 결정과 함께 시정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다. 시중에는 공무원 사회가 공황상태라고 말도 한다. 그러한 비판을 하는 사람은 최근 공공기관을 들러보지 않는 추상이다. 공무원의 수장이며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흔들리고 헌재의 탄핵을 받고도 승복을 하지 않는 매우 불편한 현실이다. 부정의 시선으로 보면 추락하는 정부다. 그러나 100만 공무원이 추락하는 곳에 굳건하게 하얀 날개를 펴고 지키고 있다. 본래 조악하거나 허약한 것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좌우로 치우친다. 촛불과 태극기의 거리에서 성(聖)과 속(俗)이 뒤엉켜 욕망의 분화구가 돼버리면 그것은 문명국이 아니다. 불 꺼진 아프리카의 원주민이 되고 만다. 행정기관의 중심을 지키는 100만 공무원이 있기에 혼돈과 과격한 목소리가 시가지를 흔들어도 아침은 맑게 다시 열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100만 공무원의 든든한 태도를 수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 들어온 외신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전혀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최고 리더의 성찰만이 필요하다. 탄핵을 받고도 반성이 없다. 반성이 없는 자에게 비서(秘書) 조를 편성하겠다는 현역 국회의원의 자세도 문제다. 욕망에는 종말이 없다. 욕망에는 회개가 없다. 그들은 국민의 절규도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선(善)을 악(惡)으로 몰아내는 방식의 소유자다. 차라리 은밀성을 가지고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

만 공무원의 급여와 업무의 시간은 늘 쪼들림의 연속이다. 국회의원의 급여와 그들이 누리는 것들은 보통의 수준을 넘는다. 민심을 듣는 귀는 고아가 돼 떠돌고 있다. 권력은 투쟁의 산물이 되고 나뒹구는 쓰레기와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100만 공무원이 날개를 펴고 추락하는 것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다.

존재와 가치를 지키고 구별하는 것은 통제행위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100만 공무원이 불가능 쪽에 가까운 복잡한 현실을 잘 지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