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욕정에 한번이라도 빠지면 만길 구렁텅이로 떨어져
시청앞/ 욕정에 한번이라도 빠지면 만길 구렁텅이로 떨어져
  • 시정일보
  • 승인 2018.03.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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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欲路上事(욕로상사)는 毋樂其便(무락기변)하여 而姑爲染指(이고위염지)하라 一染指(일염지)하면 便深入萬  (변심입만인)하리라 理路上事(이로상사)는 毋憚其難(무탄기난)하여 而稍爲退步(이초위퇴보)하라 一退步(일퇴보)하면 便遠隔千山(변원격천산)하리라.

이 말은 菜根譚(채근담)에 나오는 말로써 욕정에 관한 일은 쉽게 즐길 수 있지만 잠시라도 가까이 하지 말라. 한 번이라도 가까이 하면 만길 구렁으로 떨어지고 만다. 도리에 관한 일은 어렵다 하더라도 뒤로 물러서지 말라. 한번 물러서면 천굽이의 산처럼 멀어진다는 의미이다.

베르나노스의 작품 <어떤 시골 신부의 수기>에서 욕정은 인류의 옆구리에 입을 벌리고 있는 신비한 상처라고 했다. 인간에게만 있는 욕정과 양성을 접근시키는 욕망을 혼동하는 것은 종기 자체와 종기가 나서 무서우리만큼 모양이 흉하게 돼 모양을 닮게 되는 수가 있는 혼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사회는 부끄러운 상처를 감추기 위하여 예술의 온갖 매력적 도움을 빌어 굉장히 애를 쓰지만 죄에 대해서 얼마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정이 그 기생적인 생장작용과 그 추악한 번식으로 끊임없이 생식력으로 질식시키려 든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고 했다. 욕정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모든 결함의 근원이며 원리라고 못박고 있다. 욕정은 웬만하면 붙들어 맬 수가 없다. 단 한 가지의 방법으로 붙들어 매거나 파묻어 둘 수 있는 길은 욕정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욕정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길의 첩경이다. 욕정에 파묻히는 일 그것이 바로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한번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 저질러지면 되돌려 놓기가 그만큼 어렵다.
작금에 한 여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바람이 사회 전반으로 폭풍처럼 밀려들고 있다. 미투 운동의 확산과 사회 반응은 시대가 달라졌음을 방증하고 있다.

검찰에 이어 연극계와 시인, 배우 등 문화계를 강타한데 이어 가장 도덕성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에 이르기까지 미투는 더욱 지속적으로 확산될 전망이고 그 충격의 강도도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이렇듯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건 그간 우리사회에 성폭력 불감증이 만연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권력 관계를 이용해 성적 욕구를 비뚤어진 방식으로 해소하고 인권을 짓밟은 행위는 누구든 용납될 수 없다.

미투 운동을 피해 당사자들의 한풀이 정도로 봐서는 안 되며 성폭력 피해자를 구제함과 동시에 가해자에 대한 법적, 도덕적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하며 더 나아가 여성 성폭력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운동이다. 어떤 경우라도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이 외침을 더 이상 헛되게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되며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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