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우리에게 진정한 보수가 있었나
특별기고/ 우리에게 진정한 보수가 있었나
  • 시정일보
  • 승인 2018.06.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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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영국 보수당이 ‘보수의 신조’를 정의한 가운데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믿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것과 정 반대인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애가 성적이 나쁜 것은 다른 애가 성적이 좋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좌파다. 보수와 좌파를 쉽게, 정확히 가르는 물음은 이것이다.

보수는 궤멸하지 않았다. ‘보수의 신조,’ ‘보수의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그대로다.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이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들을 쉽게 홍준표 등이라고 하자. 더 명료하게 이야기하면 박근혜와 김기춘, 우병우 류다. 이들이 과연 ‘보수의 신조’를 가진 사람들인가? 이들이 성장과정과 정치를 하면서 걸어온 길에 ‘보수의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공감할 것인가?

클린턴이 지적했듯 선거에 있어 ‘문제는 경제’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의 실적은 고사하고, ‘일자리 정부에서 일자리 참사’를 일으키는 정부다. 홍준표 등은 이를 파고들지 못했다.

기대하고 있었던 드루킹은 아직도 폭발하지 않았다. 이재명의 미투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등은 ‘네 죄는 네가 알렸다’고 호통 치는 공안검사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홍준표의 톡 쏘는 기발한 말들은 표로 연결되지 못 하고 오히려 ‘저 입이 문제’라고 상만 찌푸리게 만들었다. 지방선거에서 홍준표 류에는 유망자가 공천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국내정치, 더구나 지방선거에 있어 외교는 큰 영향을 갖지 못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 북한문제는 외교의 범주가 아니라 예민한 국내문제였다. 홍준표 등은 문재인의 평화공세가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아니라 노태우의 북방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홍준표 등은 동계 올림픽이 88올림픽과 같이 국민에게 준 감동을 과소평가했다. 이들은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명제가 품고 있는 철학과 전략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국민 정서를 흡수, 반영할 수 있는 정책적 선제를 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볼 수 없었다.

홍준표 등은 이제 갔다. 보수는 다시금 새로이 뭉쳐야 한다. ‘보수의 신조’와 ‘보수의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보수의 정책’으로 결집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대처가 나와야 한다. 대처는 대처리즘으로 확고한 지지를 얻었다. 여기에는 우리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보수의 정책’은 제시하는 바가 뚜렷해야 한다.

다시 이회창, 고건, 반기문 등은 안 된다. 논란이 있지만, 노무현만큼이나 사람을 끌어들이는 강한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정책은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가 기준이 아니다. 실현 가능성(practicability)과 보통 사람의 지지를 받느냐가 문제다.

죽어야 산다. 즉,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必死則生)은 오늘에도 진리다.

위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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