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도대체 하마는 얼마나?
특별기고/ 도대체 하마는 얼마나?
  • 송경진 마포구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8.11.01 11:35
  • 댓글 0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

 

[시정일보]예산철이 되면 공공도서관장들은 저절로 한숨이 깊어진다. 자치단체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면 한숨은 더 깊고 깊어질 것이다. 대개 예산은 각 자치단체가 긴급하게 생각하는 순으로 매겨진다. 섭섭하게도 공공도서관과 관련된 예산은 대부분 후순위 중의 후순위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운영 예산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듣는 불편한 말은 ‘돈 먹는 하마’라는 표현이다. 이 말 속에는 단순히 돈이 많이 든다는 의미보다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그리고 대부분 그 가치는 돈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의 개념으로 치환된다. 정말 공공도서관은 땡전 한 푼 벌어들이지 못하면서 돈만 써대는 무가치한 기관일까?

서글픈 해명을 하자면 우선 공공도서관은 돈을 버는 기관이 아니며,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유네스코와 국제도서관연맹이 공표한 ‘공공도서관 선언’(1994)에 따르면 공공도서관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것은 공공도서관이 인종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종교적 배경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른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일부 서비스에 비용을 부과하는 경우도 ‘수익’보다는 자료를 연체함으로써 타인의 이용을 제한한 것에 대한 ‘벌칙’이거나 복사비처럼 남용의 우려를 막기 위해 소액의 사용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때의 서비스가 주차장 같은 부대시설까지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 번째, 공공도서관은 투입된 비용을 금전적인 수익의 형태로 산출해내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도서관을 통해서 창조적인 문화 활동의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도 있고, 책 읽기를 통해 다양한 소양을 기를 수도 있으며, 동아리 같은 모임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넓힐 수도 있고, ICT 기술처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혜택들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공도서관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보여주는 연구를 꾸준히 내놓는다. 영미권의 자료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은 투입하는 돈의 대략 3∼5배까지의 혜택을 되돌려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계산법도 실제로 돈이 되어 돌아오는 수익에 집중하면 아무 설득력이 없다. 그러므로 공공도서관에 대한 ‘돈 먹는 하마’라는 질타는 여전히 전가의 보도처럼 예산 삭감의 논리를 대변한다. 그리고 그 빛나는 검의 예봉은 늘 도서관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기 일쑤다.

예산철마다 겪는 도서관계의 장탄식을 떠올리다가 문득 ‘도대체 하마는 얼마나 먹어대기에?’ 하는 의문이 스쳤다. 찾아보니 하마는 의외로 초식성이다. 성체 하마의 기초 대사율은 시간 당 612kcal이며,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서울대공원의 동물 중 하마는 기린에 뒤이어 네 번째로 많이 먹는다. 만약 많이 먹는 몸집 큰 동물들은 자연계에서 쓸모없는 동물들이냐고 묻는다면 다들 무슨 어이없는 소리냐고 반문할 것이다.

여러 명사들이 도서관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서구에서 록그룹 롤링스톤즈의 키스 리차드는 ‘공공도서관은 위대한 평형장치’라는 말로 그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 이 말이야말로 오늘날의 사회에서 왜 도서관이 필요한지 극명하게 설명해 준다. 모든 것이 효율성으로 재단되고,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공공도서관은 최대한 평등한 기회의 장을 열어주고자 노력하는 기관이다. 공공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책과 정보, 강연, 동호회 등을 통한 멘토 네트워크 같은 것들은 누구라도 아무런 제재 없이 활용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 책을 통해 전기를 만들었던 말라위의 캄쾀바는 그 이야기가 TED에 소개되면서 미국 명문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화씨 451>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10년간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작가로서의 삶을 만들어냈다.

모든 사회가 다 같은 속도로 진보할 수는 없겠지만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에서 여전히 돈으로 공공도서관의 효율을 따지는 논리는 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