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효창동에 이봉창 의사 기념관 착공
용산구, 효창동에 이봉창 의사 기념관 착공
  • 정수희
  • 승인 2020.05.1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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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0일 서거 88주기 맞춰 준공식…보훈문화도시 정체성 확립
이봉창 의사 기념관 및 역사공원 배치도
이봉창 의사 기념관 및 역사공원 배치도

[시정일보]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구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이봉창 의사(1901~1932) 기념관 공사에 돌입한다.

기념관(효창동 286-7번지)은 484.4㎡ 부지에 지상 1층, 연면적 70㎡ 규모로, 전통 목구조에 기와지붕을 올려 짓는다. 내부는 전시실(49.31㎡), 준비사무실(4.46㎡), 주민휴게실(7.87㎡)로 구성하고, 전시실 앞에는 툇마루(7.96㎡)를 설치해 방문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한다.

건물 외 부지는 ‘이봉창 역사공원’으로 꾸민다. 배롱나무 등 수목 709주를 심고 기타 초화류를 식재한다. 공원 경계에는 전통 한옥식 담장을 두르기로 했다.

10월 개장을 목표로 총 사업비 7억원을 투입한다.

구는 지난 2018년 민선7기 구청장 공약사업으로 이 의사 기념관 건립 기본계획을 세웠다.

부지는 이 의사 생가터가 포함된 효창4구역(현 용산KCC스위첸아파트) 주택재개발사업을 통해 마련했으며, 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소공원’을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역사공원’으로 바꿨다.

지난 2~4월 공사 설계가 이뤄졌으며, 구는 이달 착공과 더불어 전시 콘텐츠 조성 용역을 발주한다. 6월에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기념관 명칭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이 의사는 용산을 대표하는 독립투사로 알려졌다. 1901년 용산구 원효로2가에서 태어나, 1917년 효창동 118번지로 이사했다. 1919년~1924년 용산역 역무원으로 일하다 1925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이후, 1931년 독립의지를 세우고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았다. 이때 임정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일본 천황을 왜 못 죽입니까?”라고 호통을 친 일화가 회자된다.

당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던 백범 김구 선생은 이 의사와 대화를 나눈 뒤 역사적인 동경거사를 준비했다. 1932년 1월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것이다.

비록 의거는 실패했지만, 침체된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린 일로 평가된다. 김구 선생은 “(이 의사의 거사가) 한인이 일본에 동화되지 않은 것을 세계만방에 보여줬다”고 자부했다. 이 의사는 1932년 9월30일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0월10일 일본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처형당한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6월30일 김구 선생에 의해 이 의사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효창공원(효창원로 177-18) 삼의사 묘역에 묻혔으며, 정부는 이 의사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기념관 내부에 이 의사 사진, 활동내역, 관련 유물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의사의 생애를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면서 “오는 10월10일 이 의사 서거 88주기에 맞춰 준공식을 개최하고 보훈문화도시 정체성을 확립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