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6·25전쟁 70주년, 창업과 수성을 말하다
특별기고/ 6·25전쟁 70주년, 창업과 수성을 말하다
  • 오진영 서울보훈청장
  • 승인 2020.06.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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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서울보훈청장
오진영 서울보훈청장
오진영 서울보훈청장

[시정일보] 국가를 세우는 것이 더 어려울까? 아니면 국가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울까? 결코 쉽게 답할 수 없기에 수많은 위정자와 역사가들을 고민에 빠뜨린 이 문제는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지금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각각 창업과 수성으로 흔히 명명되는 이 둘은 사실 전혀 다른 개념으로, 어느 하나가 명백히 우위에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다만 시대별로 처한 상황에 따라 어느 것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정도는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당나라를 세우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당태종은 사실 창업과 수성 논란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신하들에게 창업과 수성의 우열을 논해보라며 창업과 수성 논쟁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창업이 어렵다는 측에서는 건국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목숨의 위태로움을 이유로 들었고, 수성이 어렵다는 측에서는 평화에 젖어 방심에 빠지곤 하는 위정자들의 나태함을 이유로 들며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당태종은 일방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양측의 의견이 모두 옳다고 했다. 이는 당태종 스스로가 천책상장(天策上將)이라는 별명과 정관의 치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당나라의 창업과 수성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서 양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러한 창업과 수성의 어려움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주몽, 대조영, 왕건이 전자와 관련된다면,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이 일군 역사는 후자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20세기 초 급격히 흔들리던 조선은 경술국치를 맞이하며 수성에 실패했다.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독립운동, 즉 창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창업의 과정은 늘 그랬듯 혹독했다. 36년 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재산과 가족의 안위, 혹은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나서야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업 이후의 역사는 평탄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정부 수립 3년만에 발발한 6·25전쟁은 대한민국을 망국의 위기로 몰고 갔다. 37개월 동안 18만명에 가까운 전사자를 포함한 62만명의 국군과 15만명의 유엔군의 희생이 있고 나서야 대한민국은 지켜질 수 있었다. 그렇게 6·25전쟁은 멈춰졌지만, 67년 동안 3000여 건에 이르는 북한의 침투와 도발이 이어져 왔다. 때로는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이 전사자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일련의 시련들은 수성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렇다면 다시 창업과 수성의 논란으로 돌아가보자. 당태종은 기껏 화제를 제시해 놓고 시시하게 양시론으로 끝내지는 않았다. ‘창업의 고통은 과거의 일이나, 수성의 어려움은 위정자들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현재의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태종이 창업과 수성이 우열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맞도록 유연하게 적용해야 할 개념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당태종의 결론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또한 독립운동은 과거의 일이고, 국가수호는 현재의 일이다. 9·19군사합의를 위반하는 최근의 도발과 같은 일들이 여전히 발생한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현안이 수성임을 말해준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에 발발한 6·25전쟁이 아직도 종전이 아닌 정전협정 체제라는 점 또한 이러한 사실을 잘 뒷받침해 준다. 이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수성에 힘써야 한다. 아울러 강력한 안보가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는 모래 위에 지은 누각에 불과함 또한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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