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거목’ 박재간 소장 영면에 들다
‘노인복지 거목’ 박재간 소장 영면에 들다
  • 이윤수
  • 승인 2020.08.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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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6세, 지난 1일 한국노년학회 주관 추도식 거행
한국 노인문제연구소 설립 등 노인복지 발전에 헌신
한국 노인복지 발전에 헌신한 박재간 소장이 지난 7월31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사진은 지난 1일 한국노년학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 모습.
한국 노인복지 발전에 헌신한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설립 소장이 지난 7월31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사진은 지난 1일 한국노년학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 모습.

[시정일보] 우리나라 노인문제와 노인복지 발전에 공로가 지대한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설립 소장이 지난 7월31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8월1일 오후 4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서 한국노년학회(회장 한정란) 주관으로 열린 고인의 추도식에 차흥봉(전 보건복자부 장관), 최성재(서울대 명예교수), 이선자(서울대 명예교수), 성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이윤숙(동덕여대 명예교수), 황진수(대한노인회 중앙회 이사), 김태현(성신여대 명예교수), 김동배(연세대 명예교수), 홍미령(한국노인문제연구소 소장), 임춘식(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 등이 참석 고인을 추도했다.

당일 차흥봉 전 보사부 장관의 추도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추도사: 박재간 선생 영전에]

박재간 선생님! 작년 한국노년학회 고문단회의에서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슬픈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그동안 전주와 서울을 왕래하시며 만날 때만해도 기차를 타시고 지하철을 타시고 건강한 모습이라 100수를 하실 것으로 믿었는데 인간의 일이란 아무래도 기약이 없는 가 봅니다. 그동안 평생 한국의 노인문제와 씨름하며 치열하게 살아오신 박재간 선생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과 저는 지금부터 43년 전인 1978년 제가 보건복지부에서 노인복지업무를 담당하는 사회과장으로 일할 때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저에게 노인복지법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꼿꼿하면서도 분명한 자세로 노인문제에 대한 깨우침을 주신 첫 인상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지금부터 47년 전 한국노인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우리나라에서 누구보다 먼저 노인문제를 연구하며 노인문제를 사회에 제기하는데 앞장서셨습니다. 1970년대 산업화 도시화로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되면서 노인문제가 커져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노인문제를 연구하면서 한국노년학회 창설을 주도하셨습니다. 1978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제11차 국제노년학대회에 한국학자로서는 처음 참석한 후 당시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과 같이 만든 것이 한국노년학회였습니다. 1980년 서울대학교에서 선생님이 준비한 한국노년학회 첫 학술대회 때 저는 한국의 노인복지 현황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19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국제노년학대회에 참가하여 한국노년학회가 IAG 국제노년학회 회원으로 가입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선생님은 노인문제 연구에만 머무르지 아니하시고 노인문제 해결의 실천에도 늘 앞장 서셔서 우리나라 노인복지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자문으로 1978년 이후 3년간 보건복지부에서 노인복지법 제정을 위해 심혈을 기우렸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외국사례도 공부하고 세미나도 같이 하면서 법률 초안도 만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수립 시점에 경제성장과 사회복지의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정책방향이 설정되면서 노인복지정책도 싹이 트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이와 같은 정책 환경 위에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1981년 우리나라 최초의 노인복지법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법 제정당시 마지막 공청회에서도 선생님은 좋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노인복지발전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해오셨습니다. 노인강령과 경로헌장을 제정하는데 앞장서주시고, 국가의 노인정책 발전을 위해 청와대 노인대책회의 운영,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설치를 위해서도 선도적 노력을 해주셨습니다.또한 선생님은 우리나라 노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1969년 대한노인회가 설립될 때 실무적인 일을 도맡아 하시고 그 후 노인단체의 연대 활동에도 늘 앞장서셨습니다.

박재간 선생님! 선생님은 이 땅에서 100년 가까이 사시는 동안 노인문제 연구와 노인복지 발전을 위해 평생 헌신하시고 참으로 큰 일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한국의 노인복지상황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모든 노인들이 아플 때 돈 걱정 없이 병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중풍, 치매 등 만성 질환으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들은 요양원, 주간보호, 방문요양 등 요양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근 5백만 명의 노인이 매달 기초연금을 받거나 국민연금을 받아 경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사회 노인복지관에서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한국노년학회도 이제 회원 5,000명을 가진 큰 학회로 발전했습니다. 선생님이 다리를 놓아주신 국제노년학대회도 2013년 서울에서 제13차 세계노년학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만큼 발전했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선생님이 지난 50년간 노인문제를 제기하면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그간 한국의 노인복지 발전에 헌신하신 선생님께 우리나라 전체 노인분야를 대신해서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제 유명을 달리하신 박재간 선생님! 현세 노인문제의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이제 평안하게 안식하시옵소서. 앞으로 영원토록 이 땅의 노인복지발전을 위해 굽어 살피시옵소서. 삼가 명복을 빌며 영전에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