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노인을 위한 나라 만들어야
시정칼럼 / 노인을 위한 나라 만들어야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0.08.13 09:00
  • 댓글 0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논의는 예로부터 있어 왔다. 성경에는 인간인 아담은 무려 922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요즘 기네스북에 기록된 최고령자가 122세 할머니이고, 의학적으로는 150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하니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아담의 나이는 믿기 어렵다.
 
로마 시대의 1년은 10개월에 304일이었다. 월력을 계절과 맞추기 위해 2년마다 1번씩 27일 또는 28일의 윤달을 상정해 보았지만 절기의 혼돈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카이사르가 이집트원정에서 12달로 된 역법을 보고 이를 도입하면서부터 중구난방이던 인간의 나이계산이 자리 잡는다. 365일 한해가 지나면 한 살 더 먹는 식이다. 그렇게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절박한 과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최근 UN은 '호모 헌드레드(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선포했다. 70세를 기대 수명으로 생애 주기를 결정했던 예전과 달리 100세를 새로운 생애 주기 기준으로 삼는다.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야 한다는 말인데, 지금 60세는 예전 기준으로 하면 42세인 셈이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40대처럼 보이는 60대도 많고, 예전 기준으로는 은퇴할 나이지만 현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우리 주위에 많다.

통계청(2019)에서도 현재 65세를 넘은 사람의 기대수명이 91세라고 발표한 것을 보면, 인생 백세 시대가 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요즘은 또 '인생 백년 사계절' 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25세까지가 봄, 50세까지가 여름, 75세까지가 가을, 100세까지가 겨울, 이에 따른다면 70대 노인은,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만추(晩秋)쯤 되는 것이고, 80세 노인은 이제 막 초겨울에 접어든 셈이 된다.

동양에서와 같은 회갑(回甲) 개념이 없는 서양에서는 대체로 노인의 기준을 75세로 보고 있다. 그들은 65세에서 75세까지를  활동적 은퇴기(active retirement)라고 한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아직도 사회 활동을 하기에 충분한 연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연령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젊음이다

어쨌든 요즈음 70세 노인을 신 중년, 그리고 80세 노인을 초노의 장년(長年)이라고 부른다. 나이의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멋지게 나이 들어야 한다. 인간의 매력은 잘 생긴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매력과 더불어 호감이 가는 사고력 등으로 판명된다.

사회적 은퇴 대열에 선 사람들에겐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본질적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명함 속 직업과 직위를 자기 정체성이라 여기고 살아온 사람들은 은퇴 후 사적 영역에 돌입하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생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삶으로 나눈다면 여성에 비해 은퇴 후 남성들이 더 취약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나이 듦이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면, 젊어서부터 다양한 정체성을 오간 사람들이 훨씬 더 성숙한 노년을 맞이한다. 그러나 젊음과 활력을 강조하고 개인을 성적 주체로 호명하는 것에 익숙한 자본주의적 삶은 노년에게 꽤 불리해 보인다. 그러므로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해석이 필요하다.

이런 멋진 태도나 기술은 나이가 많다고 쇠퇴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아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것이 바로 경륜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나이 듦의 지혜와 여유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매력이 능력이고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현상이겠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그 어느 누구도 빗을 수 없는 예술작품이다  그리고 어제까지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mystery)일 뿐 오늘은 귀중한 선물이다" 미국 루즈벨트(Roosevelt) 대통령의 말이다. 미래 노인은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다.

독일 옛 민요에 이런 게 있다.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숨의 길이는 모른다. 나는 죽는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인지 모른다. 나는 가고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태평 속에 있는 것이 스스로 놀랍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고 또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도 자기 나이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나이 값을 하고 있는가를 가늠하곤 한다.

젊음이란 인생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상태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몇 살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나이 값을 하며 올바로 살고 곱게 늙어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