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매번 시끄러운 지방의회 원 구성
기자수첩/ 매번 시끄러운 지방의회 원 구성
  • 이승열
  • 승인 2020.08.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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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기자
이승열 기자

[시정일보] 안양시의회 의장 선거에서 사실상 기명투표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누가 누구를 지지했는지 알 수 있는 투표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13석, 미래통합당 8석으로 구성된 안양시의회는 지난달 4일 의장선거를 실시해 민주당 소속 A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그런데 선거에 앞서 A의원과 B의원이 민주당 내 경선을 벌여 A의원이 의장후보로 결정된 후 B의원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것이 사태의 원인이 됐다.

이에 B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의 민주당 의원은 통합당의 지지와 이탈표의 발생으로 의장을 뺏기는 상황을 막기 위해 사전 담합을 모의했다. 투표용지를 가상으로 12등분해 각 의원들의 이름을 적는 위치를 정한 것. 안양시의회 의장선거는 후보 등록 없이 지지하는 의원의 이름을 적는 ‘교황 선출 방식’의 기명식투표로 이뤄진다.

이 같은 사실은 의원들의 대화내용 녹취록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알려졌다. 안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12명의 의원들은 비밀투표 원칙을 어겼고, 풀뿌리민주주의에 오물을 끼얹었다”고 비판했다.

원 구성 때마다 대부분의 지방의회가 시끄럽다. 원만한 소통과 타협의 정치는 온데간데없고 적의와 갈등이 공공연하게 드러난다. 때로는 볼썽사나운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방선거 직후 가졌던 초심과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선후배 동료 의원에 대한 신의는 이미 잊힌 지 오래다. 서울시 자치구의회들도 대체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고, 8월 중순에 이르는 지금까지 원 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한 곳도 있다.

‘핵심은 돈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 의장단에 선출되면 적지 않은 금액의 업무추진비를 받게 된다. 기자가 확인한 한 구의회의 경우 의장에게 매달 35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지급한다. 연봉으로 따지면 4000만원이 넘는 액수다. 비록 그 사용처에 관한 시민의 감시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인에게 이 정도 돈은 큰 힘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중앙정치에 예속돼 있는 지방정치다. 즉, 정당공천제가 낳은 어두운 그늘이다. 공천을 무기로 지방의원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려는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의 마수가 지방의회 원 구성에까지 뻗치는 모습이다. 이른바 ‘내 사람’을 의장단에 앉혀, 지방의회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것이다. 정당공천제는 그 본래 취지인 책임정치의 모습은 잃어버리고, 오로지 적폐로만 남았다. 지방분권·자치분권이 화두인 시대에, 정당공천제의 앞날을 진지하게 다시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