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의 수레, 배 그리고 인터넷
박제가의 수레, 배 그리고 인터넷
  • 시정일보
  • 승인 2004.04.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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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문 용 강남구청장
220년 전, 실학자 박지원과 박제가는 눈 덮인 초가집 처마 아래에서 화롯불에 술을 데우며 밤을 새워 조선의 가난을 어떻게 벗어나게 할 것인가를 손뼉을 마주치며 맞장구를 치면서 토론하였다.
그들이 이 나라를 잘 살게 하고자 하는 열정은 장미꽃보다도 붉었다. 이조 말기의 한심한 양반 행태에 대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었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이렇게 주창한다.
중국에서 조선 사신이 오는 것을 보면 만리가 넘는 길을 마졸들이 걸어서 오니 봉두난발한 몰골이 흉악하기 이를 데 없어 부끄럽기가 이보다 더한 경우가 없다. 이것은 수레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산골에는 팥이 지천이나 조개젓이나 새우젓을 보면 어린아이들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바닷가에 있는 아이들은 창란젓에 너무 물려 보기도 싫어한다. 하지만 팥을 보고는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산골과 바닷가에 나오는 이런 물품을 서로 교환하면 모두가 잘 살 텐데, 사정이 이러하니 모두 가난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모두가 수레가 없어 등짐으로 지고 가니, 도무 같이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칸, 두 칸으로 방이 중국에 비해 매우 작다. 그것은 말 등에는 한 칸만 지을 수 있는 목재를 실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레를 이용하지 않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박제가는 나라 안에서의 수레 이용 문제를 넘어 국제 통상 문제를 정조에게 강력히 진언한다. 수레 100대의 물건을 싣는 것은 배 한척의 싣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육로로 천리를 가는 것보다 배를 타고 해로로 만리를 가는 것이 더 편리하다.
중국 녹차를 실은 배 한척이 표류해서 남해에 정박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온 나라가 그 녹차를 10년 동안 사용하였는데, 지금도 그 녹차가 여전히 남아있다.
오늘날 조선은 무명옷을 입는 것조차 넉넉지 않은 처지인데, 만약 외국과 배를 통하여 통상한다면 비단옷을 입고, 고급종이에 글을 쓰는 정도로 넉넉하게 살 것이다.
또한 박제가는 이런 구절을 남겼다.
‘신라가 잘 살아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꼼꼼히 분석해보니 배와 수레를 사용한 데 있었다. 배로는 외국과 통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데이비드 리카도를 30년이나 앞서 비교우위론을 이 천재가 주장하고 있구나 하고 감명을 받았다.
이 천재가 다시 살아나 필자가 “우리나라 경기가 어려운데, 잘 살려면 어떻게 할 것이요” 하고 물으면, 박제가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우선 얼마 전 완성된 고속철도는 이 민족의 위대한 보물이다. 내가 말하는 수레이다. 이 수레가 북한을 지나 중국을 지나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파리를 지나 런던까지 달리게 하라. 벌떼같이 일어나 야단만 치지 마라.
둘째, 북한과 협의하여 개성공단을 여는 것을 계기로 임진각 수로를 개방하여 한강수운이 서해안으로 나아가 중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 옛날 마포 나루터, 잠실 나루터, 청담 나루터에서 중국, 홍콩, 일본으로 갈 수 있도록 하라.
셋째, 강남구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 사람이 인터넷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설 수 있는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으니 비교 우위를 이 분야에서 찾도록 하라.”
박제가는 220년이 지나도 역시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