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깊어가는 우울증
공직사회 깊어가는 우울증
  • 시정일보
  • 승인 2004.04.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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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기자

요즘 들어 부쩍 공직사회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대부분 수십년 쏟아 온 열정에 대한 배신감에서 시작된다.
“밤을 지세워 쏟은 열정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단지 코드(?)가 맞지 않다고 내몰리는 신세라니…….”
민선이후 공무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어김없이 들어왔던 단골 안주거리지만 들을 때마다 싸해지는 가슴은 한결같기만 하다.
앉은 자리가 음지가 되기도 하고 양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야 세상 돌아가는 이치로 받아들일 수 있다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내몰려져야 하는 신세라면 술 한잔 기울일 필요도 없이 냉수 한잔에도 나올 수 있는 푸념일 것이다.
모 구청 A팀장은 최근 6개월간 3번에 걸쳐 부서를 옮겨 다니다 결국 수십년 머물던 구청을 떠나야만 했다. 기획통으로 불려질 만큼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민선1기 단체장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것이 화근이 되어 현재 민선2·3기를 연임하고 있는 단체장으로부터는 내침을 당한 것이다.
지나온 시간 공직에 임하며 바친 열정이 성향이 맞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 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이 그의 삶에 활력까지 앗아가 버렸다.
민선이후 공직사회 새로운 풍조로 떠오른 단체장 세력 만들기에서 축출대상이 된 그는 평소 ‘충성서약’대신 “공무원이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에만 충실하면 됐지 단체장을 보고 일하느냐”며 권력에 편승하는 일부 공직자들과 행보를 달리해 왔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A팀장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또 다른 구청 B국장도 단체장이 바뀌고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가 단행되면서 구청에 머무는 것이 바늘방석이다.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하는 은근한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스스로 표현하기를 꺼려한다는 것뿐 이같은 사례는 서울시를 비롯한 각 구청에 비일비재한 일이 돼 버렸고 그만큼 상실감과 배신감에 의욕을 잃은 공직자들의 우울증도 깊어가고 있다.
관선시대가 민선시대로 바뀌면서 체감행정은 크게 나아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엔 곪고 있는 내면의 행정이 숨겨져 있다. 그렇다면 그 행정의 신선도는 어느 정도라고 평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