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종대왕, 머리를 숙인다
기고/ 세종대왕, 머리를 숙인다
  • 임정기(나주임씨 중앙화수회 부회장)
  • 승인 2021.06.0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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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기(나주임씨 중앙화수회 부회장)
임정기(나주임씨 중앙화수회 부회장)
임정기

[시정일보]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문해(文解)라고도 한다. 뜻을 짧게 표현하다 보면 한자가 어원으로 등장하는 것을 모조리 막을 수는 없다. 문해가 생소한 낱말이라면 좀 더 친숙하게 표현하면 문자 해독력이라고 할까? 이것은 문맹 퇴치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유네스코, 즉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매년 9월 8일을 세계 문해의 날(International Literacyday)로 정하고 문맹 퇴치에 공을 세운 개인이나 단체에 국제적인 상을 주고 있다. 상 이름은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이라 한다. 국제적인 상에 세종대왕이란 이름이 들어간 것은 우리 민족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을 존경해 왔으며, 조선 시대의 임금님 중 가장 훌륭한 분으로 확신하는 나는 깊은 관심을 갖고 이 상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유네스코는 1997년 10월 1일 세종대왕이 명명한 우리의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이상 세종대왕이란 존재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종대왕 문해상의 상금 2만 달러를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세종대왕의 이름을 붙이고, 우리나라는 돈을 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세종대왕이라는 훌륭한 분을 임금님으로 받들었던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낳은 아들 중 다섯째 아들인 방원은 형들을 물리치고 조선의 제3대 임금님 태종이 되어 개국 초기의 어지러운 정국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강압적인 통치를 통해 신생 조선의 기반을 강력하게 구축했지 않았던가? 태종이 무력의 화신으로 TV 연속극에 묘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무(武)의 상징 태종이 양녕대군, 효령대군 등 두 아들을 제치고 그 아래인 충녕대군을 발탁해 세종대왕이라는 제4대 임금님을 내세운 것은 문무(文武)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의미 외에도 한국판 문예 부흥을 획기적으로 성취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다행이다.

학업에 열중한 세종대왕은 세자 때부터 종일 독서에 몰입했다. 당시의 책들은 모두 한문이었다. 일반 백성은 체계적인 교육을 하는 성균관에 들어갈 수도 없고, 굶어 죽는 것을 모면하기 위해 논밭을 갈고 수확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한문을 깨칠 수가 없었다. 백성들은 한문에 까막눈이었다.

세종으로 즉위한 충녕은 즉위교서에서 “인을 베풀어 정치를 펴겠다.(施仁發政)”라고 천명했다. 공자가 가장 강조한 인에 기반한 정치란 것은 말로는 쉽지만, 권력의 속성상 강압적인 정치로 흐를 가능성을 항상 배제할 수 없다.

인은 언행이 일치해야만 효력을 발휘한다. 세종대왕은 즉위교서에서 내세운 인의 기반으로서 백성의 문맹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깨달았다.

세종대왕은 한문을 읽지 못하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한문을 가르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깨치기 쉬운 우리말을 창제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모든 민족은 자기 언어가 있을 때 사고를 일치시키고 국민의 힘을 강력하게 결집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이러한 결심은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었다.

세종은 표음문자를 스스로 연구하고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명령하여 심혈을 기울인 결과 1443년에 자음 17자, 모음 11자 즉 28자(이 중 4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없어짐.)로 된 위대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세종이 서문 격인 의례(義例)에서 백성들이 배우기도 어렵고 쓰기도 힘든 한자로는 제 뜻을 펴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배우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문자인 한글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주체적 결단이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떨치는 쾌거였다.

필자는 한글이 단순한 자음과 모음으로 배열하고 발음하기 쉬우며 한 낱말에 여러 발음이 족출하는 영어와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한자에 비하면 훨씬 대중적이고, 민주적이며, 과학적이라고 확신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가 한글을 깨쳐서 고맙게 사용함으로써 머리를 맑히고, 문맹을 퇴치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며, 또한 선택받은 행운이었던가?

한글은 우리 민족만의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더욱 고무된다. 한글은 2009년 열린 세계문자올림픽대회에서 16개국 언어가 참가해서 겨룬 결과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이어서 한글은 2012년에도 세계 27개국 언어가 참가한 이 대회에서 또 1위를 했다. 세계문자올림픽대회는 가장 쓰기 쉽고, 배우기 쉽고,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찾아내기 위해 열리는 권위 있는 행사라고 한다

현대사회는 기계화 사회, 디지털 사회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문자는 쉽고, 간략할수록 이러한 시대에 적합하다. 사람들은 한글이 자판기를 두드리는 속도에서 다른 언어를 압도할 정도로 빠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글은 단순하고 명쾌해서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면 원문보다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글이 간결성, 신속성, 정확성으로 세계를 제패할 때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선진국이 될 것이다. 세종대왕은 우리 민족의 불세출의 지도자요, 세계에서도 위대한 인물 중의 한 분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므로 나는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적인 상을 주는 이상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많은 3만 달러 이상의 상금을 찬조하기 바란다. 한국을 대표하는 왕이요, 지성인이요, 백성을 극진히 사랑한 세종대왕 덕분에 국제적으로 위상이 껑충 뛴 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성의를 베푸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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