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는 창업 시대에 살고 있다
기고/ 우리는 창업 시대에 살고 있다
  • 임양성 (전 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21.06.0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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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성 (전 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
임양성

[시정일보] 창업(創業), 즉 새 나라를 건국하는 일이 더 어려운가? 건국한 나라를 잘 보존하는 수성(守城)이 더 어려운가? 이 질문은 약 1천4백여 년 전 중국 당(唐) 태종(太宗)이 평소 직간을 서슴지 않았던 명재상 위징(魏徵)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징은 ‘수성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고 말했다. 새 나라를 개창하는 대업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당의 건국 과정에 태자 이건성(李建成)의 측근이었던 위징이 새 나라를 창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결론 내려 말하였다. 우리는 위징이 수성하기가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역사에서 흥망성쇠의 순환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른바 역사의 주인공들은 바뀌지만, 변화의 본질은 늘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이에이치 카(E.H.Carr)가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였듯이 역사에서 흥망성쇠는 어느 시대에서나 나타나며, 이것은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사에서도 늘 반복하여 나타나는 팩트이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산업화 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에 우후죽순 격으로 수많은 기업이 생겨났다. 10대 기업, 20대 기업, 심지어 100대 기업까지 재력의 크기에 따라 기업들의 서열도 매겨졌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산업화 시대에 살았던 세대는 모두가 창업의 주역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세월은 반세기 이상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창업했던 기업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존속하면서 번영하는 기업들은 몇이나 될까. 또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라져 버린 기업은 얼마나 될까. 어떤 기업은 2, 3세 경영진으로 바뀌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였고, 어떤 기업은 2, 3세들의 일탈된 경영으로 뉴스에 몇 번 오르다가 사라져 버렸다.

만약 창업주들이 오늘의 시점에서 자신들이 창업하였던 기업들을 바라본다면 어떠한 심정으로 바라볼까. 모 기업의 창업주 K회장에게 일화가 하나 있다. 60년대 한국의 최고 갑부 소리까지 들었던 그는 보통으로 바쁜 일정을 사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짧은 삶의 시간을 밖으로 늘리려고 하지 말고 잠으로 없어진 시간을 줄여서 수명을 늘리자고 말했다 한다. 그는 실제로 수면시간을 줄여 활동하였는데 부족한 잠은 이동하는 차 속에서 깜박 잠으로 채웠다고 했다.

그렇게 창업하였던 그 기업이 후손들에 의해 수성을 잘했더라면 오늘날 어떤 기업으로 성장했을까 생각해 본다. 동양의 스승 주자(朱子)는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려면 늘 준비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삶 가운데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을 10가지 내용으로 간추려 ‘주자 10 후회’라는 경귀를 남겼는데 어릴 때 공부하지 않은 것, 여유가 있을 때 절약하지 않은 것 그리고 봄에 씨 뿌리지 않은 것 등의 내용이다.

바로 사람이 삶을 살면서 준비해야 할 시기에 준비하지 않고 기회를 놓치게 되면 후일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준비하는 과정에는 당연히 고통과 어려움이 수반하는데 누구든 편안함과 안일함의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준비하지 못한 결과는 반드시 후회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사전에 대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실례가 우리 역사에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 직전 통신사로 파견되었던 황윤길, 김성일 두 사신 가운데 한 사람은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니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하였다.

당연히 대부분 국정 운영자들은 고통을 기피하고자 병조판서 율곡의 유비무환 10만 양병론 등을 배척해 버렸고, 결과는 참혹한 국란을 감내해야 했다.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또 다른 의미에서 창업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수성에도 열심히 대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선대에서 이루어 놓은 기업을 잘 수성하기 위해서는 창업의 도전정신은 물론 시대의 변화를 리드하는 능동적인 창의력과 안일함을 경계하는 개혁 정신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 위징이 ‘수성이 창업보다 더 어렵고 중요하다.’라고 말했던 것은 창업의 도전정신과 아울러 끊임없이 닥쳐오는 난관을 극복해 가는 창의적 적응력과 개혁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위징은 급변하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준비하지 못하고 펑안함에 안주하는 내부의 적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 버렸던 역사적 사례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던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며 내부에서 발생하는 적을 물리치고자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현실의 병폐를 과감히 쳐내는 개혁은 새 세상으로 판을 뒤집고 새로 시작하는 혁명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하였다.

국가든 개인이든 안일과 나태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좀먹는 무서운 병이며, 이를 대비하고 경계하는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당 태종이 창업하였던 당이나 유럽사 최대의 제국 로마 그리고 우리나라 과거의 왕국들이 모두 어려운 시기를 대비한 준비를 게을리하고, 내부의 적을 물리치는 개혁을 등한시한 결과 스스로 무너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경영하고 있는 국가와 기업 그리고 나 자신에 이르기까지 수성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오늘, 오늘의 발전이 멈추지 않고 계속 번영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위징이 강조하였던 ‘수성의 교훈’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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