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후원 봉사활동 누구나 할 수 있다
기고/ 후원 봉사활동 누구나 할 수 있다
  • 김가진(평화의 집 후원자)
  • 승인 2021.07.2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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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진(평화의 집 후원자)
김가진
김가진

[시정일보] 노블레스 오블리주. 언제였던가 당시 사회적으로 언론이나 드라마, 심지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언급되며 유행이 되었던 말이다. 고귀한 신분과 책임이 있다는 단어가 합쳐진 말로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있는 자가 어려운 자를 도우며 이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며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로 당시 코미디다운 유행어로 사용되었던 시절, 나는 매우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나의 형편에 후원 봉사라는 것은 적십자사에 자동이체로 몇천 원 정도 내는 것과 어린이 재단을 통한 결연 아동에게 매월 2만 원씩 보내고 있던 것이 고작이었다.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주변과 트러블 없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좋은 말로는 호인이었고 상대방에게는 호구인 것으로 20대 젊은 시절 인생의 쓴맛을 보며 살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S그룹인 최고의 대기업에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으로는 남의 빚을 갚으며 피눈물 흘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동병상련이라고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 그 상황을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밥이라도 먹고 비 오면 비를 피할 수 있는 전셋집이라도 있는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다. 내가 힘들면 남도 그렇게 보여서였던가. 그래서 누군가를 보면 베풀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악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 큰 상처를 받으며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결심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인들이 아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절실한 사람들을 돕자고 생각했다. ‘서울역을 가야 하나?’ 여러 생각을 하며 사람들이 관심 두지 않는 곳을 찾았다.

보육원, 노인시설, TV에 나오는 어려운 시설. 그런 곳들은 크리스마스, 어버이날 등 행사 때 후원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돕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각지대를 찾아야 했다. 정말 작은 도움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절실하기를. 가장 쉬운 ‘초록우산’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이라는 곳에 ‘평화의 집(대표 임춘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백사마을은 매해 연말이면 연예인들이 항상 연탄을 메고 나르며 TV에 자주 등장하는 속칭 달동네다. 그러한 명성 때문에 전국에서 지원이 많고 봉사자도 많이 찾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블로그에서 그곳에 있는 평화의 집에 봉사활동을 다녀왔고 후원이 많은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도움을 못 받는 노인분들이 그곳에 모여 식사도 하시고 지원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의 상황과 오시는 어르신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시에는 유튜브 같은 게 없었고 블로그가 처음 활성화되었는데 한 분 한 분의 눈물 나는 사연들로 점심 식사를 같이 도우며 어르신들을 뵈었다. 건강 때문에 오시지 못한 분들께는 도시락을 전달한다고 했다. 그렇게 평화의 집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한 달에 한 번 꼭 필요한 생필품(비누, 치약, 칫솔, 휴지, 식용유)과 의류 등을 준비해서 하나하나 포장하여 전달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 오렌지 삼 남매는 말없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벌써 10년이나 되었다.

어느 날 산 위쪽에 사시는 어르신을 방문한다고 하여 따라가게 되었다.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생각보다, 아니 생각하지 못할 만큼 열악한 상황 속에 몸만 겨우 누울 수 있는 정도의 공간에 방바닥은 냉골이고 방 문짝은 틀에 맞지 않아 바람이 다 새어 들어오고 집 안이나 밖이나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생활용품이라고는 다 찌그러진 냄비와 거품도 안 날 것 같은 빨랫비누 1장 등.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겨울이면 TV에 나오던 기업들과 개인들의 불우이웃돕기 성금들, 그 돈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말 어려운 곳에 쓰이고 있는 것일까, 왜 이곳에 계신 분들은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당시에는 겨울이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한 개인과 기업들이 TV에 나열되며 나오던 시절이다. 요즘은 자선냄비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지만.

그렇게 우리는 오렌지 삼 남매(김가진 44, 김현진 42, 김명훈 31)라는 이름으로 봉사활동으로 마음을 나누며 사랑을 키워왔다. 힘든 삶 속에서도 더 어려운 어르신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어 더 열심히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제부까지 동참하여 조금이라도 더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우리는 나누는 마음을 함께 형제가 되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35년간이나 그 자리를 지키던 평화의 집이 내년이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요새는 코로나로 인해 하루 한 끼를 드시러 멀리서도 오시던 어르신들이 4인 이상 모임 금지 이후로 식사를 못 하게 되었고, 과거 재개발이 멈춘 시간 동안 지켜질 줄 알았던 그곳의 옛 모습들도 영원히 철거된다고 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길어야 1년 남짓, 내년 연말이면 평화의 집도 존재를 잃게 된다. 그나마도 그곳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시던 분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오래전 봉사활동 갈 때 가끔 뵈었던 분이 안 계셔서 여쭤보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이 없어 동사무소에서 화장하고 유품 정리를 한다고 들었고 관이 5만 원 정도 하는 나무판자로 된 게 있는데 그걸로 장례 후 화장을 해준다고 한다.

나에게는 전부 충격이었다. 이웃 어르신이 돌아가신 것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가족이 없어 돌아가신 후에도 누군가 슬퍼해 줄 사람도 없고, 나도 혼자라서 나중에 누가 들여다봐 줄지도 걱정이 되었고, 그나마 동사무소에서 5만 원짜리 관이지만 화장 후 유품 정리도 해준다고 하니 다행인 건지 아닌 건지 만감이 교차했고, 열심히 살아서 죽기 전에 나의 묏자리는 사놓고 죽자는 생각도 부질없이 들었다.

그곳에서 노년의 생을 보내며 평화의 집이라는 곳이 작은 기쁨이 되어 서로 돕고 이야기 나누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던 많은 어르신이 이제는 평화의 집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모든 것이던 작은 보금자리마저 잃어버린 채 어디에서 삶을 보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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