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 받을 때마다 기부… 선행은 또다른 업무
상금 받을 때마다 기부… 선행은 또다른 업무
  • 김응구
  • 승인 2022.03.03 09:50
  • 댓글 0

강북구청 부동산정보과 박 석 준 주무관
박석준 주무관은 서울시 ‘창의상’에 모두 세 번 응모했고, 장려상 두 번에 우수상 한 번을 받았다. 그래서 받은 상금은 모두 기부했다. 마스크는 사진촬영 후 곧바로 착용했다.
박석준 주무관은 서울시 ‘창의상’에 모두 세 번 응모했고, 장려상 두 번에 우수상 한 번을 받았다. 그래서 받은 상금은 모두 기부했다. 마스크는 사진촬영 후 곧바로 착용했다.

[시정일보 김응구 기자] 일 잘하는 공무원은 생각보다 많다.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그런 이들은 착한 행동(善行)에도 열심이다. 보통은 알려지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묵묵히 할 일만 한다.

강북구청 부동산정보과 박석준(朴錫俊·43) 주무관이 그렇다. 딱 들어맞는다. ‘공무원스러움’에 표본은 없지만 그를 보면 ‘공무원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칭찬도 욕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느낀 그대로를 말하는 것뿐이다.

박 주무관은 ‘생각’을 많이 한다. 남들보다 두 배쯤은 더 하는 듯 보인다. 물론, 일과 관련한 것이거나 어떤 행위를 할 때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다.

실례(實例)를 하나 들어보자. 박 주무관이 가족과 함께 경기도의 한 지역을 방문했다. 공영주차장을 갔다. 그는 세 자녀가 있다. 차는 하이브리드(hybrid)다. 당연히 할인 혜택이 있다. 주민등록증을 입력시켜 할인받았다. 훗날, 집으로 독촉고지서가 날아왔다. 당시 주차요금 중 50%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자동차등록증도 인식시켰어야 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주차요금을 할인받기 위해선 주차정산기에서 한 번 확인하고, 자동차등록증이 없으면 차에 가서 가져온 다음 할인받고, 또다시 가서 차를 빼 나가야 하잖아요. 일단 한 번만 그렇게 해두면 그다음 방문 땐 자동으로 인식된다는 대답을 받긴 했어요. 근데 그곳을 또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박 주무관은 “고속도로에서도 경차 할인이 되는데, 이런 정도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 일을 단지 ‘불편한 경험’ 탓으로 기억에서 지울 수도 있지만, 그는 한 번 더 생각했다.

“자동차등록을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건 그 데이터가 전국화돼있다는 얘기일 텐데.”

“차 번호만 갖다 대면 경차인지, 저공해차량인지, 장애인등록 차량인지 혹은 모두 아닌지, 이런 단순한 OX 정보만으로 할인 혜택을 받을 순 없을까?”

그리곤 2020년 서울시 주관 ‘창의상’ 공무원분야 창의제안부문에 그의 아이디어를 보냈다. 그것이 ‘주차요금 자동할인 서비스’다. 장려상에 뽑힌 그는 상금으로 1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은 곧바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박 주무관은 이 시스템을 일반 건물의 주차시스템에 탑재해도 큰 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건물주들을 설득해 저공해차량에겐 주차비를 감면해주고, 그에 따른 혜택을 주면 환경오염 문제 해결에 한발 앞서갈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건물이 하나둘 생기고, 서울을 넘어 전국에까지 뻗치면 지금보다 숨쉬기가 더욱 편할 것은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그의 아이디어는 단순히 개인 편의 서비스만을 위한 것이 아닌, 최근 전 세계 화두인 ‘탄소중립’ 해법까지 제시한 셈이다.

박 주무관은 지난해에도 창의상에 도전했고, 또 100만원을 받았다.

제안 내용은 ‘사유지 도로 신탁제도 시행’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관리되지 않은 사유도로를 자치구가 신탁(信託)받아 효율적으로 관리하자는 의미다.

이는 민원인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었다. 집 화장실에 물이 넘치는데, 알아보니 집 앞 골목길 아래에 묻힌 관로(管路)가 문제였다. 이것이 막히니 곤란한 지경이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골목길이어도 사유지(私有地)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 소유주가 재산권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래전 부동산을 분할 판매하며 생긴 그 부분을 땅 주인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거나 사망 후 자식들에게 상속됐어도 여전히 모르고 있어 발생하는 문제다. 등기부등본을 떼봐도 연락처는 없고, 주소 역시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소유주와의 연락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다. “우리 집에 당장 물이 새는데, 구청이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냐”는 말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박 주무관이 낸 아이디어는 사유지여도 누구나 이용하는 도로이니 자치구가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자는 게 주 요지다.

“그 소유가 누구인지 파악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자치구가 도로포장도 하고, 문제 발생 시 그걸 파서 그 밑의 시설물도 개·보수하고, 이렇게 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그 부분을 제가 제안한 거고요.”

사실, 이 문제는 강북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앞으로 20~30년 후엔 이런 사례가 전국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 그 때문에 강북구를 시범지구로 지정해 해결방안을 마련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부상으로 100만원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말, 그는 이 돈을 라면 50박스와 바꿨다. 그리고 기부했다. 그날 바로 각 동주민센터를 통해 저소득층 가정에 전달됐다.

그의 ‘나눔’은 2015년이 시작이었다. 물론, 창의상 수상이 그 시작을 만들었다. 당시 200권 가까운 전 동(洞)의 부동산 확정일자 목록을 전산화해 검색하기 편하게 만들었다. 이때는 제안실행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상금이 200만원이었다. 그 당시 네팔에선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다. 그걸 보고 그가 상금 기부 의사를 밝히자, 구청이 전 직원 모금을 독려했고, 그렇게 모인 1000만원 넘는 성금은 도봉구청(당시 그는 도봉구청 소속이었다) 직원 일동으로 기부됐다.

지금까지 상금 탄 걸 아내가 아느냐고 물었더니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라도 알 텐데 섭섭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알았을 때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고 했다. 잠시 “이런 부모 아래에서 크는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공무원의 하루는 어제와 오늘이 같다. 내일도 다르지 않을 예정이다.

박석준 주무관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어제의 일을 오늘도 하고, 다음 주에도 변함 없을 예정이다. 본인 고유의 업무야 말할 것도 없고, 늘 하던 대로 괜찮은 아이디어는 그때그때 수첩에 적어놓을 게 빤하다. 민원인의 작은 불평에도 귀찮아하지 않고 귀를 쫑긋할 테고, 거기서 힌트를 얻어 괜찮은 사업으로 연결 짓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러다 서울시 ‘창의상’에 한 번 더 응모할 테고, 거기서 운 좋게 상이라도 타면, 또 한 번 미안하지만 아내 모르게 상금을 기부할 것이다. 박석준 주무관이 늘 하던 일이니까.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김응구 기자 / sijung1988@naver.com